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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가 그린 명화 '탕자의 귀환'입니다.
루가복음 15:10~15:32절에 있는 내용이고요.

 

어느 부자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큰아들은 아버지를 도와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작은아들은 아버지께 재산 분배를 요구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몫을 챙긴 뒤에 집을 떠나지요.
그는 얼마 동안은 즐거운 나날을 보냅니다.
하지만 허랑방탕하게 낭비한 돈은 곧 사라지게 되고요.

빈털털이가 된 작은아들은 남의 집에 머슴살이를 합니다.

행랑방에서 자면서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여야 했지요.
그제야 뉘우치며 집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나는 그 아버지 품을 버리고 떠난 탓에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
내가 아버지께 가서 사정하리라.'

 

작은아들은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앞에 엎드려 사죄의 말씀을 올리고요.

 

"아버지여!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감히 아들이라 말할 수도 없사옵니다.
저를 품꾼의 하나로 여기시고 거두어 주옵소서."

이 그림은 돌아온 아들을 사랑으로 맞으며 큰 잔치를 열어주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처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큰아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함께 그림을 감상해 볼까요.

아버지 시선을 보세요.
아버지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선이 없음을 알게됩니다.
매일같이 아들이 떠난 길,

그리고 다시 돌아올 그 길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눈이 짓물러 멀게 된 아버지의 눈은 초점이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시력을 상실한 노인은

눈이 멀기까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말해준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손을 보세요
아들을 감싸 안고 있는 아버지의 손은 서로 다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왼쪽 손은 힘줄이 두드러진 남자의 손이고
오른쪽 손은 매끈한 여자의 손임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강함과 어머니의 부드러움을

화가는 이 손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작은아들의 머리를 보세요.
죄수와도 같이 삭발한 머리는 스스로 죄인임을 뉘우치는 모습입니다.
그 아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어머니의 뱃속에 머물고 있는 태아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래의 고향인 하느님 품을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에게 돌아온 작은아들은

누더기의 속옷을 걸치고 겨우 몸만 가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는 빡빡 깎여 있습니다.
그 동안 그가 감옥에 있었는지 수용소에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모습은 개성을 박탈 당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황갈색의 찢어지고 핏기 어린 속옷은

그의 참담했던 생활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신발이 벗겨진 왼발은 상처투성이고,
오른발은 망가진 신발이 겨우 부분적으로 감싸고 있어
그의 삶이 얼마나 가난에 찌들렸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잃은 자의 모습입니다.
더구나 작은아들의 머리는 엄마의 자궁에서 갓 태어난 아기의 모양이고
얼굴은 태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렘브란트는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 안긴 인간의 모습을
엄마의 자궁 속에 있던 아기의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이신 하느님의 품에 안긴 인간을 그린 것이지요.

이번에는 큰아들을 살펴 볼까요.
그는 작은아들의 귀향에 대한 목격자입니다.
이 목격자는 아버지와 달리 아무런 기쁨 없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는 아무런 표정도 없습니다.

이 그림의 주제는 분명 작은아들과 그를 안고 있는 아버지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 전체의 오른 편에서 약간 거리를 두고 서있는 큰아들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큰아들은

작은아들보다 훨씬 아버지를 닮은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수염을 길렀고 붉은 겉옷을 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외적 유사성이 둘 사이의 공감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얼마나 다릅니까?
아버지는 작은아들을 향해 몸을 굽히고 있습니다.
반면에 큰아들은 꼿꼿하게 서있고
긴 지팡이는 그의 자세를 더욱 강하게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큰아들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스스로 주님의 선택을 받은 척 교만에 빠진 채
가난하고 억압 받는 이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기성 교회
현대의 바리새이파라고 할 수 있는
사랑과 봉사의 마음을 잊어 버린
회칠한 무덤같은 신자들의 모습이 아닐지요.

(저는 자신이 큰 권세라도 갖고 있는 양 

감히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큰소리를 치던

어떤 사람을 연상했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보세요.
렘브란트가 그린 아버지의 모습은
가장 인간적인 모습 안에 드러나는 신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염을 기른 반 실명 상태의 노인,
황금빛의 옷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돌아온 자식을 어루만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절대적인 자애와 조건 없는 사랑,

영원한 용서와 같은 신성의 실재를 보게됩니다.

여기서 인성과 신성, 부서지기 쉬운 연약함과 강인함,
늙음과 영원한 젊음이 함께 표현되고 있습니다.
거의 눈 먼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의 등을

육체적인 시력이 아니라  내적인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그림의 핵심은 아버지의 손에 있습니다.
이 손에 모든 빛이 모여있고
이 그림의 다른 두 목격자들의 시선도 아버지의 손에 쏠려 있습니다.

그 안에서 자비가 몸을 취한 의미와 화해와 용서,
치유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반쯤 장님인 노인이 흐느끼면서 아들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상처받은 아들을 축복하는 모습이 표현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위로 받는 아들뿐만 아니라

위로를 하는 아버지도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나타나는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권위의 남성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것은 이 그림의 손에서부터 드러나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아버지의 두 손은 서로 다르게 그려져 있습니다.

아들의 어깨를 만지는 아버지의 왼손은 매우 강하고 근육질입니다.
손가락들이 펼쳐져 있고 아들의 등과 어깨를 넓게 감싸고 있습니다.
일종의 누르는 힘과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특별히 엄지손가락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오른손은 얼마나 다릅니까?
이 손은 누르거나 잡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매우 세련되고 부드러우며 섬세합니다.
손가락들이 모아져 있고 아주 우아합니다.

이 손은 아들의 등 위에 부드럽게 얹혀져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안도감과 위로를 주는

어머니의 손인 여성의 손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 그림의 아버지처럼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저는 너무도 늦게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지금에야 겨우

어떤 의미를 느끼게 되었네요.

 

제 블로그를 찾은 손님들께서는

좀 더 일찍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 채시고
이그림과의 만남이
그분의 품에 안기는 은혜와 축복의 인연이 되기를 빕니다.

주여!
올해는 당신 품에 돌아가서 안기고 싶습니다.
받아 주옵소서.

 

자료출처 : 렘브란트의 그림은 인터넷 게시판에 떠도는 것이며,

  내용도 어디선가 본 것을 토대로 제가 약간 고쳤습니다.

  새해가 되니 갑자기 신앙의 그림자가 느껴져서 여기에 올려 봤습니다.

 

* 렘브란트 판 레인(또는 램브란트 판 레인)은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7.15~1669.10.4]

  네덜란드의 화가입니다.

  그는 회화가 성숙함에 따라 외면적인 유사성보다는 오히려 내면적인 것,

  인간성의 깊이를 그리고 싶은 생각이 절실해지면서

  종교적(또는 신화적) 소재나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고 합니다.

  유화와 에칭에서 유럽 회화사상 최대 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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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심이

    잘 보고 갑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2012.01.03 09:4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목연

      앞으로 좋은 인연으로
      자주 만나게 되기를 빕니다.

      2012.01.04 00:02
  • Felix

    램브란트의 '탕자의 귀환' 너무나도 유명한 그림이지요. 특히 피정이나 교육때 많이 보았었답니다. 묵상에 따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깊은 뜻이 있는줄은 몰랐네요.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부족한 글에 답글 달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2018.07.09 20:4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목연

      정말 화가가 그런 마음으로 그렸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발표된 문학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서
      독자에게 해석의 자유가 있듯이,
      그림 역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8.07.1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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