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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분에 잠은 깼지만,

다시 누웠다가 일어나니 7시가 넘었네요.

간밤에 새벽 2시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고요.

 

오전에는 나름 쉬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뚜렷한 자취는 보이지 않았고요.

 

내일 도래샘 모임에 대해서

회원 선생님들에게 다시 한번

날짜와 시간을 환기시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도래샘의 첫 모임이 2017년 7월 29일에 있었으니

다음 달이면 창립 5주년이 되는 셈입니다.

그동안 회원들의 변동이 많았으나

나는 5년 내내 회장의 위치에 있네요.

올해는 다른 분에게 인계하고 싶은 마음이고요.

물도 고이면 썩는다는데,

어느 한 사람이 어떤 자리에 오래 있는 것은

권한 유무와 관계없이 바람직하지 않겠지요.

 

11시쯤 A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20여 년 전에

전교조 강원지부의 별이었던 분이지요.

이런저런 사연으로 교단에서 일찍 떠났고요.

그런 과정에서 몇 번인가

통화를 하면서 안부를 물은 적이 있었는데,

오늘 13시에 우리 집에 오신다는 전화를 받았지요.

 

지금 나의 상황은 몹시 고단한 상태이지만,

귀한 손님입니다.

오시면 드릴 책을 몇 권 찾아놓았고,

식사 장소와 함께 갈 곳을 생각해 보았고요.

 

A 선생님은 예정보다  20분쯤 늦은 13:20분에 도착하셨습니다.

차가 많이 밀렸다고 하네요.

함께 우리 집 주변을 돌아본 뒤에

강림의 이모네식당에서 점심을 들었지요.

이어서 태종대와 노고소까지 다녀왔고요.

 

A 선생님을 생각하면 애잔함이 밀려옵니다.

전교조가 약동하던 그 시기에

강원지부에서 내부의 갈등과 끝내 집행부의 하차는

많은 후유증을 남겼고요.

당시 나는 그 상황이 안타까웠을 뿐,

어느 편도 아니었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A 선생님은

그때 내가 해준 말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며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고 하시네요.

정작 나는 그때 무슨 말을 해드렸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인연이란 그런 것인가 봅니다.

 

A 선생님은 15:30분에 귀가하셨고,

나는 장미와 담 밑 회양목과 잔디밭 등에

살충제를 뿌리다 보니 저녁이 되었군요.

 

나는 블로그를 네이버와 예스24 두 곳에서 운영하는데,

올 초까지 두 곳 모두 일일 조회수가 1,500명 내외였지요.

내 블로그의 포스팅이 그리 흥미 있는 것이 아니고,

이웃들과 교류가 많은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떤 분이 그렇게 많이 오시는지 궁금했고요.

그러나 최근 한 달 동안 조회수가 급감했네요.

네이버블로그 조회수는 1,000명 내외로 1/3이 줄었고,

예스24블로그 조회수는 200명 내외로 6/7이 줄었습니다.

 

무언가 아쉬운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이 정도 인원도 내 블로그의 수준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조회수라고 생각합니다.

하루에 100명 이상이 찾아온다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니니까요.

 

100명의 관심을 받는 것도 대단한 것이니

거기에 만족한다면 행복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백 명에게 관심을 받으면

천 명에게 관심을 받고 싶고,

천 명에게 관심을 받으면

만 명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그렇게 욕심을 부린다면 늘 초조할 것이고요.

이런 마음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싶네요.

 

'나는 이제 내려놓을 때이다.

관심에서 더 멀어진다고 해도

그러다가 잊힌다고 해도 아쉬워하지 말자.'

 

오늘도 새벽 한 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럭저럭 밀린 일들이 정리가 되고 있군요.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산처럼 쌓여있기는 하지만요.

 

A 선생님과 스친 풍경 몇 장입니다.

 

A 선생님과 20여 년 만에 만났습니다.

우리는 동지의 마음으로 포옹을 했고요.

 

지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양쪽 모두 무너져 내리며

전교조의 이상과 단결에 피해를 준 현실이

무언가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생각도 드는군요.

하지만 이미 지난 일입니다.

넓고 길게 본다면

그러면서 역사가 발전하는 것이겠지요.

 

이모네식당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이곳은 점심때마다 국이 매일 바뀌는데,

들릴 때마다 편안한 느낌이 들더군요.

 

식사류의 경비는 대부분 7,000~10,000원입니다.


나를 찾아 강림에 온 친지들에게

대부분 태종대와 노고소를 안내한답니다.

A 선생님의 얼굴은 가립니다.

 

태종대를 찾은 분들이 대부분

바위 위의 주필대 묘각만 보고 가시는데,

사실은 그 아래로 내려와서

'태종대' 글씨를 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노고소로 내려가는 담밑에는

운곡 선생, 노고할미, 태종의 일화를 만화 형식으로 그린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노고할미가 몸을 던졌다는 노고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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