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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1

[도서] 히틀러 1

이언 커쇼 저/이희재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나는 영웅사관을 지지하지 않는다. 가령 영조나 사도세자의 성격과 기질을 규명한다고 해서 그 역사적 멘탈리티가 규명된다는 생각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고 본다. 평전 《히틀러》 를 지은 영국의 구조주의 역사학자 이언 커쇼도 개인의 생활이나 기질, 사상보다도 사회구조적인 시스템과 정치경제적 맥락에 더 커다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순전히 하이데거와 비트겐슈타인 때문이다. 빅토르 파리아스는 《하이데거와 나치즘》에서 하이데거가 나치이데올로기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던 맥락을 설명하고, 킴벌리 코니시는 《비트겐슈타인과 히틀러》에서 히틀러의 반유대주의가 당시 비트겐슈타인과 그 가문에 대한 혐오감과 증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주장과 더불어 나치즘이 비소유 심리론에 바탕을 둔 주술적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두 권을 읽고 나니 히틀러 평전을 언젠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결국 두 명의 걸출한 사상가가 나치즘의 발호에 일조했다는 데 착안해서 이토록 두꺼운 책을 '특가'로 구입하게 된 것이다. 조만간 제2권도 빨리 구비할 것이다.  


이 책은 30여 년에 걸쳐 히틀러와 제3제국 연구성과를 종합하여 완성한 대작이다. 파시즘이나 홀로코스트에 관한 책과 영화를 접한 독자들이라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 책을 읽어내려갈 수 있다. 읽는 재미도 엄청나다. 저자는 전기를 쓸 때 숙명처럼 떠안게 되는 두 가지 위험요소가 있다고 먼저 설레발을 친다. 하나는 평전 주인공에 대한 공감이 자칫 연민이나 숭배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복잡한 역사의 전개과정을 지나치게 개인화하고 사건에서 개인이 맡았던 역할을 과장하고 개인의 활동이 일어났던 사회적·정치적 맥락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취급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뻔하다. 그 두가지 함정에 자신은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사회구조사적인 안목으로 나치즘과 히틀러를 바라본다.

 

20세기는 히틀러의 시대였나? 적어도 그가 통치한 12년은 독일과 유럽과 세계를 영원히 바꾸어놓았다는 점은 확실하다. 히틀러는 처칠도 한수 접을 정도의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갖추었던,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한몸에 받았던 정치인이었다. 정치 리더십과 군중선동에 관심있는 이들은 히틀러가 독일의 최고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성격이나 특이한 기질에 집착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파시즘의 군중선동기제나 대중최면요법 등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제3제국의 권력구조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가령 현대국가의 전면적 자기 주장, 대중을 통제하고 동원하기 위한 언론조작, 지독한 극우민족주의, 인종우월주의의 가공할 파괴력과 인종주의의 귀결, 엉뚱한 목적에 동원된 현대과학기술과 사회공학 등에 주목한다. 

 

"이 책을 쓰면서 내내 나의 뇌리에 남아 있던 것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의 운명을 한손에 쥐었던 남자의 특이한 성격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어떻게 히틀러가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국가 고위직에 오를 법한 사람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게 생긴 사람이 어떻게 권력을 잡았는가도 궁금했지만, 그 권력을 어떤 식으로 절대 권력으로 확장했기에 나중에는 야전사령관들까지도 일개 상병 출신 지도자가 내리는 명령에 무조건 충성을 맹세할 수 있었던 것인지, 자타가 공인하는 재주라고는 대중의 원초적 정서를 자극하는 선동술밖에 없었던 독학자에게 사회 온갖 분야의 난다 긴다 하는 전문가들과 똑똑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덮어놓고 복종하겠다고 나선 것인지가 참으로 궁금했다. "(7쪽)

 

청년 히틀러에게는 쿠비체크라는 유일한 절친이 있었다. 그가 말하는 히틀러의 개성은 이러하다.

 

"게으른 생활 속에서도 환상에 유난히 집착하고 거기에 열과 성을 쏟던 모습, 잡다한 관심사, 현실 감각과 균형 감각 결여, 독학자 특유의 고집, 자기 본위, 포용성 부족, 화를 잘 내고 성질을 부리는 모습, 위대한 예술가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에는 무조건 악담을 퍼붓는 기질, 이 모든 것을 쿠비체크가 그린 열아홉 살 난 히틀러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102쪽)

 

청년 히틀러는 생활이 어려웠을 땐 노숙자 숙소를 찾아갈 정도로 걸인과 같은 밑바닥까지 내려간 적이 있다. 천재화가를 꿈꾸던 그러나 노숙자로 전락한 청년 히틀러를 보면 국내 정치사에서 노숙자에서 출세해 대통령이 된 이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히틀러는 독신자 합숙소에 지내면서 싸구려 그림을 팔아 생활했는데 당시 그의 유일한 사치는 일반 극장이나 오페라 극장의 입석 관람표를 큰 맘 먹고 구입하는 것이었다. 합숙소 열람실에서는 정치가 자주 화제에 올랐는데 히틀러는 이미 쇠네러의 지지자로서 반유대주의를 표방했고 프티부르주아 성향이 강해 예수회와 공산주의자를 혐오했다. 당시 유럽에 반유대주의가 만연했기에 고지식한 히틀러가 반유대주의에 경도된 것이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이때만 해도 히틀러의 반유대주의는 인종론에 바탕을 둔 반유대주의 원리로 이 세상의 모든 악을 설명하는 정신나간 수준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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