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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연 조선은 유교를 국시로 하여 출발하였다. 태조 이성계와 함께 건국의 중추 역할을 했던 정도전은 부패한 고려를 뒤엎고 개국한 조선의 이상을 유교의 이념을 구현하는데 둔 것이다. 유교는 한마디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학문이다. 수기(修己)는 자기 자신의 도덕적 수양을 쌓는 것이며, 나아가 부자, 부부, 붕우, 장유, 군신간의 윤리를 확립하는 것이 유교의 이념이고, 그것을 구체화한 것이 삼강오륜으로 대표되는 도덕률이다. 조선은 그런 사회를  구현하는 것을 명분으로 출발한 나라인 것이다.

 

이러한 조선이 미처 뿌리도 내리기 전에 기강을 흔드는 사건이 터졌으니 그것이 바로 박저생(朴楮生) 사건이다. 조선왕조실록 태종조에는 박저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5건이 실려 있다.

 

* 태종 3권 2년 6월 11일 (계해) 7번째기사 / 계집종을 가까이 한다고 질투한 아내를 구타한 박저생을 귀양보내다 

* 태종 3권 2년 6월 27일 (기묘) 1번째기사 / 사헌부에서 김남수의 죄를 다시 청하였으나 윤허 않다 

* 태종 12권 6년 7월 19일 (병오) 3번째기사 / 옥송을 체류시킨 허응·이맹균·이명덕·허항 등을 귀양보내다 

* 태종 24권 12년 12월 11일 (임술) 2번째기사 / 계모 곽씨와 재산 싸움을 한 박저생이 자살하다 

* 태종 24권 12년 12월 11일 (임술) 3번째기사 / 박저생의 부자의 간음 사건에 대한 판결문제를 의논하다 

 

그렇다면 박저생은 어떤 인물일까?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는 그의 행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왕조실록 태종조의 박저생 관련 항목과, 이정근의 <이방원전>을 참고하여 재구성한 것임. 괄호 속의 주석은 본인이 보충한 것임.)

 

1) 부친(박침)상을 당했을 때, 지삼척군사(知三陟郡事)로 있으면서 기생에게 혹했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면됨.

 

2) 관직을 잃고 서울로 온 뒤 계집종을 가까이 하는 것을 보고 아내가 질투를 하자, 적쇠로 아내를 때렸다가 부부가 각각 유배 됨. (박저생은 기강문란, 아내는 투기)

 

3) 박침(박저생의 아비)이 박저생의 첩인 파독을 간음하고 첩으로 삼음.

 

4) 박저생은 박침이 죽은 뒤에 파독(波獨)을 다시 첩으로 삼음

 

5)  박저생의 계모 곽씨(郭氏)가 박저생과 유산 분쟁을 하던 중에, 박저생의 풍기 문제를 사헌부에 제소함. (아비의 비첩을 간음했다는 죄목)

 

6) 사헌부는 기강을 흔드는 풍속사범이라면서 박저생을 체포하니, 박저생은 파촉이 본래 자기의 첩이었다면서 원대복귀라고 강변함. (아비가 첩을 범했을 때는 아비라서 차마 고하지 못했으나, 아비가 죽었으니 다시 첩으로 삼았는데 무엇이 잘못이냐고 항변.) 

 

7) 사헌부와 형조에서는 박저생은 부자가 함께 공간(共奸:함께 간음을 함)을 했고, 파촉는 아비와 아들의 첩이 되기를 달게 여겨 거부하지 않았으며, 곽씨는 추행을 저지름으로써 남편(박침)의 죄악을 드러냈다고 논죄하고 엄중하게 처하려고 함. (안율(按律: 법률을 살핌)하건대, ‘조(祖)·부(父)의 첩(妾)을 간음하면 참(斬 : 목을 베어 죽임)한다.’하였으니, 박저생의 죄는 마땅히 이 형벌을 받아야 하며, 인륜(人倫)의 대변(大變:큰 변고)을 용서함은 옳지 못합니다.)

 

8) 순금사겸판사 박은이 '경제육전에 사죄(사형당할 죄)는 삼복(삼심제)법이 시행된다"면서 신중히 처리할 것을 주청했고,  태종은 죄인들을 비린(鄙吝 : 어리석지만 불쌍히 여김)하게 여겨 사건을 사헌부로 돌려 보냄.

 

9) 사헌부와 의정부 등에서는 인륜을 망각한 죄인들을 엄히 처할 것을 주청.

 

10)박저생을 장(곤장) 1백대에 유배 3천리, 곽씨는 장 90대에 도(감옥살이) 2년반, 파독은 장 1백대에 외방으로 추방이 결정됨. (조선시대 형벌 : 태는 방망이로 때리는 것, 장은 흔히 말하는 곤장, 도는 감옥살이, 유는 귀양살이, 사는 곧 사형)

 

 

11) 박저생의 아들이 신문고를 울리며 아비가 억울함을 호소함. (박저생이 자신의 죄를 감하고자 재물을 바쳤고,  그것을 관청에서 받았으므로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니냐고 강변)

 

12) 사건이 뇌물사건으로 번져서 사헌부와 형조에 불똥이 떨어지려는 순간 박저생이 탈옥을 함. (뒤가 켕긴 관원들이 탈옥을 방조했을 수도 있음) 

 

13) 탈옥을 한 박저생은 근신을 하기는커녕  변성명(박의)을 한 뒤 밀양에 거주하던 중에 전 언양감무 장효례와 재산을 다투었음. 그로 인해 신분이 발각되어 서울로 압송됨.

