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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때 네이버 지식인에서 전설적인 활동을 하였는데 *^^*
그때는 답변이나 오픈백과 작성도 열심히 했지만,
질문도 정기적으로 하였지요.
특히 가톨릭 디렉토리에서 많은 질문을 했는데,
그 질문들 중에는 '신부님이 싫어서 다른 성당으로 간다면?'이란 것도 있었지요.


10년 전에 올렸던 질문인데 누군가 여기에다 의견을 남겼더군요.

지금 다시 읽다 보니 많은 생각이 떠올라서 제 블로그에 옮기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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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연의 질문 : 신부님이 싫어서 다른 성당으로 간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신부님이 있습니다.
주사파 운운하면서
극우적인 발언을 자주 하면서 방송을 가끔 타는 신부님인데요.
만약에 그 신부님이 우리 성당에 오셔서 미사를 드린다면,
차라리 다른 성당으로 갈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지요.
 
그러면서도 별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가톨릭 신앙을 거부한 것도 아니고,
그 신부님의 성직 생활에 대해 어떤 방해를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정치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싫을 뿐이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자유인 것처럼,
어떤 신부님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도 나의 자유다.
싫어하는 신부님에게 성체를 받는다면
오히려 마음이 무거울 테니 피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질문입니다.
그런 제 생각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겠지만,
고백성사를 보아야 할 정도의 죄일까요?
 
오늘 미사 시간에 시골 본당 신부님이 오셔서 미사를 드렸기에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만약에 그 신부님이 내가 싫어하는 신부님이었다면,
그래서 내가 그 미사에 참례하지 않고
다른 성당으로 갔다면,
그것이 신앙적인 잘못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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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A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형제님, 저는 무어라 드릴 말씀이 마땅히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잘 정리된 김웅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의
강론 글을 빌려 올립니다.
잘 읽어 보니 무언가 와닿는 게 많았기에
같은 걸 느끼시리라 믿습니다.
 
(중략)
사탄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목자와 양을 이간질 시키고 서로 갈라놓게 만듭니다.
얼마나 많은 성당이 서로 반목하고 피를 흘리고 사는지 모릅니다.
어느 쪽 잘못이겠습니까?
같은 사제 입장이라고 해도

아무리 잘 봐 주려고 해도 철딱서니 없는 사제, 수도자들도 있습니다.

옛날부터 자식은 아비를 잘 만나야 되는데

그 아비가 아무리 못났다 하더라도

자식이 아비를 때릴 수는 없습니다.
못났다고 아비를 감옥에 가둘 수 없습니다.
자식은 아비를 위해 기도하고 주님께 청해야 합니다.

서울에 피정을 시키러 갔을 때 피정 시간이 좀 남아서

그 동네 아는 신자 집에 차(茶) 한 잔 마시러 들어갔습니다.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사람이 나오지 않고

아파트 문은 열려 있길래 들어갔더니

현관 안에 신발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몇 번 헛기침을 했지만 말들을 하느라고 제가 문 밖에 서 있는 걸 몰라서
본의 아니게 현관 앞에 서서 2, 30분 동안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천주교 신자들이 구역모임을 하느라고 모여 있었는데

주제가 뭐였냐,하면 본당신부 욕하는 거였습니다.
신부 소리도 안 하고 “그 인간, 그치, 그거 언제 가?”더군요.


저는 현관에 서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본당신부가 어떻게 처신했길래

어쩌다 신자들에게 저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가!’

잠시 조용해지길래 그때야 큰 목소리로 기침을 했습니다.
으음, 흠흠~”

어, 손님 오셨나 보지?”
현관 앞에 내가 장승처럼 서 있으니 주인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아유, 신부님 언제 오셨어요?”
“한 30분 되었다.”
“그럼……. 저희들 하는 말 다 들으셨어요?”
“그럼 뚫린 귀인데 못 듣겠니?”

그 소리를 듣자마자 안에 있던 여자들이 튀어나가기 시작하는데,

못 나가게 하려고 내가 신발을 다 흩어버렸어요.
“안으로 들어가 보시지요!”

자기들이 지은 죄가 있는지라 제 앞에 일곱 여자가 쪼르륵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도 저런 소리 듣지 않고 살아야겠다, 라고 반성을 했소.

그런데 당신들에게 물어봅시다.
본당신부님이 그런 모습을 보였을 때 당신들 중에 감실 앞에 와서

예수성심께 우리 본당신부님 살려달라고

눈물로 기도한 사람 있으면 손들어보시오.”


없지요?
감실 앞에서 기도했던 사람이라면 그렇게 신부, 난도질 안 합니다.

당신들 중에 신부님이 사람 입에 오르내릴 때,  묵주를 붙들고
성모님, 우리 신부님 일어서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한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이면

그렇게 모여 앉아가지고 신부를 토막 내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 본당신부들 말고도 여러 신부님들을 겪었고

앞으로 죽을 때까지 여러 신부님들을 겪을 거예요.
그러나 사제 한 사람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세요.
사제 하나가 예수님을 다 못 보여 주어요.
내가 피정 다니면 피정 끝나고 신자들이 내 손을 잡고
'이고, 신부님 본당 신자들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감곡에 가서 살고 싶어요.'

