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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아침 (5:00~9:00)

1) 읽은 시간과 읽은 쪽수

 - 읽은 시간 : 08:00 ~ 08:30 , 읽은 쪽수 : 68쪽 ~ 103쪽

 

2) 읽은 책 이름과 책 검색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9

박시백 글,그림
휴머니스트 | 2015년 06월

 

3) 책 읽은 뒤 느낌

  [ 19권 제2장 : 주화매국의 깃발 아래 ]

  우리가 흔히 '쇄국정책'이라 부르는 명칭은 오늘날 '통상수교거부정책'으로 바뀌었다. 흥선대원군이 나라의 문을 꽁꽁 닫고 오랑캐와 절대 '수교'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나라문'을 닫은 것을 강조하여 쇄국정책이라 나타냈다면 오늘날에는 '수교거부'을 강조하여 통상수교거부정책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때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나열하면 [프랑스 선교사 리델 탈출]-[제너럴셔먼호 사건]-[병인양요]-[남연군묘 도굴사건]-[신미양요] 순서다. 이 모든 것이 서구열강과 '수교'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명이었으며, 특히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보여준 불굴(?)의 의지는 열강들의 '수교 의지'를 꺾는데 효과(?)를 거뒀기에 흥선대원군의 정책은 어쨌든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했다는 사실 하나에 조선의 자신감은 한껏 부풀어올라서 대원군의 인기는 주변 청과 일본에까지 널리 퍼져 나갔다. 아닌게 아니라 청과 일본은 서구열강의 '수교 의지'에 굴복하고 나라의 문을 활짝 열 수밖에 없었는데 반해서 조선은 열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때 부러움을 사게 된 것이다.

 

  허나 시대가 바뀌었다. 나라 문을 꽁꽁 닫고만 있다고 해서 나아질 기미는 하나도 보이질 않았고, 조선을 둘러싼 외국의 침탈은 점점 조여오고 있는데도, 조선은 내부적으로 곪고 썩어가고 있을 뿐, '개혁의 의지'조차 하나 없어 보일 정도로 무능력할 뿐이었다. 바야흐로 '망국의 시작'으로 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캠페인에 참여하며 쓴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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