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홈캉스 : 읽고 싶은 책


우리 지역인 강림도서관에 있는 책입니다.

지금 10권 정도 읽었고요.

홈캉스 시간에는 벅차겠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 완독하고 싶네요.

 

 

최근에 읽은 '폭풍의 언덕' 리뷰를 덧붙입니다.

 

 

강림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이라는 이름에서 신뢰를 느꼈고, 초등학교 시절에 언뜻 스친 추억이 있는 작품이기도 해서 눈길이 갔다. 너무도 많은 세월이 흘러서 기억이 흐릿하지만, 이 작품은 표지는 매력적이었는데, 내용은 그렇지가 않은 듯해서 완독을 못한 듯하다. 지금은 읽을 수 있을까, 라는 호기심을 느끼면서 선택했다. 그런 인연으로 만난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런저런 추억을 생각했다. 초등학교 시절, 시골의 나의 모교에는 도서관이 없었다. 도서를 담당하는 선생님의 담임 교실에 책장이 2개 정도 있었는데 책은 모두 몇 백 권 정도에 불과했던 듯하다. 그중에 읽을 만한 책은 학원사의 세계 명작 시리즈 60권이었다. 『삼총사』, 『암굴왕』, 『보물섬』, 『소공자』, 『소공녀』 등을 그때 읽었다. 그중에 한 권이 『폭풍의 언덕』이었다. 제목이 눈길을 끌었고, 표지는 폭풍 속에서 망토를 걸치고 말을 탄 남자가 한 손을 치켜든 것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완독하지는 못한 듯하다. 어떤 남자가 그 집의 여인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형식이었는데, 유령도 나오는 등 괴기스러웠다. 등장인물도 어두운 분위기였고……. 그 시절의 나는 그런 내용은 선호하지 않았던 듯하다.

 

이 책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교시절이었다.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감동적으로 읽었는데, 『폭풍의 언덕』의 저자인 에밀리 브론테가 샬롯 브론테의 동생인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는데, 역시 나의 취향은 아니었다.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도 아니고, 영웅적인 모험담도 아니며 책장을 넘길수록 무겁기만 했다. 세로 쓰기로 된 편집에 번역도 딱딱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택한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에 대한 신뢰였다. 또한 만화로 되어 있으니 그리 지루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책장을 넘기면서 그것을 확인했다. 나이가 들면 취향이 변하는 것일까? 어두운 스토리에 대한 부담감을 거의 느끼지 않고 몰입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둘째, 독서에도 연륜이 필요함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학창 시절이나 청춘시절에 거부감이나 지루함을 느꼈던 작품들이 어느 시점부터 사라진 것을 느끼곤 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특히 그것을 느꼈는데, 나이가 들면 이런저런 사연을 대부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히스클리프는 그야말로 냉혹한 인물이다. 어린 시절의 천대를 잊지 않고 언쇼와 리튼 두 가문의 후손들을 거의 파멸시키는데, 엄밀히 따지면 히스클리프를 거두어 준 것은 언쇼 가문이었고, 리튼 가문이 크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스클리프에 의해 몰락하는 두 가문을 보면서 나는 주인공보다는 피해자들에게 동정을 느꼈던 듯하다. 히스클리프가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한 힌들리와 그의 아들 헤어튼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그럭저럭 이해를 한다고 해도, 자신의 아들인 린튼과 연인의 딸인 캐시까지 파멸로 몰고 가는 것은 수긍이 가지 않았다. 권선징악과 교훈적인 작품들에 길들어 있던 학창 시절에는 책장을 넘기면서 히스클리프의 잔인함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듯하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독자를 후련하게 하는 장면은 거의 없으니, 책장을 넘기는 것이 고문을 당하는 심정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은……? 그보다 더한 현실도 무수히 보지 않았던가? 히스클리프에게 직접 살해당한 사람은 한 명도 없으니, 현대의 법률로 보면 그는 무죄이고, 나는 담담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셋째, 다양한 상식을 제공하는 책의 편집이 마음에 들었다. 서울대 선정 문학 고전 시리즈의 특징은 각장이 끝날 때마다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 풍부한 자료를 소개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저자의 세 자매의 작품들, 원작에서 소개하지 않은 부분(히스클리프가 축재를 한 과정, 당시의 상속법 등)까지 들려주고 있어서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폭풍의 언덕』을 영화화한 작품들도 소개하는 등 다양한 상식을 몰입하면서 얻을 수 있었다. 히스클리프는 저자의 고조할아버지(그의 삶은 히스클리프와 상당 부분 유사)를 모델로 했다는 것은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넷째, 원작과는 약간의 차이와 함께 미진한 대목도 있었다. 원작은 록우드란 청년이 드러시크러스 저택(리튼 가문이 파멸한 후에 히스클리프의 소유가 됨)에 세를 들어 살면서 히스클리프를 만나고, 가정부인 넬리 딘(하녀이지만 언쇼와 리튼 가문의 지주와 같은 존재)에게 지난 이야기를 듣는 형식의 액자 소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록우드는 아예 등장을 하지 않는다. 또한 타락한 힌들리가 모든 하인들을 내칠 때 조셉과 넬리만 남기는 것으로 보아서 두 인물의 비중이 높은 듯한데, 이 책에서는 조셉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다. 그뿐만 아니라 내용을 건너 뛴 듯한 대목도 몇 곳에서 느꼈다. 아마도 긴 내용을 만화로 편집하면서 분량 조절로 인한 생략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재미를 느낄 수 없었지만, 이 책은 초등학생도 몰입을 시킬 수 있을 듯하다. 지금의 아이들이 우리 세대보다 더 안목이 높은 면도 있겠지만, 책의 구성이 좋았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 이 책을 만났다면 나는 이 작품에 대해서 절대로 실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초등학생에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원작을 읽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영화나 만화에서 흥미나 감동을 느낀 작품은 원작까지 읽고 싶은 것이 정상이겠지만……. 답답하고 우울한 이야기를 되새기기에는 아직 수양이 부족한가 보다.

