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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춘천 한샘고등학교 정운복 선생님이

2019129일에 제게 보내준 글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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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비교적 가난한 유년시절을 지낸 저는 음식을 가리는 것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형제가 많아 양푼에 밥을 담아 놓으면 빨리 먹어야 내 차지가 되므로

비교적 밥을 먹는 속도도 빨랐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빠른 식사의 이유이기도 하지요.

 

먹거리가 있기만 해도 감사했던 시절이고 보면

반찬투정을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그렇게 먹성이 좋던 제가 15년 동안 먹지 못한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순대인데요.

 

옛날에는 결혼식을 집에서 올렸습니다.

기러기 대신 닭을 잡고

가마타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전통혼례를 한 것이지요.

먹거리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고 보면 결혼식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마당에 천막을 치고 34일 정도 동네잔치를 벌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문제는 순대를 만드는 것을 지켜본 것이지요.

돼지 창자를 뒤집어 소금으로 깨끗이 씻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선지에 찹쌀과 숙주나물, 당면 등등의 소를 섞어서

병 주둥이를 깔때기처럼 만들어 창자에 소를 채우는데…….

그 과정에서 피칠갑을 한 모양이 얼마나 섬뜩하던 지요.

만드는 것을 보니 순대에 오만정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 기억을 잊어버리는데 무려 15년의 세월이 걸렸지요.

 

물론 지금은 없어서 못 먹습니다. ㅋㅋ

 

맛은 혀의 미각에서 기인하는 것도 있겠지만 추억일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해서도 어머니의 손맛을 잊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리 맛있지는 않아도

옛날 느끼던 맛을 만났을 때 기분이 좋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맛은 추억이 채색합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순대 한 봉지에 소주나 일 배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목연 생각 : 식성에 관해서는

나도 운복 샘 못지않게 강자에 속합니다.

못 먹는 것이 거의 없으니까요.

 

하지만 내게도 맛에 얽힌 끔찍한 기억이 있는데요.

어린 시절에 외갓집에 가면

온갖 과일이 있더군요.

그래 봤자 강원도의 시골이니 대추와 밤 정도였지만,

특이한 것은 포도였습니다.

 

외사촌 형이 마당에 포도를 심고

포도넝쿨로 그늘을 만들었는데

주렁주렁 달린 포도가 그렇게 탐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5대 독자인 외갓집에서는

우리 형제들이 가면 아주 반겨주었습니다.

그때 저 포도의 절반은 내 것이다, 라고 생각했지요 *^^*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외갓집으로 가서

포도를 따먹기 시작했지요.

아마도 열 송이 가까이 먹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탈이 났는지 그날 밤새도록 구토를 했고요.

 

그다음부터는 포도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면서

손이 가지 않더군요.

어떤 음식도 사양을 하지 않는 내가

포도만은 손도 대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하더군요.

 

다시 포도를 먹기 시작한 것은

결혼을 하고부터입니다.

아내가 딱 한 알만 먹어보라고 하더군요.

 

먹으니 괜찮았고,

두 알, 세 알 먹어도 아무 이상이 없더군요.

지금은 포도도 없어서 못 먹을 정도…….

 

지금도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맛있는 포도를 15년 동안이나 먹지 못했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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