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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과(또는 사회과 등 기타 교과)에서는 학생들에게 역사적인 위인들과 인터뷰를 해오라는 과제를 내주기도 한다. 이런 과제는 많은 시간이나 생각이 필요한 것이므로 주말이나 방학 과제로 내주는 경우도 많다. 학생 입장에서 그런 과제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터뷰'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인터뷰란 다른 말로 면접·대담·회견 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사람이나 단체에 대하여 좀더 깊이 파악하거나, 알려지지 않았자만 유용한 가치가 있는 내용을 알아보기  위하여 그 사람이나 단체의 관련자(대표나 실무 책임자)를 직접 만나서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교사가 과제로 내주는 '위인과의 인터뷰'는 학생에게 그 위인을 직접 만나서 조사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대상이 되는 위인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역사적인 인물이거나, 생존해 있다고 하더라도 어린 학생의 입장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교사가 '위인과의 인터뷰'를 과제로 내주는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그 위인에 대해 좀더 깊이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인터뷰 형식으로 상상속에서라도 위인과 직접 대화를 나눠본다면 그 인물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아울러 인간적으로 친밀해지는 가운데, 위인의 생애에서 더 큰 교훈이나 감동을 받으라는 뜻이다.

 

이런 과제를 받은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도 있다.

"도대체 본 적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위인과 어떤 형식으로 인터뷰를 하라는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과제를 해결해 보자.

 

1. 해당되는 위인에 대한 자료를 여러 방면으로 조사를 한다.

위인을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자료(위인전, 사전, 인터넷 사이트 등)는 많다. 여러 경로를 통해서 그 위인에 대한  여러 자료(성장, 가족관계, 업적 그의 사상 등)를  찾을 수 있다.

 

2. 해당되는 위인에 대해 알아야 할 내용, 또는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을 정리해 본다.

다음과 같은 식으로 질문을 만들어 보자.

가. 그의 훌륭한 점은 무엇인가?

나. 그가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했는가?

다. 그가 업적을 남기기까지 겪어야 했던 어려운 점은?

라. 내(또는 많은 사람들)가 그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마. 기타 그의 특별한 점이나,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 등 

 

3. 위인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이 작성한 질문에 대해 답을 정리한다.

2항의 질문에 자신이 조사한 자료를 통해 답을 써본다.  이 때는 자신이 해당 인물의 입장이 되어서, 그 위인이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어떻게 대답할 지를 추측해서 쓴다. 정확한 답이 나올 수 없는 문항은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보다 흥미있고, 명확한 답이 나올 질문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4. 작성된 질문과 답면을 바탕으로 인터뷰 형식의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이 때는 작성자의 소설적인 창의성이 들어갈 수도 있다. 자신이 타밈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가서 해당 위인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는 형식일 수도 있고, 그 위인을 현대로 초대해서 만나는 형식일 수도 있다.

 

이 때는 실제로 그 위인을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니므로 약간의 허구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그 허구도 사실에 바탕을 둔 상상이거나, 그럴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예)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과 인터뷰를 할 경우에 "지금 심경이 어떤지요?"라는 질문에 대해 동명성왕이 "중국의 동북공정 때문에 몹시 속이 상한다." 라고 답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동명성왕의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국에서 아름다운 선녀들을 만나서 사랑에 빠져 있다." 라는 답변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5. 완성된 인터뷰에 오류가 없는지 검토한다.

해당 인물과 실제로 만났다면 인터뷰를 어떻게 진행하고 무엇을 물을 것이며, 그의 대답이 어떤 식일까 등을 생각하며, 인터뷰 내용이 타당성이 있는 지 등을 점검한다. 이 때 맞춤법에 어긋난 것이 없는지를 살피는 것은 기본이다.

 

특히 터무니없는 허구적인 사실이 포함되지는 않았는지. 사실을 왜곡한 것은 없는지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참고로 예전에 오픈백과에 올렸던 위인과의 인터뷰 한 편(안시성의 영웅 양만춘 장군)을 덧붙인다. 나는 이 글에서 중학교 교사로서 양만춘 장군을 만나서 안시성 싸움의 경과를 듣는 형식으로 작성했다.

 

안시성 싸움의 경과는 백과사전 등에 있는 내용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나, 양만춘 장군과 당태종이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소설적으로 꾸민 허구이다. 또한 나와 양만춘 장군의 대화 역시 소설적인 구성이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상상은 용인이 되리라고 본다.