나는 속으로 이러지요.
‘너도 와서 살아봐라!’
예수님이 본당신부를 해도 반은 본당신부 편이 아닙니다.

그전에 젊은 신부 시절에는
‘왜 이유도 없이 내가 자기들한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름대로 열심히 사목하는데 나를 씹고 돌아다닐까!’
그것 때문에 상처받고 이해가 안 되었어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 보니까 ‘씹는 놈은 누가 와도 계속 씹더라!’
예수님이 본당신부로 부임을 해도 씹는 놈은 이가 부러질 때까지 씹어요.
이제는 그것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안 받아요.
다시 말하면 어느 성당이던지

100% 본당 신부 편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이겁니다.

본당 사제에게서 예수님의 한 조각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그 신부님은 성인 사제입니다.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의 발을 보여주고 갑니다.
- 성질은 괴팍한데 가정방문은 끝내 줘.
- 레지오 단원이 병자 방문 가면 벌써 신부님 다녀가셨대.

참 부지런 떠는 신부님들 있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일 년에 한 번씩 가정방문 다녀요.
그렇게 부지런한 것, 아무나 못해요.
예수님의 발바닥 보여주고 가는 신부가 있어요.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 착한 심성을 닮은 신부님이 있어요.
강론은 지지리도 못해, 그런데 그 신부님 다 좋아해.
너무너무 착해~~
그 신부님 곁에만 가도 착한 게 뚜두둑~ 떨어져.
‘우리 신부님, 참 착해!’
강론 못하는 게 다 덮어지는 거야.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 보여 줘요.
그 신부님 만나려면 사제관 가는 것보다

성당으로 찾아가는 게 훨씬 빨라요.
늘 빈 성당 안에 틈날 때마다 감실 앞에서 예수님 친구가 되어드려.
그 모습을 보고 신자들이 하나둘씩

그 뒤로 성체 조배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해요.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제도 있어.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의 입을 보여주고 가요.
입만 열었다 하면 말씀의 카리스마를 받아서

사람을 뒤집어 놓았다~ 바로 세웠다~ 울렸다~ 웃겼다~
삶을 변화시키고 치유시켜줘요.

아무리 못된 사제라 해도 여러분이 못 보았을 뿐이지.

예수님의 한 조각도 안 보여주는 신부님은 없어요.

며칠 전에 인터넷 카페에 어느 신자가 글을 하나 올렸는데
제목이 ‘호랑이 신부님’이었지요.
어느 날 신부님이 한 분 부임해 오셨는데

너무나 근엄하고 무섭게 생겨서 자기는 근처에
접근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었대.
그런데 언제 그것이 다 무너졌느냐!
고백소에 들어갔는데 그렇게 자상하게 성사를 봐 주시더래.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그 신부님한테 위로를 받고 나왔대.
그때부터 ‘아. 내가 저 신부님한테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어느 신부님이나 예수님의 한두 조각씩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제껏 겪었던 사제들의 조각조각 기억들…….
여러분이 겪고 살았던 사제들의 한 조각 한 조각을

여러분이 세상을 떠날 때 여러분의 영혼의 도화지에 모자이크를 하면

그때야 예수님의 모습 한 조각이 만들어져요.

다시 말하면 사제는 사제단으로 존재할 때 그리스도의 실체가 만들어지지
사제 한 사람으로 예수님 전부를 다 보여줄 재간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사제들이 인간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일 때 돌로 치지 마세요.
그건 기도하라는 뜻이지, 그 사제를 내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제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힘들 때마다 일어서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우리 신자들
지금도 나를 위해 묵주 들고 있는 내 어머니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우리 레지오 할머니들…….
그분들의 모습을 보고 지치고 힘들 때 일어나는 거야.
목사님들은 괴롭고 힘들면 집에서 위로라도 받잖아!

신자들의 기도를 먹고 살아가는 게 사제입니다.
신자들이 사제들을 지켜주셔야 된다는 것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옛날에 동네 어귀에 가면 동네우물이 있었어요.
사제는 어떤 존재냐?
공동우물과 같은 존재지, 개인 수도가 아닙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와서 퍼가는 공동우물이 바로 사제예요.

본당에 이런 말 저런 말 나오는 것 보면, 물론 그 사제 잘못도 있어요.
어느 신부님은 어느 신자를 편애한다!
다른 신자들은 얼씬도 못하게 하고

그 신부에게 잘 보이려고 여러 가지를 한다.
그런 것 때문에 본당에 분열이 생기고, 신자들 사이에 상처를 받고…….
사제는 공동우물이라는 것,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신학생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날입니다.
사람에게는 영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영은 영성과 인성으로 분리됩니다.
여러분, 인성과 영성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영성보다 수백 배 중요한 것이 인성입니다.
인성이 개떡이 되어 있는데 어찌 영성생활을 하겠습니까?
인성이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데 무슨 영성생활을 하겠습니까?
세례 받고 2~ 30년, 50년이 지나도 왜 예수님께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왜 맨 날 그 모양 그 꼬락서니인가!
그것은 인성 속에 있는 상처가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인성 안에도 생각이 나는 상처가 있고,

무의식 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상처가 있을 거예요.
무의식 속에 있는 상처를 예전에는 가계 상처라고 했지만

지금은 주교님들이
그 단어를 기복이 되기 쉬워서 금지하고 안 씁니다.

