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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동란비화 : 인천상륙작전

[도서] 6.25 동란비화 : 인천상륙작전

연정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6.25 전쟁 비화는 한국 전쟁의 숨은 영웅인 연정 대령의 비화를 담고 있다. 연정 대령은 한국 전쟁 당시의 공적으로 미국 은성무공훈장을 3회 받았다. (연정 대령은 한국 정부에서 화랑무공훈장과 을지무공훈장을 받음) 1차 훈장은 덕적도의 인민군 동태를 파악하여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게 한 공로, 2차 훈장은팔미도 등대불 켜기를 성공한 공로, 3차 훈장은 특수부대를 이끌고 북한에 침투하여 페스트 만연 정보가 허위라는 것을 밝힌 공로로 인해서이다.

 

한국 전쟁 중에는 국내외의 인물 중에서 무수한 영웅이 출현했지만, 미국 은성무공 훈장을 3회나 수상한 한국인은 연정 대령이 최초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러나 국내에서는 그의 공적은 물론이고 그가 은성무공 훈장을 3회나 받은 영웅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도 많지 않다. 심지어 연정 대령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 그는 한국 전쟁의 숨은 영웅인 셈이다. 그가 한국전쟁 당시 혁혁한 공적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활약이 일반인에게 생소한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육군 특무부대(CIC) 김창용 대장과의 압력으로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연정 대령은 어떤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오해로 인해서 김창룡의 특무부대에서 체포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으로 탈출해서 미군 특수 부대에서 복무했다.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미군 소속으로 활동했으니 한국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둘째, 해군 휼병감실의 탄피밀수출의 연루자였다. 김창용의 특수 부대는 연정 대령이 해군 휼병감실의 탄피 밀수출에 관련된 혐의를 발견하고 체포를 시도했는데, 그가 연루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탄피를 밀수출한 의도는 개인적인 착복이 아니었다. 건국 직후 열악한 해군의 후생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연정 대령은 일단 체포가 되면 그것을 해명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고 망명을 택한 것이니,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다. 또한 그로 인해 일본에서 미군의 특수요원이 되었고, 인천상륙작전 등에서 큰 공을 세웠으니, 연정 대령의 과가 1할이라면 공이 9할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셋째, 대부분의 활동이 유엔군 산하에서 이뤄졌고, 예편 이후 미국에서 생활했다. 한국군 실세였던 김창용 대장을 비롯한 과거의 동료나 상관들의 입장에서 볼 때 비리 혐의로 일본으로 망명했던 연정 대령이 유엔군 첩보부대 책임자가 되어 귀환했을 때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미군의 소속이니 어찌할 수 없었다. 한국군이 아니라 미 중앙정보국 극동지역 팀장 등으로 활동하는 연정 대령이 달갑지 않았으나 지난 일로 문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미국 해군 대령으로 예편한 이후에는 미국에 거주하며 재미한국 6.25참전동지회 회장, 재미 미국 5도민연합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다 2002년 향년 77세로 작고했다. 그 과정에서 그의 활동의 많은 부분이 국내에서는 가려졌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공적으로 둔갑되기도 했다.

 

넷째, 미국 군부에서 맥아더 원수가 퇴진하면서 주류에서 소외되었다. 연정 대령은 맥아더 장군 휘하의 첩보부대에서 활동했다. 그의 자서전을 보면 맥아더 장군의 참모였던 윌로비 장군 등과 깊은 교류가 있음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의 후원자라고 할 수 있는 맥아더 원수가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유엔군 사령관에서 해임되고 불명예 퇴진을 하면서 그는 미군에서도 주류에서 소외되었다. 한미 양국 군대에서 비주류가 된 것도 그의 공적이 가려진 원인 중에 하나로 보인다.

 

이 책은 '캐논 기관에서 드러난 증언'이란 부제 아래 연정 대령의 상관이었던 미군 특수부대장이었던 잭. Y. 캐논과 아우인 연상 씨의 증언을 중심으로 연정 대령의 활약상을 정리하였다. 또한 부록으로 그의 부음이 전해졌을 때 중앙일보 2(최익재 기자 기사, 진창욱 대기자 칼럼), 조선일보 2(이석호 기자, 지호진 기자), 인천신문(김석배 객원기자) 등 여러 언론에서 조명한 기사와 칼럼도 소개하고 있다.

 

한국 전쟁의 분수령이었던 인천 상륙작전, 신의주 작전, 원산 작전 등에서 연정 대령의 역할, 북한에 침투해서 각종 정보를 탐색하던 비화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이런 영웅이 왜 철저하게 숨겨졌던 것일까, 라는 생각에서 한숨이 나왔다. 한국 전쟁사에서 그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오직 미국 정부의 은성무공훈장 3개와 한국 정부의 화랑무공훈장과 을지무공훈장이 그의 공적을 증언할 뿐이다. 이 훈장들은 그의 사후 유족들에 의해 전쟁기념관에 기증되었다. 어떤 사람의 공적을 과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공적 자체를 없던 것으로 지워버리는 것도 역시 옳지 않을 것이다. 부디 연정 대령의 공적이 있는 그대로 기록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는 연정 대령의 가족사도 담겨 있는데, 그 대목도 흥미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 연준은 영친왕 이은의 서연관으로 함께 도일한 뒤 도쿄 고등상업학교에서 한문과 한글을 가르친 구한말의 지식인이었다. 아버지 연학년은 한국 개화기의 선구자이자 연극계의 선구자로 토월회백조회의 동인으로 참가했고, 피겨 스케이팅을 처음으로 선보였으며, 연식정구 초창기의 대표 선수였다. 어머니 황귀경은 당대의 인텔리 여성으로 미모도 뛰어났다. 연학년과 황귀경의 결혼식은 모던 보이모던 걸의 결혼식으로 화제가 되어 조선일보(1924. 10. 27, 장안에 소문난 '모던 보이''모던 걸'의 결혼식) 등에 기사화되기도 했다. 1920년대 문화계의 여러 부문에서 선구적인 활동을 했던 연정 대령의 부친인 연학년이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1938년에 요절하였기 때문이다. 개화기의 선구자 연학년과 한국 전쟁의 영웅인 연정 부자는 민족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도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어느 면에서 보면 비운의 대물림일 수도 있을 듯하다.

 

* 덧붙임 : 연정 대령의 유족들은 2016년에 '6.25동란 비화'를 펴냈고, 2021년에 '6.25전쟁 비화'를 펴냈다. 두 책 모두 저자는 연정 대령으로 되어 있고, 표지가 비슷하지만, 내용은 일부 중복이 되지만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인터넷 서점에서는 2021년에 나온 '6.25전쟁 비화'가 검색이 되지 않으므로, 이 리뷰는 '6.25동란 비화'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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