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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12가지 인생의 법칙
열두 발자국

[도서] 열두 발자국

정재승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이세돌과 알파고가 바둑대결을 한다고 소식을 들었을 때, 난 당연히 이세돌의 승리를 점쳤다. 대국 첫째날에 패했을 때에도 이세돌의 화려한 역전승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둘째날에 생중계를 보면서는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첫째날에도 대국을 지켜보는 수많은 바둑기사들은 알파고의 행마를 "인간이라면 절대로 두지 않는 수, 즉, 잘못된 수를 놓았기 때문에 이세돌이 여유롭게 승리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그랬던 첫째날에도 이세돌이 패배를 했었는데, 둘째날에도 역시나 똑같은 논평 끝에 패배로 마무리 지었다. 결국 승패는 1:4로 알파고의 압승이었고, 인간이 인공지능을 상대로 마지막 승리를 거둔 역사적인 날로 남게된 대국이었다.

 

  난 이 대국이 끝난 뒤에 동료 선생님들에게 단체카톡을 돌렸다. 내용은 이렇다.

 

 

  인간 대 인공지능의 대결에서 인공지능이 승리한 날이다. 이제 교육 트렌드도 바뀌게 될 것이다. 더는 지식을 달달 암기하고 누구나 알만한 정답을 맞추는 교육은 필요없게 됐다. 그런 일은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교과서에 담긴 지식을 달달 암기하게 하지 말고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정보 가운데 옥석을 골라낼 수 있는 안목을 가르쳐야 한다. 평가방식의 공정성 따위에 골머리를 썩이다가는 대한민국의 백년대계가 기둥 뿌리부터 흔들리게 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바둑에 관심을 둔 여선생님들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니 큰 댓글을 바라지도 않았으나 내가 굳이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이라고 하지 않고 '인간 대 인공지능의 대결'이라고 풀어서 글을 썼는데도 역시나 관심 밖이었다. 그렇다고 남자선생님들의 반응이 대단했었느냐 하면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바둑은 그저 바둑이었고 인간이 이기든 인공지능이 이기든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난 여기서 실망하지 않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며 위에 적힌 내용을 아주 쉽게 풀어서 설명하며 역사적인 날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초등학생들은 "그럼 이제 공부 안 해도 돼요?"라고 답했고, 중학생들의 반응은 "그럼..공부 대신하는 로봇은 언제 나와요?"였다. 하긴 내 어릴 적에도 '숙제를 대신해주는 로봇'을 가지고 싶었으니 아이들 탓은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애고 어른이고 세상을 바꿀지도 모르는 그날은 그렇게 지나가고 말았다. 뭐, 1년뒤에 높으신 분이 '4차 산업혁명' 어쩌구 하면서 달라진 교육환경에서 회원창출을 하는 방법 또한 달라져야 한다는 둥 뉴스 나부랭이에 이미 나와 있던 글귀를 그대로 전할 때에는 우레 같은 함성과 박수로 답했다는 후일담은 안 합니다. 난 입이 무거우니까. 손가락은 몰라도.

 

  정재승의『열 두 발자국』을 읽으면서 난 그날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더는 '문제 잘 풀고 정답 잘 맞추는 공부' 따위는 하릴없는 공부가 될 거라는 느낌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교육부는, 선생님들은 바뀌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들 밥그릇 걱정을 먼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밥그릇 걱정을 하든 말든 네 번째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는 울렸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던 날에 말이다. 그런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시작되었지만 그 이후에 '자동차 강국'이 된 나라는 독일이었단다. 증기기관이 등장한 영국에서 증기기관차를 비롯해서 말이 필요없는 자동차가 점차 늘어나려하자 밥그릇을 걱정하던 마부들이 영국의회를 압박하며 자동차산업이 발달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았더란다. 그래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많은 기술자들이 영국을 떠나 자신의 생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새로운 땅, 독일에 정착했더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또 르네상스 이후 과학이 발전할 시기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세우는 등 과학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뉴턴'은 영국이 가장 자랑하는 과학자였지만, 뉴턴 사후에 영국은 과학자 배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 까닭이 어이없게도 시기와 질투가 많던 뉴턴이 자신의 업적을 남긴 수많은 책들을 누구나 알기 쉽게 쓰지 않고 저 혼자만 알아볼 수 있게 어렵고 복잡하게 쓴 탓에 후학양성에 실패하였더라는 소문도 들었다. 이 소문은 미분 공식으로 다퉜던 뉴턴과 라이프니치의 일화에서도 짐작할 수 있단다. 뉴턴의 미분 공식보다 라이프니치의 공식이 더 쉽고 더 널리 알려진 까닭도 이 때문이라고 호사가들은 말한다.

 

  이런 호사가들의 말들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너무 억지스러운걸까? 밥그릇 걱정하던 마부들의 모습에서 우리 나라의 경제주체들이 엿보이고, 세상의 이치를 저들끼리만 알고 누리려고하는 사회지도층의 모습이 뉴턴의 모습과 묘하게도 겹쳐 보인단 말이다. 분명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에서 새로운 세상을 엿본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정재승도 말한다. 세상이 바뀔 종소리는 울렸다고 말이다. 그런데 답답하다. 좀처럼 변화된 세상에 대해서 담론을 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저 방관자처럼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은 아닐런지. 그 강 건너에 과연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지도 않고 말이다.

 

  인공지능이 널리 쓰이는 세상은 곧 올 것이다. 단순지식을 묻고 답하는 초등교육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아이는 다른 동물에 비해 뇌가 크고 더디게 발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사회에서 꼭 필요한 지식을 충분히 익혀서 재능있는 인재로 키울 때까지는 초등교육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후의 교육은 어떨까. 여전히 문제 풀이를 위한 공식 암기에 매진하는 교육이 필요할까? 아니라고 본다. 차라리 '인공지능 로봇'이든 무엇이든 아이들에게 하나씩 지급하고서 무한한 지식정보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유용한 정보를 골라 창의적인 사고를 발휘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평가의 잣대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변화된 교육의 모습은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 부디 밥그릇 걱정 때문이거나 기존 지식인들의 옹졸한 소갈딱지 때문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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