무의식 속에 있는 상처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1살 2살, 내가 기억 못 하는 상처도 분명히 있다, 이겁니다.
의식이 생기면서 아버지한테 받은 상처, 엄마한테 받은 상처,
오빠한테 받은 상처, 신자 생활하면서 교우들에게서 받은 상처,
사제에게 받은 상처. 수녀들에게 받은 상처…….
의식 속에 또렷이, 또는 무의식 속에서,

돌에 새겨 놓은 상처가 바로 인성의 상처예요.

이 인성의 상처가 해결이 안 되면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학공부를 20년, 30년으로
늘린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사제로써 올바로 살아갈 재간이 없습니다.

신학교 교수들을 피정을 시키고 영성지도 신부들을 면담을 해보면
그 신부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것이 뭐냐?
신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신학생들의 인성은 손을 댈 수가 없다는 겁니다.
본인들이 찾아와서 마음을 오픈하지 않는 한,

지금 저 신학생 뱃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길이 없대요.
남들 하는 것처럼 기도하고 공부하고 따라가다 보면

시간이 되어 독서직 받고,
시종직 받고, 부제품 받고 사제가 되어요.
그런데 뱃속에 다이너마이트가 몇 개씩 들어 있어.
그게 언제 터질지 몰라!
꼬리 딱 내리고 세월 지나가면 사제가 돼요.


‘내 신부만 한 번 되어봐라!’
속에서는 피를 철철 흘리는 인성의 상처가 있는데

그것 해결을 못하고 신학생 생활하고…….
수녀원에서도 마찬가지지요.
오픈하지 않는 한 그 속을 어떻게 압니까?
무슨 가시가 잔뜩 들어있는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서 어린 시절에 허구한 날 빚쟁이들이 집을 드나듭니다.
빨간 압류 딱지가 붙고,

무능하기 이를 데 없는 아버지 때문에 돈에 한이 맺힌 아이가 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왜 저렇게 무능해!’
‘세상살이가 재미가 없겠다.’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왔다고 합시다.

하느님은 동기가 불순하더라도 그 동기를 가지고 부릅니다.
신학교에 들어와서 정화를 시켜야 되는데 그 속에 있는 걸 그대로 담고
‘내 신부만 되어봐라!’
이런 사람이 사제가 되면 돈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강론 대에서는 흑백논리로 나갑니다.
부자는 마귀, 없는 자는 천국 가고 부자는 지옥 간다!
어릴 때부터 돈에 대한 한이 맺혀 있기 때문에 강론도 흑백논리로 나갑니다.
그건 아닙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본당신부님, 여러분들이 보는 사제, 수녀님들이 보여주는 그 인성,

그 마음은 신학교 들어오기 전에, 수녀원 들어오기 전에

그 아버지, 엄마한테서 그대로 받은 겁니다.

신학교에서는 한 사람, 한사람 속을 다 뒤집어 낼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기본적인 인성은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받은 겁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사랑이 많이 받은 사람은 그 신부님도 사랑이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사제가 되더라도 굉장히 차갑고 무섭습니다.
그건 수녀들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본당에 많은 수녀님들이 지나갔을 거예요.
어떤 수녀님은 이목구비는 뚜렷하고 예쁜데 곁에 갈 수도 없지요.
찬바람이 쌩쌩~~ 불어요.
말 한마디 할 때마다 톡톡 쏴부치기 일쑤입니다.
잘 되던 공동체도 그 수녀가 들어가서 한 번 휘저으면 엉망진창이 될 수도 있어요.

어떤 수녀님은 참 호박 덩어리같이 생겼어도

그렇게 엄마 같고, 누님 같고 언니같이 편해!
본당이 깨져도 그 수녀님만 들어가 휘저으면 본드가 되어서 다 붙어.
사랑이 많아, 그저 다 주고 싶어가지고~

말 한마디 하더라도 그렇게 정이 있어.

그 사람의 마음은 대개는 얼굴에 나타난다고 그러지요.
다 맞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에 그대로 드러날 때가 많아요.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돼요.
(중략)

 

* 다른 답변들도 많았는데, 어떤 이유인지 올라가지가 않네요.

다른 답변들을 보시려면 네이버 지식인에서 직접 보시기를…….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2&docId=49404193&ref=me2l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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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책읽는엄마곰

    신부님을 싫어해도 된다 생각해본적이 없어서.. 놀라고ㅡ 신기한 내용이었어요ㅎ

    2018.11.11 18:5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목연

      신부님도 사람으로서 삶을 사시는 것일 테니까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한다면
      신부님에 대해서도 더 큰 사랑을 느낄 수 있겠지요.

      2018.11.1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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