 

 

 

안시성의 영웅 양만춘

 

목연 (이하 문) : 저는 강원도의 시골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목연입니다. 우리 학교 뿐만 아니라 전국의 학생들에게 장군의 위업을 전하기 위해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우선 안시성의 승전을 축하합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이라는 당태종을 격퇴한 것은 청사에 길이 빛날 쾌거였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인지요?
양만춘 장군 (이하 답) : 감사합니다. 동명성제 등 열성조의 가호와 성안의 모든 주민들이 군사들과 함께 일치단결한 결과였습니다. 나는 그저 그것을 이끌어 냈을 뿐이지요.

 

: 겸손한 말씀이십니다. 장군의 위업은 한민족의 가슴에 길이 전해질 것입니다. 장군께서 지키신 안시성이란 어떤 성입니까?

: 안시성은 당태종 침공 당시 인구 약 10만에 이르던 고구려의 영지입니다. 지금은 애석하게 중국에 속해있지요. 행정구역으로는  랴오닝성[遼寧省] 하이청[海城] 남동쪽에 있는 잉청쯔[英城子]이고요.

 

: 당태종은 안시성에 왜 침공한 것인가요?

: 당태종의 목적은 안시성이 아니었습니다. 643년에 고구려와 백제를 정벌해달라는 신라의 요청을 받은 당나라는 우리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차후 신라를 침범하지 말도록 권유하였지요. 그러나 우리가 이에 불응하자 당나라는 고구려의 대막리지인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영류왕(榮留王) 살해 및 대신(大臣) 학살사건의 문책을 표방하고 644년 11월 당 태종이 직접 3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구실에 불과했습니다. 당태종의 야심은 고구려를 아예 멸망시키겠다는 더러운 것이었지요.

 

: 전쟁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 645년(보장왕 4년) 4월부터 당나라 침략군은 우리 고구려의 개모성(蓋牟城:瀋陽 동남쪽) ·비사성(卑沙城)·랴오양[遼陽]·백암성(白巖城)을 차례로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6월에는 제가 성주로 있는 안시성을 공략하기 위해 진격하였지요.

: 그 때까지 고구려 조정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이 없었습니까?

: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안시성은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요충이었습니다. 이 곳이 무너지면 평양성도 안전할 수 없으니까요. 조정에서는 북부욕살(北部褥薩) 고연수(高延壽)와 남부욕살 고혜진(高惠眞)을 대장으로 한 15만의 군사를 원병으로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당군에게 패했고, 오히려 3만 6800명의 장졸을 이끌고 항복하고 말았지요. 그로 인해 우리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당군에게 포위된 것입니다.

 

: 그랬군요.  몹시 힘든 상황이었는데요. 성의 공방전은 어떻게 진행되었습니까?

: 당태종은 이세적(李世勣)을 시켜 안시성에 대한 총공격을 시작하였지요. 그 휘하 장수 도종(道宗)은 먼저 많은 군사를 동원하여 안시성 남쪽에 토산(土山)을 쌓아올려 점점 성높이와 같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군사들도 역전의 용사들이었습니다. 성 안에서도 이에 따라 성을 높여 막았지요.  당군은 하루에 6∼7차례 충거(衝車 : 큰 나무로 성에 충격을 주는 공성기 攻城器)·포거(抛車:돌을 날리는 공성기) 등을 동원하여 성을 파괴했고요. 그러나 우리도 성 안에 목책을 세우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 정말 눈물겨운 분전이었군요. 그로 인해 당군은 퇴각한 것입니까?

: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군도 끈질겼습니다. 당나라 장수 도종은 연인원 50만을 동원하여 토산을 높이기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작전으로 높은 곳에서 우리를 공격하려는 것이었지요. 그것을 간파한 나는 함께 흙을 쌓아서 성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성안의 흙에는 한계가 있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 그야말로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네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 안시성 사수의 최대 위기였습니다. 결국 당군은 60여일 만에 안시성보다 높은 성을 쌓기에 성공했으니까요. 성을 완성한 당군은 부복애()라는 장수로 하여금 토산의 정상을 지키게 했습니다. 다음날이면 안시성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할 계획이었지요.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투쟁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며, 만사가 끝장나는 것이었습니다.

 

: 소름이 끼칠 만큼 무서운 일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는지요?

: 그러나 고구려의 혼이 우리를 지켜주었습니다. 갑자기 토산이 무너졌습니다. 아마 급히 쌓느라고 기반을 튼튼히 하지 못한 탓인 듯합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군사들을 성에서 내보내 토산을 뺏는데 성공했습니다. 당군으로서는 그야말로 공든 탑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지요.