 

 

NEW 서울대선정인문고전(전60권)

주니어김영사 편집부
주니어김영사(전집) | 2019년 08월


우리 지역인 안흥도서관에 있는 책입니다.

지금 10권 정도 읽었고요.

역시 홈캉스 기간에는 힘들겠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 완독하고 싶습니다.

 

 

최근에 읽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리뷰를 덧붙입니다.

 

 

안흥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이라는 이름에서 신뢰를 느끼고 빌렸는데, 집에 온 순간 '아차!' 싶었다. 나는 니체의 책을 두 권을 읽었는데, 두 권 모두 힘겹게 책장을 넘겼고, 완독한 뒤에도 무엇을 읽었는지 남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날이 너무 더운 탓에 내가 실수를 했나 보다. 그래도 지금까지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을 읽으면서 후회를 한 적이 없었고, 만화로 되어 있으니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를 해보았다. 그런 인연으로 만난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니체에 얽힌 추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니체의 책을 처음 만난 것은 고교 시절이었다. 학교 도서관에 이 책이 있기에 빌렸는데, 그때는 니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제목이 매력적이라서 대출을 받았다. 너무도 많은 시일이 지났으므로 기억이 흐릿하지만, 읽는 내내 답답했다. 전체적으로 주인공인 차라투스트라가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 내용인데, 소설이라고 할 수도 없고,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도 안 갔다. 그야말로 기를 쓰면서 책장을 넘겼지만, 머리에 남는 것은 거의 없었다. 

 

두 번째로 만난 것이 2013년에 서평단에서 받은 『우울할 땐 니체』였다. 책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상황이고, 니체라는 사람이 좀 어렵게 느껴졌지만,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우울할 때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가 보다, 라고 기대를 했다. 그러나 정말 힘겹게 책장을 넘겼다. 그 책을 읽고 쓴 나의 리뷰의 일부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제목 정도이다. '우울할 땐 니체'를 읽으면 그 뜻을 생각하느라고 우울함을 잊을 지도 모른다는 것……. 아무튼 저자는 니체를 이해했으니 이 책을 썼을 테고, 역자는 뜻을 파악했으니 책을 옮겼을 것이다. 출판사 역시 그 의미를 짚었기에 이 책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니체를 이해를 한 사람은 이 책을 통해 우울함에서 벗어날지도 모르지만, 나는 더욱 마음이 무거워지는 듯했다. 이 책이 뜻있는 독자를 많이 만나서 이 땅의 인문학을 한 차원 높이는 디딤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책의 독서는 책을 읽었다기보다 책장을 넘기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문장 하나하나는 어렵지 않고, 가끔 가슴을 울리는 명문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연결이 안 되니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 리뷰가 예스24에서 우수 리뷰로 뽑혀서 어리둥절한 추억이 있다.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쓴 마음을 격려하기 위해서였을까?