 

14) 조정에서 죄를 다스리려고 하자 박저생은 자신이 포 240필을 바쳤으므로 사면되었다고 강변함. (그 재물은 죄값 성격의 벌금이라기보다 뇌물에 가까움)

 

15) 조정에서는 사건을 다루었던 사헌부와 형조에 책임을 물어서 대사헌 허웅, 집의 이맹균, 장령 이명덕 등이 지방으로 유배됨.

 

16) 장령 김질, 지평 이승직 등이 이 사건으로 인해 상사나 동료들이 연루된 것에 앙심을 품고,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박저생의 계모 곽씨를 구금하고 심하게 고문함. (곽씨의 행위는 이미 드러나서 죄과를 치뤘던 터라 보복성 고문임)

 

17) 곽씨의 아들 박눌생이 신문고를 울려서 어미에 대한 관청의 처사가 부당하다면서 고변함.

 

18) 보고를 받은 태종은 곽씨를 석방하도록 명하고, 김질과 이승직 등을 지방으로 발령 냄(문책성 좌천 인사)

 

19) 대사헌 한상경이 김질과 이승직의 행위는 공권력을 남용하여 사적인 형벌을 가한 것이라면서 강도 높은 징계를 주청함. (곽씨은 이미 처벌을 받았으므로 이중 처벌이고, 특별한 사안이 추가로 발생한 것도 아닌데, 고문까지 한 것은 공정하지 못함.)

 

20) 태종은 김질과 이승직을 파면함.

 

21) 형조에서는 박저생의 죄를 다스리려고 하였으나, 이미 처벌을 받은 바 있으므로 울주에 유배하는 선에서 마무리 하려고 함. (뇌물이던 벌금이던 재물을 바친 것은 사실이고, 1차로 처벌도 받았음)

 

22) 울주에 유배된 박저생은 배소에서 탈출한 뒤, 김화에 숨어살면서 남의 토지를 빼앗으려다 신분이 탄로나서 체포됨.

 

23) 대사헌 한상경은 박저생을 강력히 처벌하도록 주청함. (율에 의하여 내란죄로 다루도록 청함.)

 

 24) 순금옥에 투옥된 박저생이 시체로 발견됨. 순금부에서는 자살이라고 발표함. (실제 자살인지, 각종 연루를  피하고자 자살을 가장한 타살인지 여부 등은 밝혀지지 않음)

 

 

이상이 박저생의 행적이다. 사건을 살피면 여러모로 의문점이 보인다. 오륜을 중요시 한 조선 사회에서 부자가 함께 공간한 중죄인을 극형에 처하지 않은 것이나, 그런 죄인을 두 번이나 탈출을 하도록 허술하게 다룬 것도  이해가 안 간다.

 

사실에 근거한 소설로 평가를 받는 이정근의 <이방원전>에 보면 사헌부 심문관과 피의자들이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 받는 것으로 묘사했다..

 

심문관 : 네 여자를 아비가 빼앗았다고 하더라도, 아비의 첩을 네가 다시 취한 것은 네 아비의 첩을 네가 간음한 것이 아닌가?

박저생 : 아닙니다요. 소인의 여자를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요.

 

심문관 : 네 행실이 방정하지 못하고 요기를 뿜어 유혹한 것이 아니었더냐?

파독 : 아닙니다요. 소첩은 옹녀와 변강쇠가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아비가 변강쇠 같았습니다.

심문관 : 왜 관가에 고변하지 않았느냐?

파촉 : 아비가 더 좋았습니다.

 

심문하던 심문관들이 민망하여 더 이상 묻지 못하고 기가 막힐 정도였다. 명색이 사대부이고, 그의 첩이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일말의 수치심도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인륜과 도덕이 파괴된 패륜의 극치였다.

 

이 일은 부자가 한 여인을 첩으로  두는 풍기문란, 모자간의 유산 분쟁, 관리들의 뇌물 의혹, 중죄인에 대한 감시 소홀을 조장한 보이지 않는 손 등  총체적인 각종 비리가 복합된 사건이다. 문제는 당사자인 박저생 부자는  필부가 아니라 중앙정부의 고위직을 역임한 사대부이고, 사건 처리 과정에서 사법부의 많은 관리들이 뇌물 수수 등으로 연루되었거나 사건을 은폐한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하로서 왕을 해친 하극상으로 출범했고, 왕실(2차례의 왕자의 난)의 비도덕적인 암투, 쿠데타 세력간의 갈등(민무구 형제, 이무 등의 숙청), 신문고의 남용 등으로 정통성이 부족한 집권층으로 인해 해이해진 당시의 기강을 반영하는 한 사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권위주의 시절에 특권층의 인사들이 줄줄이 연루된 의혹 속에 결국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 마무리 된 모 여인의 살해 사건(70년대 초에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던 미모의 26세 여인 사건은 당시 최고위층 많은 사람이 관련 의혹을 받는 등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지만,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은 채 마무리 되었음. 상류층의 부도덕성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건이었음.)  등이 연상되기도 한다. 정통성이 결핍되고 특권층의 기강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해괴한 사변이 발생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공통된 현상인 듯하다. 

 

* 자료 출처 : 조선왕조실록국역본 태종조 기록과 이정근 역사소설 이방원전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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