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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일기장에서 나눈 문답입니다.

목연샘!

그대의 고향 서석천주교회에서의 추억을 들려줄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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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천주교회는 내고향인 홍천군 서석면 풍암리에 있습니다.
서석면 최초의 천주교 신자였던 선친께서
공소에서 본당으로 발전하기까지 주축의 한 분으로 활동하셨고,
나는 선친의 영향으로 초창기의 주일학교 학생이자
중등부 학생회 활동을 하기도 하였고요.

내게 있어서 선친을 비롯하여 임숙녀 회장님, 조필립보 신부님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신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 시절의 추억들을 이곳에 옮겨보겠습니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농촌 본당 서석 본당


다음 글과 사진은 춘천교구에서 매주 발간하는 춘천교구주보에 실렸던 내용으로
춘천교구 사이트에서 옮겼습니다.


이 지역에 처음 복음이 전파된 것은 한국전쟁 때 부상을 당한 연규필(안드레아)이 세례를 받고 전역하여 1954년에 서석면 풍암리에 정착하면서부터다. 이듬해 그는 홍천본당 주임 조선희(필립보) 신부를 찾아가 서석에 공소를 세워줄 것을 청하였다. 조 신부는 간곡한 그의 부탁에 서석면 일대를 답사하고 야산(현재 성당터) 135평과 도로변에 인접한 초가집을 매입하였고, 1956년 10월 10일 이후에는 전교 회장 임숙녀(보나)의 활동으로 신자수가 증가하면서 이듬해 부활절을 기해 서석 공소가 설립되었다.

이후 서석 공소 신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1958년 10월 30일 교구장 구 토마스 주교의 집전으로 서석 공소 경당(건평 176평, 교우수 120명) 낙성식을 거행하였다. 또 1960년에는 내면공소를, 1965년 9월 16일에는 생곡공소를 각각 완공하였다. 그리고 1966년 5월 31일에 강당 뒤편의 임야 750평을 추가 매입한 후, 본당 승격을 위해 이듬해 2월 20일에 전교회장 사택을 지은데 이어 9월에는 제의실을 증축하였으며, 1968년 3월에는 사제관을 완공하였다. 그 결과 서석 공소는 그해 5월 28일 생곡. 내면. 장평. 물걸리. 광원 공소를 관할하는 서석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진(G.Wilmsen)제라르도 신부가 부임하였다. 주보 성인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를 모셨다.

10여년 간의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제들의 사목시기를 지나, 1979년 5월에 첫 방인사제로 부임한 제5대 주임 임홍지(알로이시오) 신부는 성당 주변의 환경 정리와 내부 시설 정비에 주력하는 한편, 사목 협의회와 구역ㆍ반을 구성하고 공소 회장단을 조직하였다. 제 8대 주임 최원석(아넬로) 신부는 1990년 11월 20일에 교육관을 준공하고, 1992년 11월 7일에는 수녀원(건평 25평)을 신축하였으며, 그 이듬해인 1993년 9월 19일에는 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소속 수녀가 파견되었다. 그후 여성재(브루노) 신부 때는 노후된 성당을 새로이 개축하기 위해 신자들과 함께 성전건축기금을 조성하여 여러 은인들의 도움으로 2004년 8월 1일 장익(십자가의 요한)주교의 주례로 본당 중창 감사미사를 봉헌하였다.

현재 서석 본당은 IMF 이후 도심의 생활을 정리하고 신앙을 찾아 전원생활을 시작하는 가구 수가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신자들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농촌 본당이다. 2004년도 말 서석 본당 총 신자수는 499명이며, 공소는 장평, 물걸, 생곡 등이다.  


 

* 자료 출처 : 글과 사진 모두 춘천교구 사이트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위의 사진은 2006. 1. 26일 주보에 실렸을 때의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위 사진의 원본입니다.
  http://www.cccatholic.or.kr/?mid=introduce_church_detail&document_srl=1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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