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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

[도서] 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저/정소연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그들은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변화하기를 바란다. 내 머릿속에 이것저것 집어넣고, 내 뇌를 바꾸고 싶어 한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사실은 그렇다.


p 63

 

한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는 말을 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아주 일부분일 뿐, 우리는 누군가를 알고 깊이 이해하게 될 때까지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것은 자폐를 안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어쩌면, 더욱. [어둠의 속도]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어느 한 우주에 대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것이었다. 일반 사람과 같지 않으면 비정상인 걸까, 성인이 되어 시설이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아픈 사람일까 비정상인 사람일까, 어쨌거나 자신의 우주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너도 우리와 똑같이 이렇게 해야 해, 치료를 받으면 우리처럼 될 수 있어 라고 하는 건 폭력일까 아닐까.

 

참으로 복잡하고 섬세한 작품이고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가기 어려운 이야기다. 나는 자폐를 안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 내 아이를 비롯해 주변에도 자폐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없다. 자폐 스펙트럼을 보여서 힘들어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알고는 있지만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명확히 알지는 못한다. 그저 추측할 뿐. 그러니 내가 단순히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누구도 개인의 삶에 자신만의 기준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 같은 말을 하는 것조차도 굉장히 힘이 든다. 주인공 루가 자폐를 안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당연하다는 듯, 나 잘났다는 듯 할 수 있는 뻔한 소리도 도저히 꺼낼 용기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것 같아서.

 

이 작품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을 둔 작가였기에 쓸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루를 통해, 작가는 구태여 감동을 자아내려 하지 않았다. 그저 루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기술이 발전되는 것으로 질병과 장애를 구원할 수 있을지, 독자들에게마저 냉정한 시각을 요구한다.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등장인물들이 내린 결정에 누군가는 동의하고 누군가는 만족하지 않겠지만, 그들의 선택과 사랑이 이러이러할 것이라 예측하는 것에도 우리의 편견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작가는 은연 중에 비판하고 있는 듯 하다.

 

결코 해답을 내놓지 못할 질문들 속에서 소소하게 결심한 것은 하나 있다. 크랜쇼나 돈 같은 사람은 절대 되지 말자는 것. 그리고 톰이나 루시아처럼, 설사 타인의 결정에 개입하고 싶어도 자신의 과도한 오지랖을 내려놓고 누군가의 결정을 지지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 그의 우주는 그의 것이고 결코 나의 것이 될 수 없으며, 나의 속도와 타인의 속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서로를 응원하는 것 뿐.

 


** 네이버 독서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푸른숲>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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