 

: 생각할수록 통쾌한 일이었습니다. 당군은 그래서 퇴각한 것입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당태종으로서는 포기하기에는 그 동안 안시성에 들인 노력이 너무나 컸겠지요. 당군은 토산을 탈환하기 위해 3일 동안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결사적으로 사수하였지요. 그야말로 뺏느냐, 뺏기느냐를 판가름하는 마지막 사투였습니다. 날마다 6∼7회의 가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한 우리 군사들의 용맹성에 당태종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당군이 안시성을 포위한 지 3개월이 지났고, 때는 9월에 이르렀습니다. 차가운 추위가 만주 벌판을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병마()의 양식은 떨어지고, 힘들게 쌓은 토산마저 빼앗겨서 군사들의 사기마저 저하된 당태종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로서는 눈물을 머금고 철군을 결정했을 것입니다.

 

: 그런 격전 중에 장군의 활솜씨가 당태종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면서요.

: 그렇습니다. 조급해진 당태종은 몸소 성아래까지 와서 독전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것이 내 눈에 띄였고요. 나는 활을 날렸고, 그것이 당태종의 눈에 정통으로 박혔습니다. 침략자에 대한 당연한 응징이자 하늘의 심판이었지요. 아마 그것도 철군을 결정한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였으리라고 봅니다.

 

: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후련한 마음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침략자에 대해 가장 통쾌한 교훈을 준 장면이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군께서는 철군하는 당태종을 전송하셨다고요?

: 적장에 대한 예우였습니다. 철군을 앞둔 당태종은 아쉬운 마음으로 성을 돌아보고 있을 때였지요. 이미 여러 정보를 통해 당군의 퇴각을 알고 있던 터라, 그에게 전송의 말을 전한 것이지요?

 

: 그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요?

: 비록 적장이지만, 몸까지 상하고 쫓겨가는 그가 불쌍했습니다. 또 나 역시 같은 장수로서 패장의 비참한 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왕으로서의 예우를 갖추고, 위로의 말을 해주었지요.

  "잘가오, 당나라 황제시여, 옥체를 상하심은 전쟁의 소치이지 소장의 사감은 아니었습니다. 모든것을 잊으시고, 먼길을 조심해 가시기를…."

 

: 당군이나 당태종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 적장들 중에는 격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자신들에 대한 비아냥이라고 본 사람도 있었지요. 그러나 당태종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성주는 훌륭한 분이시오. 그대의 용맹성은 역사에 길이 전해질 것이요. 앞으로도 고구려 왕에게 충성을 다하면서 꽃다운 이름을 보존하시오."

  그는 적()일지라도 나의 영웅적인 지휘력에 감동했다면서 비단[] 100필과 함께 고구려 국왕에 대한 충성을 기렸습니다.   

 

: 다시 생각해도 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놀라운 전과였습니다. 한민족의 지혜와 용맹성을 만천하에 과시한 쾌거에 대해 다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끝으로 저희 후손에게 전할 말씀이 있으면 들려주시기를 바랍니다.

: 동명성제께서 세우시고, 광개토태왕 등 역대 열성조들이 호령하던 이 만주는 한겨레의 유산입니다. 나와 우리 고구려 병사들이 피땀으로 지켰던 이 안시성을 비롯한 고구려의 옛 땅을 대한의 후예들이 꼭 다시 찾아주기를 빕니다.

 

: 감사합니다. 그 말씀을 깊이 아로새기겠습니다. 또한, 긴 인터뷰에 응해주신 점에 대해서도 거듭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고맙소. 웅비하는 한겨레의 기상을 지하에서마 성원하며 지켜보겠소.

 

 

양만춘 장군과 인터뷰를 하는 형식의 위 글은 안시성 전투를 중심으로 전쟁의 진행 상황을 알아보는데 중점을 두어서 작성했다. 위와 같이 어떤 사건을 정해서 집중적으로 문답을 나눌 수도 있고, 그 인물의 일생 전반에 걸쳐서 화제를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인물의 연애담이나 가정사에 대한 질문도 한두 꼭지 포함시키면 흥미있는 인터뷰가 되리라고 본다.

 

그밖에 해당 인물의 심리적인 상황이나 사상에 대해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그 인물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을 벗어나서 지나치게 허구적인 내용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 자료 출처 : 지식 Q&A에서 답했던 것을 일부 보완했으며, 내용은 제가 알고 있는 상식과 예전에 작성했던 오픈백과를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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