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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에 저의 메일을 검색하다 보니

이런 편지가 있네요.

2007년 7월 8일에 메일로 보낸 편지입니다.

 

그때는 전교생이 30명도 안 되는 상남중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워낙 시골이니 성당에는 신부님이 안 계셨고,

주일에는 인근 부대의 사병들이 공소에 와서 함께 미사를 드렸지요.

주민과 사병들이 함께 미사에 참례하니

본당 신부님과 군종신부님이 교대로 오셔서 주일미사를 드렸고요.

 

이 편지는 군종신부님이 전역을 한 뒤에 보냈는데,

무슨 생각으로 왜 썼는지는 물론이고,

신부님의 얼굴도 아물아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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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 신부님,

이제 군종 신부님이 아닌 민간인 신부님이 되셨겠네요.

사회에서의 사목 생활이 적응되시는지요?

 

신부님으로 인해 신앙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공소에서의 신앙생활과

더구나 군인 사병이 함께 하는 공동체는 특이한 경험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신부님의 강론 말씀,

본당 신부님의 강론도 그렇지만,

여러 생각을 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신자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으리라고 봅니다.

 

공소에서 마지막 미사 때,

신부님께서는 어떤 신자 분과 이런 말씀을 나누셨지요.

 

"신부님 강론이 아주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는데,

헤어지게 되어서 아주 아쉽습니다."

 

"아유, 고맙기는 하지만, 큰일 날 말씀.

그 말씀은 신부들을 죽이는 독이 되는 말입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저의 선배 신부님께 들은 말씀인데요.

신부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도구여야 하는데,

신부의 강론이 인상에 남는다면,

하느님의 말씀은 감춰졌다는 것이지요.

 

신부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지,

자신의 말을 전하면 안 됩니다.

그 말씀이 제 귀에는 아주 달콤한 말이지만,

저를 나쁜 쪽으로 유혹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도 기억합니다.

 

"신부는 30% 정도의 신자들에게 환영을 받으면 된다.

30% 정도는 그 신부를 싫어하고,

40% 정도는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데, 여기에서 만족해야 한다.

 

만약 호감을 갖는 신자를

30%에서 더 올리려는 유혹에 빠져서 그렇게 시도한다면,

싫어하는 신자도 그만큼 늘어나고,

그것은 사목 활동에 부정적인 요인이 된다.

 

30%가 좋아하고, 40%는 그저 그렇고, 30%는 싫어하는 것

이게 가장 이상적인 신자 구도이고, 황금률이다."

 

그 말씀은 저희 교사들도 마찬가지거든요.

교사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30% 정도 된다면 만족해야 하는데,

많은 교사들이 그 이상 되기를 바라고 있지요.

그러나 교사들이 학생에게 인기를 얻을 방법이 뭐가 있겠습니까?

 

학생들에게 인기를 얻으려고 애를 쓰면,

정작 주어야 할 것(지식이나 인성)을 못 줄 수도 있겠지요.

 

그냥, 신부님이 생각나서

두서 없이 메일을 보냅니다.

성인 신부님이 되시기를 바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신부님을 위해서

기도를 하겠다는 말씀은 못 드리고요 *^^*

 

신부님이 00성당 송별 미사 때 이런 말씀도 하셨지요.

 

"섭섭하게 생각하실지는 모르지만,

저는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를 하겠다는 약속은 못 드리겠습니다.

그 기도는 제 후임 신부님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제 기도는 제가 사목해야 할 성당 신자들을 위해 바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신부님이 생각나면

신부님이 아닌

신부님의 후임 신부님을 위하여 기도를 하겠습니다.

신부님과 같은 이유로 *^^*

 

아, 그리고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저의 네이버 지식인 활동에 가끔 인용했답니다.

신부님이 가시기 전에 들은 강론 말씀도

지식인의 가톨릭 디렉토리에 바로 올렸지요.

저작권료는 안 받으시겠지요 ^^

 

신부님과 신부님이 계시는 성당에 하느님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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