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배창호 특별전-정

[영화] 배창호 특별전-정

개봉일 : 2008년 05월

한국 / / 12세이상관람가

1999제작 / 20080520 개봉

출연 :

내용 평점 4점

금강고속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6월 6일에
강원도 홍천에서 금강운수라는 여객운송업체로 설립하였습니다.
그 후 금강고속으로 회사 이름을 바꾸고
본사를 홍천에서 경기도 양평으로 이전하였고요.
현재 강원도 홍천과 경기도 양평을 중심으로 해서
농어촌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를 운행하는
국내 굴지의 운송업체로 발전하였지요.
홍천, 양평, 인제 원통 등에서 터미널도 운영하고 있고요.

비록 본사는 홍천을 떠났지만,
금강고속은 홍천에서 출범하여 전국적인 회사가 된
대표적인 업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강운수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선친께서 홍천군 서석면에서
금강운수 영업소를 운영하였기 때문이지요.
그 시절에는 버스마다 승무원이 3명(기사, 조수, 안내양)이 있었는데
그들은 대개 숙박하는 지역의 영업소에서 잠을 잤습니다.
정이 넘치던 시절이니 버스의 종업원들과는 가족같이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인터넷을 순회하다가 우연히 배창호 감독이 1999년에 만든
영화 『정』을 보았습니다.
영화 장면 속에는 금강운수 버스들의 모습이 나오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화면을 갈무리해보았습니다.

 

현재의 금강고속 버스

금강고속 사이트에서 갈무리했습니다.

 

 

옛날의 금강운수 버스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 시절 버스는 좀 촌스럽기도 하고,

버스 차창 위의 '금강운수'라는 회사명이 북한 버스 같은 느낌도 들지만 *^^*

향수가 느껴지는 정겨움이 있네요.


아, 어린 시절에 우리 고향에 들어오던 버스 중에

251호, 306호가 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때는 승무원을 부를 때

251호 아저씨, 306호 누나처럼 버스 번호를 불렀지요.

 

주인공 순이의 나이가 든 모습

김유미 씨가 젊은 시절에서 노년 시절에 이르기까지의 순이 역을 맡아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지요.

첫 남편과는 이혼을 하고, 둘째 남편은 사고로 죽고…….

어쩌다 인연이 닿은 아들이 자랑스러운 대학생이 되어서

거기에 삶의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네요.

순이는 아들 대신 버스 요금을 내주면서

요금을 깎자고 떼를 씁니다.

기사는 요금이 15원이라고 하고,

순이는 단골이니 좀 깎자면서 10원만 내고 *^^*

아, 1960년대의 시외버스 기본요금이 10원이었습니다.

부모님을 도와서 매표를 했던 나는 그때의 요금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서석에서 어론까지 10원,

솔치 27원, 조카터 34원, 장평 40원, 군업 49원, 삼포 56원, 신내 60원,

송정 58원, 종착지인 홍천까지는 72원이었지요.

영화 속의 배경은 1960년대인 듯합니다.

 

이 작품은 제1회 베노데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과 최우수 관객상,

이탈리아 우디네 영화제에서 최우수 관객상를 수상할 만큼

국제적으로도 작품성을 인정받은 아름답고 정겨운 영화입니다. 

 

달리는 금강운수 버스

세월 참 빠르네요.

지금 1960년이나 1970년대 이야기를 하면

신세대 젊은이들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처럼 여기겠지요.

지금은 홍천-서석 버스요금이 4,600원입니다.

1960년대의 72원과 비교하면 약 64배가 되네요.

세상도 그만큼 바뀌었겠지요.

* 자료 출처 : 사진은 배창호 감독의 영화 『정』의 화면에서 갈무리했고,

글은 개인적인 생각을 담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54M_gEHRLk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모나리자

    버스를 그렇게 호수를 정해서 불렀던 시절이 있었나요? 여관도 배도 아니고...ㅎㅎ 버스요금을 깎는다니 웃음이 나는데요.ㅋㅋ 어쨌든 차가 없던 옛날에는 요기한 교통수단이었으니 정겨운 영화 같아요. 감개무량 하셨을 듯합니다~^^

    2018.07.02 14:5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목연

      예전에는 버스가 많지 않기도 했지만,
      우리 고향에 들어오는 버스는 4~5대 정도였거든요.
      주민들과 승무원들도 서로 인사를 나누는 사이였고,
      영업소를 하던 우리는 가족 같이 지냈지요.
      지금은 버스에서 안내양과 조수도 없어졌고...
      사람이 줄면서 정도 사라진 듯하네요.

      2018.07.03 08:51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