 

학창 시절에 읽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도 그런 느낌이었던 듯하다. 수십 개의 이야기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거기에 나오는 대화가 좋게 말하면 선문답이고, 나쁘게 말하면 횡설수설처럼 들렸다. 요즘은 몸이 고단해서 개인적으로 독서 실적이 아주 저조한데 하필이면 그런 추억이 있는 이 책을 빌렸을까, 내가 책을 고를 때 정신이 없었나 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둘째, 니체에 대해 인간적인 친근감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니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어렵기도 하지만, 특히 니체의 저서나 그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두 번이나 진땀을 흘렸으므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의 대표적인 말이 '신은 죽었다'인데, 가톨릭 신자인 나로서는 인정하기 힘든 말이기도 했다.

 

이 책은 모두 11장으로 짜여 있는데 1장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어떤 책인지 설명하고 있고, 2장은 니체가 어떤 사람인지 들려주고 있으며, 3장은 '신은 죽었다'의 의미가 무엇인지 풀이하고 있다. 즉 이 책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만화로 꾸민 것이 아니라, 니체와 그의 사상과 책에 대해 알려주는 책인 것이다.

 

이 책에 대해 친밀감을 느낀 첫 번째 이유는 저자는 몇 번이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포함해서 니체의 책들이 읽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니체에 대해서 두 번째 읽은 『우울할 땐 니체』처럼 책을 읽으면 우울한 마음이 사라질 듯 독자를 유혹한 뒤 오히려 더욱 답답하게 하는 제목보다는 쉽지 않은 책이라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부담을 덜어준 것이다. 주사를 맞을 때도 그냥 주사를 놓는 것보다 '따끔할 거예요.'라고 예고를 하면 미리 긴장을 하므로 덜 아픈 것과 같은 이치다.

 

니체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대를 이어서 목사였고, 외할아버지도 목사였다고 한다. 니체도 어린 시절에는 목사를 꿈꾸었다고 하는데, 그런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니체가 5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6세 때에 남동생마저 병사했다. 그 후 니체의 가족은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함께 사는 가족은 할머니, 어머니, 두 명의 고모, 여동생까지 여섯 명 중에 남자는 니체뿐이었다. 이 책에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듯하고 노처녀인 두 명의 고모와 어머니 사이에 그랬을 것을 암시하고 있다. 여동생에게 있어서 니체는 아버지이자 오빠면서 숭배의 대상이기도 했다. 집안의 모든 여성들이 니체에게 집착했고, 어린 니체는 그것이 힘겨웠을 것이다. 특히 경쟁적으로 니체에게 집착하는 어머니와 여동생은 큰 부담이었다. 니체는 어린 시절부터 위장 장애, 극심한 두통, 눈의 통증 등으로 고통을 겪었는데 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여동생은 성장한 이후에도 니체를 괴롭혔다. 니체가 사랑한 여성인 살로메에게 질투를 느낀 나머니 둘을 이간질해서 갈라서게 했고, 니체에 관한 악소문(나치주의자, 인종 차별주의자, 반유태주의자 등)의 상당수는 니체 사후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여동생의 모함 또는 과장에서 나왔다고 한다. 끝내 정신병 진단을 받은 니체는 혼미한 상태에서 여동생의 간호를 받으며 살았는데, 그 기간이 니체에게는 감옥 같은 나날이었으리라고 본다.

 

문득 허클베리 핀이 생각났다. 그는 톰 소여와 함께 인디안 조가 숨겨둔 보물을 발견한 뒤에 더글라스 부인에게 양육이 맡겨졌다. 핀은 안락하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부인에게서 탈출을 하면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전개 된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행복한 결말이 되면서 셀리 부인의 양자가 되지만……. 작가인 마크 트웨인은 핀이 거기서도 탈출을 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니체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었다면, 그래서 좀 더 일찍 어머니와 여동생의 그늘에서 탈출을 했다면 만년의 고통은 없었을지 모른다. 물론 그런 고통이 있었기에 니체의 세계적인 명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나올 수 있었고, 허클베리 핀은 자유로운 영혼은 얻었을지 모르지만 책을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번민 속에 살아간 니체에게 인간적인 친밀감을 느끼면서 이 책에 애정을 지니고 읽을 수 있었다.

