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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일기장에서 나눈 문답입니다.

목연샘!

그대는 올해가 얼마 남지 않은 오늘 스스로에게 어떤 위로의 편지를 쓰고 싶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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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비슷한 질문이 있었지요.

그때 했던 답변을 다시 올립니다.

 

지금까지 잘 견뎌왔다.

아쉽거나 안타까운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는 법이니

삶이란 다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저런 일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삶의 과정은 멀고 긴 길이다.

 

스스로를 어리석거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지금까지 수십 년을 버티며 살아온 잘 살아오지 않았나.

살아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더구나 생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삶은 칭찬 받을 만하다.

 

가능하면 줄 수 있는 것을 베풀면서 살자.

이제부터 허락된 기간은

신과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넘치도록 받은 것을 보답할 때다.

 

매일 생각하면서 무언가를 기록하자.

보잘것없는 삶이라도 기록은 위대하다.

 

말이나 글로 남을 무시하지 말자.

아무리 못된 사람이라도 그도 나와 같은 인간이다.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그분의 뜻을 실천하도록 노력하자.

지난 나날은 기적의 연속, 이 모두 하느님의 사랑이었다.

 

지금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자.

일의 성패를 좌우할 수는 없지만,

노력만은 내 힘으로 할 수 있다.

 

나보다 부족한 이를 최대한 배려하자.

그래야 나보다 뛰어난 이들이 나를 배려할 것이다.

 

가능하면 이웃을 격려하고 위로하자.

나의 이웃도 내게 그렇게 해 줄 것이다.

 

부모님은 슬하에 6형제를 두셨습니다.

나는 셋째였고요.

내 위로 두 형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어린 나이로 병마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고 하고,

내 밑의 아우는 고1의 나이에

역시 일찍 떠나야 했습니다.

그로 인해 셋째 아들이었어야 할 나는

뜻하지 않게 3형제의 맏이라는 중책을 맡았네요.

 

아무튼 나는 우리 형제 중에서도

두 형과 아우보다 오래 살고 있으니,

최소한 기본적인 삶은 살아온 듯합니다.

아마도 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도

당신들 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 ‘나’에 대해서

대견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런 나에 대해서 이런 위로라기보다는

격려의 말을 하고 싶군요.

 

목연!

지금까지 잘 했듯이,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남은 날이 설마

살아온 날보다 더 길기야 하겠는가?

마지막이 오는 순간까지

지금까지 했던 것만큼 노력하면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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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그러셨군요.
    주위에서도 보면 차남인데 장남의 삶을 살아가거나,
    둘째 또는 막내 며느리로 갔는데 여차저차해서 맏며느리가 된 경우를 봤습니다.
    관상이라고 하지요.
    차남이나 삼남임에도 장남 팔자로 나오면 장남이 무슨 일이 있거나, 여타의 일로 장남 역할을 못하고 차남이 장남 노릇하는 경우를 봤습니다. 돌아가신 제 아버지가 차남이신데 평생 부모님 모시고 농사 지으시면서 제사도 지냈고. 백부님께서 당시 석탄공사 직원이셨는데 발령에 따라...나중 정착하시고 제사는 지내시겠다고 했는데 덜컥 편찮으시다 돌아가심...제 아버지께서 장남 팔자를 타고 나셨는지는 모릅니다만...

    2021.11.21 21:59 댓글쓰기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