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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문학은 횡성문학회(횡성문인협회)에서 매년 발간하는 문집이다. 2019년에 발간한 26집에 실린 김은주 시인의 「비가(悲歌)」를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언어의 마술에서 매력을 느꼈다. 제목이 '비가(悲歌)'이고, 1연 첫 시어가 '비가'로 말문을 연다. 사전적인 뜻으로는 제목의 비가는 '슬픈 노래'이고, 첫 시어의 비가는 '대기 중의 수증기가 높은 곳에서 찬 공기를 만나 식어서 엉기어 땅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이다. 제목이 봄이나 첫사랑이나 백두산 등과 같은 일반 명사라면 첫 시어를 그렇게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 다른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시인의 기발한 재치가 재미있었다.

 

둘째, 모든 언어는 통한다는 것을 느꼈다. 제목과 첫 시어가 동음이의어라고 했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전혀 다른 뜻도 아닌 듯하다. 비가 오는 날 그리운 사람이 자박자박(이 말은 또 얼마나 예쁜가? 예쁘면서 애처로운 작중 화자의 마음을 절묘하게 표현한 듯하다) 걸어왔다가 문이 열리기도 전에 돌아갔다.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다 만나지 못한 화자의 마음을 하늘은 알 것이고 슬픈 노래(悲歌)를 부르는 심정까지 속속들이 알 것이다. 하늘도 나와 함께 울어주려는 것이 비를 통해 나타난 것이라면 첫 줄의 '비가 오는 날'은 '슬픈 노래를 부르는 날'과 통할 것이다. 똑같은 보름달이라도 굶주린 이에게는 빵으로 보이고, 연인과 만나거나 헤어지는 이에게는 환희나 비탄의 얼굴이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제목과 첫 시어는 동음이의어이면서 뿌리가 같은 다의어이기도 할 듯하다.

 

셋째, 말하는 이를 바꾸어 보았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마음은 기다리는 이나 찾아온이나 다를 바가 없을 듯해서이다.

 

비가 오는 날은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저벅저벅 걷는 날이다

 

품었던 이야기를 전하려고

문을 두드리다가

그냥 돌아서는 날이다

 

비가 오는 날은

그리운 사람을 만나려다

문이 열리기 전에 돌아서는 날이다

 

비가 오는 날은

그리운 사람을

생각만 하는 날이다

 

우산을 쓰고

비바람을 맞으며

그녀의 마음을 되새기는 날이다

 

문 두드리는 마음을

비바람 소리로 느낀

그녀가 살포시 눈을 감는 날이다

 

비가 오는 날은

그리운 사람을

더 가까이 찾는 날이다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비가(悲歌)가 아닌 연가(戀歌)로 제목을 바꾸어도 좋을 듯하다. 비가 오는 날은 그리운 사람을 멀리 보내는 날이 아니라 그가 더 가깝고 깊숙하게 찾아오는 날이니 시인은 비가(悲歌)가 아닌 비가(泌歌)를 불렀으면 좋겠다. 비에는 샘물이 흐르는 마음(泌)도 담겨 있다. 그는 비가 와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비가 오니 샘물 같은 사랑을 함께 주고 간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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