 

셋째, '신은 죽었다'의 의미를 짐작하게 되었다. 이 말로 인해서 니체는 기독교인들의 공적이 되다시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니체의 진의는 신의 죽음이 아니라 신을 죽게 한 인간의 욕심을 꾸짖는 것이다. 니체는 신을 떠난 것이 아니라 보다 영원한 신의 사랑을 추구한 것이라고 느껴졌다. 

 

"신은 죽었다'는 차라투스트라(영어식 표기로는 조로아스터)가 세상에 나오면서 (니체의 책 속에서 설정한 가상 현실) 처음 만난 성자에게 한 말이다. 이 대목을 몇 번은 읽었지만 사실 완벽하게 이해가 안 된다. 다만 이런 뜻이 아닌가 싶다.

 

불완전한 존재인 사람은 완전한 존재와 완전한 세계를 바라는데,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신과 천국이라는 것이다. 애초부터 신과 천국이 있는 것이 아니고, 불완전하고 나약한 존재인 인간의 관념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니, 그 신은 존재하지 않은 허구, 그러니 죽었다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완전한 신이 있다면 그는 살해당했고, 살인범은 인간이라고 했다.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연민을 지니고 있는 신의 존재를 견딜 수 없다고 했다. 누군가 자신을 동정하는 것만큼 자신을 초라하게 하는 것도 없고, 추악한 인간은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신을 증오하게 되었고, 결국 신은 떠났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하고, 로마 법정에서 예수를 죽인 것은 인간이 신을 죽인 것이 아니겠는가? 신은 추악한 인간들에 의해 수없이 죽었다는 것이다.

 

니체는 기독교와 사제들도 신을 죽인 공범이라고 비판했다. 

 

"니체가 보기에 기독교의 사제들과 그들이 세운 교회는 본래 예수 그리스도가 전했던 가르침을 왜곡하고 오히려 예수가 그토록 비판했던 가치들로 무장해 있었어. 그래서 니체는 교회를 예수의 무덤이라고 불렀단다. (이 책 63쪽)" 

 

니체가 교회와 사제들을 신의 살해자로 지목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예수를 너무나 위대한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이 죽었다'는 신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인류를 구원했듯이, 더 큰 부활과 구원을 제시한 것이 아닌가 싶다.

넷째, 문득 이상(김해경)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학창 시절에 그의 작품들인 「날개」와 「오감도」들을 배울 때, 국어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상은 시대를 앞서 간 천재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잘 이해가 안 갈 수가 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이상의 작품들이 어렵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앞서갔다는 것인가? 니체의 작품이나 사상 역시 그렇다. 처음 만났던 학창 시절이나 두 번째 만났던 10여 년 전이나 세 번째로 만난 지금이나 여전히 어렵다. 책장을 덮고서도 나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니체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한 구절 한 구절은 어려울 것이 없고, 한 대목 한 대목은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전체적으로는 종합이 되지 않는다.

 

내가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긴 세월 동안 국어교사로 생활했고, 읽고 리뷰를 쓴 책만 해도 2천여 권인 나다. 그런 내가 어려움을 느낀다면, 니체는 도대체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글을 쓴 것일까? 100년 후의 독자들에게도 이상의 작품은 난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니체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싶다.

 

다섯째, 니체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친밀감이 느껴진 책이다. 지금까지 읽은 3권 중에서 이 책이 가장 흥미 있었다. 그나마 몰입을 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책장을 덮고 났을 때는 무엇을 읽었는지 흐릿하게 느껴졌지만, 읽을 당시에는 이해가 되는 듯 느껴졌다. 아마도 최대한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꾸민 편자들의 노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잘 모르겠다.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고등학생 이상이라도 니체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니체에 대하여 알고 싶은 독자는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었으면 좋을 듯하다. 책장을 덮으면서 느낀 마음을 한 세 번쯤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니체에게 친근감과 매력을 느끼게 하는 책이라는 의미이다. 확실한 것은 니체의 글은 독자의 교양을 한 차원 높여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