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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문학은 횡성문학회(횡성문인협회)에서 매년 발간하는 문집이다. 2019년에 발간한 26집에 실린 김성숙 시인의 「구석」을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시인의 따뜻한 배려를 느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구석'이라는 말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도 더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상황에서 '구석'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 춥다고 방구석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놀아라.

- 촌구석에서 뭐 하냐? 가끔 시내에 와서 바람 좀 쐬라.

- 그 녀석이 어느 구석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더라.

 

대개 이런 경우에 '구석'이라는 말을 쓰지 않던가? 아, 무엇을 버리거나 남이 보면 안 될 일을 할 때는 으슥한 구석에 숨어서 한 듯하다. 그렇게 천대받는 단어인 '구석'을 시인은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했다.

 

사실 '구석'이라는 공간은 없다. 방이나 집이나 시골을 무시하고 마치 접미사같이 그 말을 붙이는 것이 아닌가? 방이나 집은 생활 공간이고, 시골은 그 사람의 고향이거나 살고 있는 곳이다. 시인은 '구석'을 배려한 것이 아니라 '구석'의 가치나 존재 의미를 복원시킨 것이리라.

 

둘째, 새삼스럽게 구석의 고마움을 느꼈다. 답답한 일로 울고 싶거나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 방구석이나 집구석이 없으면 어디서 설움을 풀 것이며, 터질 듯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 마음 구석이 없으면 그 감정이 심장을 넘어 가슴까지 터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슬플 때뿐인가? 그리운 이가 내 사랑을 받아주었거나, 로또라도 당첨되어서 터지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서 실실 웃고 다닌다면 머리에 꽃을 꽂은 사람으로 취급받을지도 모른다. 그 비밀을 꼭꼭 숨기고 혼자 은밀히 웃게 해주는 공간도 마음 구석일 것이다. 잊으면 안 될 사람이 간직되는 곳도 마음 구석일 것이다. 내가 흔들릴 때마다 나타나서 바로잡아 주는 존재가 숨어있는 곳이 마음 구석이 아니겠는가? 시를 읽으면서 이런 고마움을 느끼게 될지는 몰랐다.

 

셋째, 시인의 섬세하고 치밀한 관찰력에 놀랐다. 지금까지 '구석'이라는 말을 수천 번도 더 들었지만, 이 말이 쓰이는 곳은 집구석, 방구석, 촌구석 정도인 듯하다. '산구석, 두멧구석, 시골구석, 안방구석 같은 말도 쓸 수 있겠지만 이 말들은 '집, 방, 촌'에 포함되는 말이 아닌가? 시인이기에 그 말들들 찾아낸 것일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석은 '믿는구석'이다. 내 마음을 믿을 수 있다면 행복하고, 가족이나 친구들의 믿는 구석도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시인과 같이 '구석'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언젠가 '믿는구석'이라는 말도 국어사전에 오르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마도 낱말 '구석'은 자신의 긍정적인 본성을 찾아준 시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교단에서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 시인은 '구석'을 찾아내고 배려한 것처럼 학생들을 그렇게 대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보다 많은 낱말과 학생들이 시인의 손에 의해 긍정적인 의미를 찾게 되리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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