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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전 : 결국 예뻐야 하는 걸까?

[도서] 박씨전 : 결국 예뻐야 하는 걸까?

박진형 저/이현주 그림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2점

  논술쌤으로 활동했던 탓에 <교과서에 수록된 책>이나 <고전소설>을 자주 접해야 했다. 그 가운데 여학생들의 필독서가 바로 <박씨전>과 <홍계월전>이었다. 간혹 <장화홍련전>이나 <숙향전>, <운영전>, 그리고 <사씨남정기>를 다루기도 했으나 '여성'이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려 제 능력을 맘껏 펼친 고전작품은 여성영웅이 등장하는 <박씨전>과 <홍계월전>이 으뜸이었다. 개인적으론 <박씨전>보다는 <홍계월전>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이번에 읽게 된 '고전문학시리즈'에는 수록되지 않은 듯 싶어서 살짝 아쉽다.

 

  각설하고, 여성은 아름다워야만 할까? 살짝 변주를 넣은 질문으로는, 여성은 능력보다 외모일까? 여성의 능력은 외모에 비례하는가? 등등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고자 하는 질문이라면 어떤 형식으로도 고쳐 물을 수 있을 정도로 흔한 질문이다. 물론 교과서적인 답변으로는 '아니다'이다. 그러나 현실은...안타깝게도 '그렇다'이기에 풀기 어려운 숙제를 던져주는 질문이다.

 

  '박씨'의 재주는 외모와는 상관없이 출중했으나 외모가 흉측한 탓에 시아버지도 멈칫하고 아들은 외면하며 시어머니는 괴롭히고 하인들은 무시한다. 심지어 박씨의 뛰어난 재주는 임금조차도 '인정'하였으나 조선의 여인은 재주를 인정 받아도 '쓰임'은 없는 존재였다. 결국 박씨의 재주는 가족의 외면을 받고 나라와 시대에 '버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박씨가 외모를 되찾은 뒤에도 '버림' 받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시대였으나 적어도 가족의 외면은 뒤바꿀 수 있었다. 집안 하인들과 이웃들의 무시와 조롱도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다. 위의 질문의 시작은 여기부터다.

 

  오늘날에도 예쁜 여성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상당하다. 심지어 예쁜 남성이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시대가 되었을 정도로 오늘날에는 '외모'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성형의술의 발달은 이를 더욱 심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성형괴물', '성형중독'과 같은 반작용도 심화되었지만 그래도 못생긴 남녀보다 잘생기고 예쁜 남녀를 대하는 관심과 사회적 척도는 '하늘과 땅 차이'에 빗댈 정도다.

 

  그럼에도 언제나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겉모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이라는 교과서적인 답변은 모범답안처럼 거의 맹신 수준으로 되뇌고 있다. 마치 빨간 신호등을 밥 먹듯이 어기며 무단횡단을 일삼는 어린이가 도덕시험을 풀 때는 정답을 고르고 마는 것처럼 진정성이 없는 데도 말이다. 이렇게 겉으로만 도덕군자인 것처럼 구는 것이 인지상정인데도 '모범답안'은 좀처럼 바뀔 생각을 않는다. 오히려 외모지상주의의 긍극적인 문제점은 바로 이런 '겉과 속이 다른' 우리의 양심이 아닐까? 외모에 끌리고 흔들리는 현실을 애써 부정하고 아닌 척(!)하는 부조리한 슬픈 자화상 말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랬다. 능력과 재주가 비슷하다면 덜 예쁜 여자보다 더 예쁜 여자에게 끌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도 억지로 원리원칙을 만들고 그 원칙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비난을 일삼는 짓이 더 한심할 따름이다. 이를 테면, 성형을 해서 예뻐진 것을 반칙이라도 한 것처럼 비난일색인 것도 문제다. 예쁜 연예인에 환호를 보내면서 예뻐지려고 노력한 연예인에게 레드카드를 남발하고 자연산이 아님을 밝혀내는 우매한 대중뿐 아니라 자연산임을 증명하려 애쓰는 연예인 또한 안쓰럽긴 마찬가지다.

 

  '복명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다. 가수의 덕목은 가창력이 으뜸일 것이다. 그 가창력이 파워풀한 음량인지, 다채로운 음색인지, 귀를 맑고 청량하게 해주는 톤인지, 그리고 화려하거나 즐겁고 깜찍한 퍼포먼스인지는 그 가수의 역량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얼굴만은 가면으로 가렸기에 가수의 실력을 온전히 '노래'로만 평가하는 것이 신선했던 것이다. 왜냐면 '아이돌 가수'가 화려하게 등장하면서는 가수에게도 외모는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외모가 노래실력을 앞질러서 '노래는 못해도 예뻐서 인기가수'가 된 아이돌도 배출되기도 한 탓이다.

 

  정리하면, 아름다움이 주는 즐거움을 애써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허나 아름다움에 지나친 특권과 혜택을 당연시 하는 의식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또, 겉모습이 추한 것만으로 제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사회풍토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외모지상주의의 폐해를 들어서 외면의 중요성까지 애써 폄하하려는 어리석음도 더불어 버려야 할 것이다.

 

  내 외모가 공유만 못한 까닭에 연기자는 될 수 없을지 몰라도 훌륭하고 멋진 선생님은 되었다. 선생인데도 공유를 닮았다면 '플러스'가 될 수는 있으나 선생님으로서의 자질까지 부당한 평가를 받는다면 억울한 일일 것이다(")난 억울하다~    by 오징어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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