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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의 리뷰로 작성했으나,

   오래 전에 절판이 된 책이라 검색이 안 되므로,

   일반 포스트로 올렸습니다.

 

* 네이버 책소개 :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39667

 


 

안흥성당 주일미사에 갔다가 구입한 책이다. 한국의 두 번째 사제인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의 편지 모음집이다. 천주교에서는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켰거나, 생전에 뛰어난 덕행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믿어져 공식적으로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이 된 사람을 '가경자-복자-성인'의 존칭으로 부르고 있다. 최양업 신부님은 지금 '가경자'로서 교황청에서는 복자위에 오르는 과정을 심사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본당 신부님께서 구입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원주교구에서는 최양업 신부의 복자위 승품을 노력하고 있는데, 신자들이 그의 삶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기도를 하라는 의도일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만나게 된 이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뜻밖에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사실 이 책에서 많은 정보를 알게 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최양업 신부는 한국의 두 번째 사제(최초의 사제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로 사제가 된 뒤 1년 만에 병사한 분이다. 그의 삶이 순교자 김대건 신부와 같이 드라마틱 한 대목도 없을 듯하고, 역사에 대한 어떤 정보가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장을 펼치는 순간에 바로 지식의 기쁨을 느꼈다. 그것은 제1부에서 한국천주교회의 간략한 역사와 함께 한국교회와 관련 있는 용어들(지목구, 대목구, 교구, 대교구, 관구 등)이 일목요연하게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성당에 오래 다녔으므로 교구에 대해서는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목구, 대목구, 관구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기보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교에는 명의주교와 교구주교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주교는 교회의 전통에 따라 자신이 담당하는 교구가 있어야 하는데, 은퇴주교나 부주교는 교구장이 아니니 그런 것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을 위해서 명의주교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이다. 은퇴주교들은 지금은 사라졌거나 기능을 상실한 교구를 담당하는 형식을 취하는데 이것이 명의주교라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약사와 용어 설명은 비록 30여 쪽의 짧은 분량이지만 내게는 지식의 보고를 만난 듯한 기쁨으로 다가왔다.

 

둘째, 최양업 신부와 최방제 신학생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1835년에 조선에 입국한 최초의 서양 선교사인 모방 신부는 조선의 선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조선인 사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세 명의 소년을 뽑아서 마카오로 유학을 보낸다. 그들은 김대건 안드레아와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다. 그중에 김대건 신부는 26세인 1846년 병오박해 때 순교했고, 최양업 신부는 1861년 41세의 나이로 과로로 병사했으며, 최방제 신학생은 1837년에 서품을 받기 전에 위열병으로 병사(20세 이전으로 추정)했다. 한국 최초의 사제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는 1984년에 성인으로 선포된 뒤에 103위 한국 순교 성인의 대표로 한국 교계에서 추앙을 받고 있다. 2019년 11월에는 유네스코는 제40차 총회에서 2021년 세계기념인물로 확정되는 등 국제적으로도 조명을 받고 있다.

 

그에 비해 신학생 신분으로 병사한 최방제, 과로로 병사한 최양업 신부는 김대건 신부의 그늘에 가려진 면이 있었다. 하지만 최양업 신부는 단순한 병사가 아니었다. 그는 신부로 서품을 받은 뒤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입국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하는 동안 만주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기회를 기다렸다. 그는 입국 이후 불과 1년여 만에 병사했으나 관할구역인 5개도의 127개 공소를 관헌의 눈을 피해 걸어서 찾아갔다고 한다. 1년 동안  걸은 거리만 7천여 리라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과로로 숨이 진 것이다. 당시 공소는 관헌의 눈을 피해 깊은 산골에 있었다. 그런 길 7천 리는 1만 리 이상의 거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활동을 한 최양업 신부의 희생이 김대건 신부에 비해 결코 뒤진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최방제 신학생에 대해서도 최양업 신부와 같은 평가를 내리고 싶다. 사제가 되어 조선의 백성을 하느님 품에 안기겠다는 꿈을 품고 이역만리 마카오까지 갔다가 병마에 쓰러질 때, 그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김대건 신부뿐만 아니라 최양업 신부와 최방제 신학생과 같은 선구자가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 교회가 세워졌을 것이다.

 

셋째 최양업 신부의 편지를 읽는 동안 감동의 연속이었다. 이 책에는 최양업 신부가 그의 스승인 르그레주아 신부에게 보낸 열여덟 통(19통의 편지 중에 9번째는 분실되었다고 함)의 편지가 실려 있다. 이 편지들은 단순한 안부가 아니었다. 만주에서 조선 입국을 기다리는 동안(1~6통)의 심경과 입국 계획 등이 실려 있고, 조선 입국 이후에는 사목활동에 대한 보고도 겸하고 있었다. 단순하게 동정이나 통계만 담은 것이 아니라 조선 신도들의 고통과 신앙의 자유를 갈구하는 모습이 간곡하고 애절하게 담겨 있었다. 특히 18세의 나이로 신앙을 위해서 동정을 지키다가 병사한 바르바라의 이야기(일곱 번째 편지 중 66~73쪽)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했다.

 

넷째, 교회사로는 물론 한국사에서도 의미 있는 기록이었다. 조선 시대에 외국인에게 20통에 가까운 편지를 보낸 경우가 최양업 신부 외에 있었을까? 개인적인 감정은 물론 조선의 상황을 진솔하게 담은 이 편지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보물이지만, 내용 역시 아름다웠다. 가톨릭 신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에게도 당시의 상황에 대한 지식과 신앙적이면서 인간적인 감동을 주는 명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누구에게 권할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톨릭 신자에게는 신앙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고, 일반인에게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느끼게 한다고 생각한다. 중학생 이상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느낌을 덧붙인다면 나는 이 책에 대해서 특별한 지식이나 감동은 기대하지 않고, 신앙적인 의무감으로 구입을 했다. 그러나 책장을 덮으면서 떠오른 생각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반가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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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부자의우주

    다시 찬찬히 느리게 읽고 싶은 이야기 입니다.
    공유 감사합니다 목연님!

    2021.02.22 17:5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목연

      거의 기대를 하지 않은 책이었는데...
      뜻밖에도 많은 지식을 얻고, 감동을 받은 책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절판이 되어서 구할 수 없는 책이 되었네요.

      2021.02.25 12:50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