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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분에 알람 소리를 듣고 잠이 깬 뒤에

다시 눕는 일상은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7시 가까이 되어서야 일어났네요.

 

날은 종일 흐렸고,

가끔 빗방울도 떨어지더군요.

 

그래도 아침은 건전하게 출발했습니다.

황토방과 거실까지 청소하고,

아침 기도를 한 뒤에 식사를 했지요.

체조까지 마친 뒤에 컴퓨터 앞에 앉았고요.

 

서울 A 시인님의 자전적 에세이를

전화를 통해서 최종 교정을 마친 뒤에 출판사로 보냈습니다.

자신의 글에 대한 A 시인님의 열정에 다시 감동을 했지요.

 

아무튼 반성을 했습니다.

"이틀이면 마칠 일을 열흘 동안 미루면서

공연히 마음고생을 했구나.

이왕 돕기로 했으니,

7월에는 더 넉넉하게 일을 끝내자."

 

요즘의 나의 일기를 읽으니

무언가 절망적인 분위기에 쌓여 있더군요.

읽고 또 읽으면서 반성의 마음에 잠겼습니다.

 

나는 평소에 이런 생각을 하였지요.

"노무현 대통령의 언행 대부분을 이해하더라도

그분의 마지막 선택에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톨릭 신자로서도 그럴 수 없고,

불교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면

내세에서 지금까지의 삶을 되풀이한다는데

그러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네요.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되,

이 세상에 연연하지는 말자, 라는 것이 나의 인생관이었지요.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다고 해서

자살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몸을 물에 던지거나,

달리는 차에 뛰어들거나,

밧줄에 목을 매는 것만 자살이 아닐 것입니다.

 

홍수가 나서 큰물이 내려오는데도,

멀리서 차가 과속으로 달려오는데도

몸을 피하지 않았다면 그것 역시 자살이겠지요.

찬바람을 쐬면 감기에 걸리고,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가면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행위를 했다면 그것 역시 자살일 것이고요.

 

이러다가 죽어도 그만이다,

저승사자가 온다면 따라가면 그만이지,

이런 생각 역시 넓은 의미의 자살일 것이고요.

 

피할 수 있음에도 피하지 않았다면,

그것 역시 자살과 다름이 없다, 라는 각성을 하였네요.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서 생명을 지키자,

다음 생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수고롭지 않기 위해서……,

이런 다짐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푸념이 나오더군요.

 

"세상 사는 것이 왜 이렇게 복잡한가,

언제까지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

 

저녁 무렵에 우리 집 주변의 풍경입니다.

 

물기 머금은 잔디에서 윤기를 느꼈습니다.


아내가 갖다 놓은 화분들입니다.

물을 주니 꽃을 피우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꽃을 보는 것이 싫지는 않지만,

굳이 가꾸면서까지 꽃을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온 가족이 함께 만든 화단입니다.

야생화가 거의 한 달 동안 꽃을 피우고 있네요.

 

아무튼 꽃과 만나는 것도 인연이겠지요.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은데,

개는 왜 기르고, 꽃은 왜 가꿔야 하는지

그래서 세상은 고해(苦海)인가 봅니다.

그런 생각이 날 때마다 이렇게 중얼거리며 마음을 달래고 있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아라.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아라.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서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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