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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문학회에서는 올해 이벤트로

따로 또 같이 문학기행을 마련했습니다.

저는 5월 18일에 다녀왔고요.

 

작품(시, 시조, 기행문 등)과 사진을 게시하면

여비를 지급한다고 하기에 부랴부랴 올린 포스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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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라기보다는 억지로 글자 수를 맞췄지만,

제 고향에 대한 애정과

최고의 문학기행지라는 자부심은 지니고 있네요.

 

신라의 보물 5개 고구려 광개토왕비

만주의 발해석등 동학군 최후 항전

일제의 흉탄에 숨진 팔열사의 넋이여

 

10대조의 후손들 그 숨결이 3백 년

팔열사의 연의진과 세 분의 보훈 용사

내 고향 서석 땅에서 그 역사를 만나요

 


신라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물걸리 사지에 있는 5개의 보물입니다.

동창 삼층석탑 등 5개의 보물 (보물 541~545호)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지요.

 

민족정기광장에 있는 발해석등과 광개토대왕비입니다.

발해석등은 발해의 첫 수도에서 가져온 돌로 복원하였으며,

광개토대왕비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원형 크기로 야외에 복원한 것이라고 하네요.

 

서석 자작고개는 동학 혁명 당시 강원도 최후의 격전지입니다.

관군에 의해 이곳에서 수백 명의 동학군들이 희생되었지요.

제가 어린 시절만 해도 이 동리에서 제삿날이 같은 집이 20여 호가 있었는데,

이때 희생되신 분들의 후손이 같은 날 제사를 지냈다고 하고요.

홍천군에서는 이곳에 동학혁명공원을 세웠고,

천도교 교단에서 성지 순례로 자주 온다고 하네요.

 

삼일운동 당시에 동창 물걸리 장터에서

서석, 내촌, 화촌, 기린, 내면의 5개면 주민 수백 명이 모여서 만세를 불렀고,

여덟 분의 열사가 그 자리에서 순국하셨습니다.

만세 운동에서 하루의 희생자로는 도내 최대라고 하고요.

 

유관순 열사의 모교인 서울 이화재단에서는 동창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하여

이 지역에 팔열중학교(지금은 팔열중고등학교)를 세웠는데,

홍천군의 유일한 사립중학교이지요.

 

팔열사의 한 분인 연의진 지사의 묘소와

곡산연씨 21대조인 절충장군 연영노 선조와

후손들의 신위를 모신 숭조각입니다.

 

조선 숙종 때 송시열 선생의 제자인 의민공 연최적 선조가

인현왕후의 폐비 부당성을 상소했다가 어전에서 고문 끝에 목숨을 잃자

후손들이 여러 곳으로 낙향하였고요.

당시 곡산연씨 종손인 연태노 선조는 원주,

아우인 연영노 선조는 홍천으로 낙향했다고 하네요.

연영노 선조의 후손들이 3백여 년 동안 홍천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연영노 선조의 후손 중에 독립지사 한 분, 보훈 용사 세 분이 배출되었습니다.

 

팔열사의 한 분인 연의진 열사,

6.25 전쟁 때 교단에서 숨진 30분의 교사 중에 한 분인 연제훈 선생,

(사진은 강원도 교육청에 세워진 6.25 희생 순직 강원교직원상)

6.25 개전 초기에 춘천사범 학생으로 학도병에 지원하여

춘천 전투에 참전한 연재흠 선생님

(후에 교단에 복무하여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임한 후 2년 전에 작고)

6.25 당시 영월 전투에서 중상을 당하신 연규필 특무상사입니다.

 

저의 선친을 비롯하여

다른 세 분도 저와 가까운 친척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자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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