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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어느 가을 날

친구들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목연정 원두막에 앉아서 술잔을 나누었지요.

바람이 불자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고요.

 

그러자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낙엽이 지니 국어시간에 배운 시가 생각난다."

 

다른 친구가 말을 받았고요.

"무슨 시?"

"어느 머언 곳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

"???"

 

우리가 궁금해하자 그 친구는 말을 이었습니다.

"낙엽 지는 소리를 옷 벗는 소리에 비유한 것이잖아."

 

그러자 다른 친구가 말을 받았습니다.

"무슨 말이야? 그 시는 비 오는 소리를 비유한 것인데."

"아냐, 내가 이 시는 확실히 배웠다고. 낙엽이야."

"내 생각에는 바람 부는 소리 같은데…….

야, 목연! 국어 선생이니까 알겠지.

낙엽, 비, 바람! 어느 게 정답이야?"

 

그렇지 않아도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기억을 되새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쩌지요.

'머언 곳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는 시구는 떠오르는데,

그 앞이나 뒤는 생각이 안 나네요.

"모, 모르겠는데……."

 

"야, 목연! 국어선생 맞아.

어떻게 교과서에 나오는 것도 모르냐?"

"그, 그 시는 고등학교 때 배웠잖아.

중학교 국어 책에는 안 나온다고……."

 

누군가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였네요.

시의 전문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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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雪夜) / 김광균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밑에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친 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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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에 소리 없이 흩날리는 흰 눈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네요.

 

누군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엉큼한 놈들아.

어떻게 하나같이 그 구절은 기억하면서

제목도 모르냐?

설야! 눈 오는 밤이잖아."

 

그러자 어느 친구의 말에 모두 빵 터졌네요.

"제목이 '설야'라고,

난 '야설'인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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