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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도서]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김태권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이 책은 횡성 한누리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횡성에서 가장 큰 농어촌버스승강장인 만세공원 옆에 있는 이곳은 비록 작은 도서관이지만 이용하기에는 가장 편리한 도서관인 듯하다. 횡성군은 공공도서관마다 서로 연계가 되어 있으므로, 어느 지역에서 책을 빌렸던 다른 지역의 공공도서관에 반납할 수가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이곳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좀 더 읽고 싶으면 빌린 뒤에 자신이 사는 지역의 도서관에 반납하면 되니……, 정말 세상이 좋아졌다는 것이 느껴진다.

 

한누리 도서관에는 여러 번 들려서 책을 읽었으나 빌리기는 처음이다. 내가 사는 강림이나 안흥에도 도서관이 있으니 굳이 이곳에서 빌릴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강림이나 안흥에서 보지 못한 책이기에 빌린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만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 보겠다.

 

첫째, 십자군에 대한 실망이 더욱 커지는 씁쓸함을 느꼈다. 내가 십자군에 대해서 처음으로 읽은 책은 초등학교 때 학원사에서 청소년 문고로 나온 『십자군의 기사』였다. 벌써 많은 세월이 흘렀으므로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십자군에 지원한 소년 기사가 주인공이었다. 영국의 사자왕으로 알려진 리처드 1세가 나왔던 듯하다.

 

가톨릭 신자인 나는 십자군을 성원했고, 결말에서 십자군의 승리를 기대했는데 휴전 상태로 끝났던 듯하다. 십자군과 싸운 동방 군대들은 사악한 이교도 집단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오히려 인간적인 면이 보여서 곤혹스러웠다. 그 후 중고교에 진학하면서 세계사 시간에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배웠다. 8회의 원정 중에서 성공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1회뿐이라는 것을 알고 실망을 하기도 했다. 그 후 단편적으로 십자군을 다룬 글을 통해 십자군의 만행이 극심했고, 오히려 이슬람 군이 관대했다는 기록도 읽었다.

 

그래도 십자군의 동기는 순수했을 것이라고 믿었으나 이 책을 통해 십자군은 신앙심과는 큰 관계가 없는 정치적인 영향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십자군을 통해서 성지 탈환을 주창한 교황 우르바노 2세 역시 그리 존경할 만은 인물이 아님도 알게 되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십자군은 신성할 것이 전혀 없는 가톨릭이 세상에 남긴 가장 큰 해악이라는 것이 느껴지면서 새삼스럽게 씁쓸했다.

 

둘째, 군중 십자군과 은자 피에르의 정체를 파악하면서 신앙의 독소를 느꼈다. 십자군 전쟁은 교회와 서방 각국의 왕들의 여러 정치적인 이해타산의 합집합이지만, 그 계기는 은자 피에르의 꿈이었다. 한때 잘나가는 지식인이었으며, 고위 정치인의 밀사를 맡기도 하는 등 성공한 인생을 누리던 피에르는 예루살렘에 여행을 갔다가 꿈을 꾸었다고 한다. 베드로 성인이 나타나서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하라는 전쟁을 명했다는 것이다. 피에르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초기에는 그를 미치광이로 취급했으나 각국의 왕들로부터 교회의 기득권을 지키려던 교황 우르바누스 2세와 측근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성지 탈환의 전쟁이 시작되면 그 주체는 당연히 교회가 될 것이고, 교회의 영향력은 증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방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맹목적인 신앙심에 들뜬 군중들에 의해 십자군 전쟁이 계획되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신앙심의 발로라고 이해할 수 있다. 십자군이 조직되기도 전에 공명심이 들뜬 피에르는 군중 십자군을 이끌고 동방으로 진군했는데, 그들은 예루살렘이 어디인지도 몰랐다. 가는 곳마다 이곳이 예루살렘이냐고 물었다니,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멀쩡히 기독교를 믿는 나라들까지 침공을 하고 약탈을 했으며, 잔인한 살육을 감행했다. 아마도 2천 년 기독교의 역사에서 신구교의 갈등이나 마녀재판 등 종교로 인해 죽은 사람보다 십자군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서구인들의 유태인에 대한 거부감은 십자군 전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 기독교와 유태교와 이슬람교가 지금과 같은 대립은 없었다는 것이다. 피에르의 광신을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부시의 이라크 침공 등과 연계한 작가의 재치(작가는 피에를 따라다니는 나귀의 얼굴을 부시로 그림)가 놀라웠다.

 

피에르를 보면서 역사가 되풀이됨을 느꼈다. 1950~1954년 미국을 휩쓴 일련의 반공산주의 선풍인 매카시즘이 생각났다. 매카시는 1950년 2월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폭탄적인 연설을 하면서 좌익을 악마로 표현하며 동서 진영의 냉전을 더욱 부추겼다. 그의 말은 아무 근거도 없었지만, 공산당을 탄압하려는 미국의 우익에 좋은 먹잇감이 된 것이다.

 

어찌 미국뿐일까? 6.25전쟁 이후 집권을 한 한국의 우익진영에서는 반대파들을 제거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종북좌익'이었다. 70년대 어느 대학 총장이었던 A 신부도 떠올랐다. 그는 분신자살한 김기설 씨의 배후가 강기훈 씨라느니,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정치인이 수십 명이라느니 등의 말로 공안 정국 조성을 부추겼지만,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보여주지 못했다. 작가는 피에르의 후예들로 히틀러, 매카시, 부시 등을 거론했지만, 나는 A 신부도 포함시키고 싶었다.

 

셋째, 십자군 전쟁에 대한 환멸로 2편을 읽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십자군에 대한 나의 상식은 8차례의 십자군 원정이 대부분 실패했고, 그중에는 신앙과 관계없는 탐욕으로 인한 범죄로 볼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최소한 1회 십자군 전쟁은 성공했고, 신앙의 승리라고 보았다. 그러나 1회 전쟁의 결과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어느 시점에서 바라봐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그래도 성공적이라고 평가를 받는 1차 원정이 이 정도였다면, 2차 이후가 그려질 다음 권에서는 수치스러운 장면이 얼마나 많이 등장할 것인가? 그것을 확인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십자군 원정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의 역사와 서구인들의 생각을 알기 쉽고 표현한 걸작이다. 일반인들의 교양이나 흥미는 물론이고 학생들의 세계사 이해에도 큰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본다. 중학생 이상의 독자라면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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