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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지는 저녁

[도서] 꽃 지는 저녁

정호승 저/강병인 글씨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블로그 이웃인 소라향기 님에게 선물로 받은 책이다. 블로그를 하면서 즐거운 일 중에 하나는 인터넷 이전의 시대 같으면 서로 만나기는커녕 존재 유무도 모를 사람과 소통을 하게 되는 것이다. 책을 통해서 동서고금의 저자를 만나는 즐거움에 비유할 수 있을까? 좋은 인연에 고마워하면서 펼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친숙한 이름의 시인이 반가웠다. 국어교사로 긴 세월 동안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문학을 전했지만, 아직도 시를 보면 부담스럽다. 산문은 여러 번 읽으면서 앞뒤 문맥과 상황을 파악하면 그런대로 저자의 뜻이 느껴지는데, 시의 경우는 아무리 읽어도 감을 잡을 수 없는 작품도 있었다. 그런 작품은 참고서에 의지해서 억지로 이해를 하곤 했다. 시에 대해서는 그렇게 문외한에 가까운 청맹과니면서도 이 시에 대해서 반색을 한 것은 나로서는 드물게 시인과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정호승 시인의 작품인 「내가 사랑한 사람」은  중학교의 마지막 국정교과서 시절인 2000년대 초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린 적이 있다. 그 무렵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은 이 시를 기억할 것이다. 그때 교단에 있던 나는 당연히 학생들보다 더 많이 이 작품을 읽고 시를 파악했다. 교재 연구를 위해서 시인의 다른 작품들도 몇 편 읽다보니 시의 경향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2018년에는 횡성군 도서관 문학 기행 때 시인과 1박 2일 동안 함께 하면서 특강을 듣기도 했다. 교재 연구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름 배경지식이 있는 시인이니 부담보다는 반가움이 컸던 것이다.

 

둘째, 유홍준 교수의 명언이 생각났다. 그는 국민 필독 명저라고 할 수 있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이런 명언을 들려준 적이 있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되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미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

 

어떤 대상을 보거나 읽더라도 조금이라도 알고 보는 사람과 모르고 보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이다. 황진이와 벽계수와 서화담의 사연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똑같이 황진이와 서화담의 시조를 읽었다고 하더라도 이해도는 하늘과 땅만큼 다를 것이다.

 

작품에 얽힌 사연을 모르는 사람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라는 시조를 읽으면서 벽계수가 푸른 물이 아니고 인명이며, 명월은 달이 아니라 황진이 자신임을 비유한 운치를 전혀 깨닫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어린 후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는 시조를 읽으면서 그것이 황진이를 생각하는 서화담의 마음임을 어찌 짐작할 수 있을까?

 

뜬금없이 유홍준 교수의 명언을 떠올린 이유는 『꽃지는 저녁』은 단순한 시집이 아니라 강병인 선생의 작품과 함께 어우러진 시와 글과 멋의 삼위일체를 이룬 작품이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새삼스럽게 유홍준 교수의 명언을 실감했다.

표제작인 「꽃지는 저녁(18~20쪽)」이다. 이 시집은 이와 같이 강병인 선생의 시혼이 담긴 글씨를 먼저 소개한 뒤 시인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글씨의 아름다움은 느껴지지만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저 글자가 무슨 자인지를 한참을 생각해야 겨우 알 수 있었다. 그래서야 시의 감상이 되겠는가? 20쪽의 활자를 보고서야 겨우 분위기가 파악되니, 마치 영어 문장은 이해를 못 하고, 자습서의 해석을 보고야 고개를 끄덕이는 영어 부진아의 꼴이다.

 

「수선화에게(26~28쪽)」이다. 이 시의 글씨 역시 난해하기는 「꽃지는 저녁」과 차이가 없었으나 활자를 보지 않아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이 시는 알고 있었고,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어에서 위안을 받은 적도 있기 때문이다. 산봉우리 옆에 대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것처럼 보이는 형상이 '외'자를 뜻함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되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미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의 뜻을 이 두 작품만으로도 확인이 가능했다.

 

셋째, 책장들을 넘기면서 우리 고장의 김경래 시인이 생각났다. 강병인 서예가의 글은 한참을 생각하면서 뜻을 파악하고, 그 뒤에 시와 글과 멋의 조화를 생각하면서 감상을 해야 하니 어찌 보면 독자를 피곤하게 하는 책이다.

이 작품들은 똥(23쪽) , 별(30쪽), 봄(34쪽)이다. 이 책의 작품들은 모두 이런 글로서 시작되고 있다. 때로는 정자체로 써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글도 있지만, 대부분 한참을 생각해야 읽을 수 있다. 좀 고단하기는 하지만,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되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미 예전과 같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꽃지는 저녁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그 정도의 수고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김경래 시인을 생각한 이유는 그는 '시골편지'라는 주제로 매주 짤막한 문구의 시화를 마을의 쉼터에 게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경래 시인이 안흥파출소 앞 공터에 매주 한 편씩 소개하는 시화들이다. 시인은 힘든 세파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을 위해서, 특히 코로나19로 어려움이 더해진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 편지들을 쓰고 있다고 한다. 『꽃지는 저녁』 역시 같은 심정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비록 시공이 달라도 예술은 서로 통하는가 보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정호승 시인과 강병인 선생의 글은 이미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인의 시와 선생의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을 작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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