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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그냥 쓰면 된다, 서미현, 팜파스] 를 읽으며 글쓰기 연습 중입니다 :) 

첫번째 연습. 왜 글을 쓰고 싶은가?에 대해 써보기.


1. 물려받은 유산

기본적으로 나는 글쓰기를 갈망해왔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10살인가 11살때부터 공책에 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유치했고 말이 되지 않았지만 그러나 나는 항상 공상 속에 살았다. 
뛰어난 재능도 아닌 것을 그저 갈망해야 한다는 건 
굉장히 쓸모 없고 귀찮으며 때론 괴로운 것이었다. 
떼어낼 수 있다면 떼어내고 싶어 
애써 쓴 몇백장짜리의 한글파일을 삭제해버린다던가, 
아예 다이어리나 수첩을 사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아버지는 시를 쓰시는 분이었다.
그러니, 아마도 내 유전자의 반인 아버지의 유전자, 거기에서 내려온 유산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이런 것을 물려받았구나, 그러고 나니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버지" minolta maxxum5 + 리얼라100 @제천 탁사정 

(사진은 모델, 실제 아버지는 아닙니다 :))


내가 보기에 나는 우리 아버지가 참 안쓰럽다.
자연에서 소박하게 밭을 일구며 시를 쓰며 사셨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으셨을 분인데,
일찍부터 가장이 되었고, 시대가 그러했고, 그래서 모든 재능과 유전과 운명을 거스르며 반대로 살아온 분이셨다. 어쩌면 그 섦마저도 물려 내려왔는지도 모른다. 

2. 20대때는 글만 쓰면 마음 속에 불덩이가 사라질 줄 알았다.
어쩐지 응어리가 많고 하고 싶은 말이 가득 쌓였던 나는
이 모든 것들이 글을 쓰면 사라질 줄 알았다. 
얼마나 많이 쌓였던지 글을 쓰려고 앉으면 너무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버렸고
결국 글보다 체력이 먼저 떨어져 미완성으로 어딘가에 쳐박히곤 했다. 
그래도 나는 다음날 또, 그 다음날 또, 그렇게 글을 썼다.
그때는 어떻게든 글을 써내면, 끝맺으면 그 마음 속 불덩이가 사그라들것 같았다.
희망고문 같았던 그 불덩이와 글쓰기, 
평탄했다 싶었던 나의 20대도, 이렇게 돌이켜보면 혼자서 안으로 많이 싸웠던 것 같다.
그 싸움의 과정이 너무나 지난해서, 질척거림이 어딘가에 남는 것이 부끄러워서
나는 내 글들을 버리곤 했다.
내 글 대신 나름 찾은 방법은 '필사'였다. 20번이 넘는 필사를 하며
겨우 쓰고 싶은 욕망들을 잠재웠다. 대신 남은 것은 휘어진 오른손의 손가락이었다. 

3. 지금은 그저 자유롭고 싶다.
내가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때가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라고 생각한다.
멋드러지는 문장을 쓰고 싶은 것도 아니고, 문장 하나로 사람들을 울리는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글을 쓰고 싶은 갈망이 유전자에 박혀 있고 
다행히 쉬지 않고 글을 써대는 힘만큼은 넘쳐 난다.
그래서 자유롭고 싶을 때 글을 쓴다.
글을 쓰면, 자유롭다.
끝을 맺지 못 하면 굉장히 괴로울 때가 많지만, 
그래도 그냥 나는 비공개로 저장해둔다.
어느날 불쑥 떠오르는 '**년전 오늘'이라는 식의 글들을 읽고 있으면
내가 나를 만나는 것이 너무 즐거워 시간 가는 줄 모를 지경이니까.

4. 그래도 글이 참 많이 쓰고 싶다.
책도 한 권쯤 내 이름으로 쓰고 싶다. 
한껏 여유있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체력을 늘 원한다.
그래서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매일 매일 연습하는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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