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야밤 (22:00~24:00)

1) 읽은 시간과 읽은 쪽수

 - 읽은 시간 : 22:00 ~ 22:55 , 읽은 쪽수 : 176쪽 ~ 221쪽

 

2) 읽은 책 이름과 책 검색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9

박시백 글,그림
휴머니스트 | 2015년 06월

 

3) 책 읽은 뒤 느낌

  [ 19권 제5장 : 개화에 대한 저항 ]

  일본에 의해 개항을 하게 된 조선은 여러 나라와 '근대적 조약'을 맺게 된다. 잇달아서 말이다. 허나 국제정세에 어두운 것은 임금 뿐만이 아니었다. 조선의 신하들도 태반이 국제정세에 까막눈인 것은 마찬가지였던지라 초기에는 '일본'과 '청'의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김기수를 필두로 해서 '신사유람단'를 파견하였으나 '쇄국정책'과 마찬가지로 명칭이 바뀌었다. '조사 시찰단'으로 말이다. 암튼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하여 새로운 문물을 접하게 된 조선은 일본 공사로 파견해 있던 황쭌셴을 만나 책 한 권을 받아온다. 바로 <조선책략>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선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 하라'였다.

 

  하지만 청의 개혁을 도맡아 했던 이홍장은 조금 의견이 달랐다. 청에게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할 나라는 일본과 러시아였던 것이다. 조선을 둘러싼 나라 중에서 '조선'을 걸고 한 판 승부를 걸 나라는 일본과 러시아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놓은 계책이 바로 '이이제이'였다. 다시 말해, 조선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구열강과 수교를 맺고 러시아는 몰라도 일본을 견제할 수 있다면 청으로서는 나쁘지 않았던 셈이다.

 

  결국, 조선은 '개항'을 하긴 했으나 어느 나라에게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서구열강 뿐 아니라 주변국(청, 러시아, 일본) 마저 조선을 침탈할 생각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탓에 조선의 사대부와 유생 들 대부붙은 '위정척사운동'의 기치를 내걸었다. 그러나 '개항의 시대'를 맞아 대책없는 비판일 뿐이었고, '개항'을 서둘러야 한다는 쪽에서는 <조선책략>을 기본 메뉴얼로 삼아야 한다는 막연한 '기대'만 하고 있었다. 이래저래 조선은 급박한 상황에서 몽롱한 꿈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 [임오군란]이 벌어졌다. 흔히 '신식군대'를 우대하고, '구식군대'를 홀대한 탓에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아무런 준비도 대책도 없이 '개항'을 한 탓에 벌어진 필연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왜냐면 '개항'을 하는데에도 돈이 들고, '척사'를 하는데에도 돈이 필요했던 탓에 이래저래 '국고'가 말라갔던 것이다. 그래서 세금은 점점 올라가고 일본으로 수출하는 '생필품(쌀 등)'의 양이 늘어난 탓에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점점 팍팍해지는데도 궁궐에서는 연일 잔치다, 굿판이다..라면서 돈을 헤프게 쓴다고 비난이 늘어나면서 '명성황후'을 향한 시선이 점점 곱지 않게 되었다. 더구나 '그녀'가 일본 개항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백성들이 명성황후를 미워하는 여론이 점점 커지게 되었다. 마치 '프랑스 혁명' 전에 앙뜨와네트 왕비에게 쏠리던 비난처럼 말이다.

 

  이렇게 국고가 바닥난 상황에서 '구식군대'에게 13개월치 급료가 밀렸고, 그나마 '한 달치'를 내어준다는 이야기에 한달음에 모였던 이들에게 '모래와 썩은 곡식'이 든 급료를 주자 불만이 터져나왔고, 급료를 내주던 창고지기가 그마저도 싫음 말라는 식으로 대꾸를 했다가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런 일이 임금에게 보고되자 잘 달래서 불만을 누그려뜨리라고 했건만 선혜청 제조 '민겸호'는 주동자 4명을 구속하여 더욱 분통을 터뜨리게 만들어 끝내 군인들이 난을 일으켰던 것이다. 구식군인들은 그 길로 평소에 쌓였던 불만을 터뜨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포도청과 의금부를 때려부수고, 일본공사관과 일본인을 무차별적으로 습격하니 하나부타 요시모토 공사는 가까스로 일본으로 탈출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일반백성들까지 합세해서 난이 더욱 커지게 되니 도성은 온통 시위꾼으로 넘쳐났고,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때 '대원군'이 등장한다. 군란을 일으킨 군인들은 난리통에 불만을 터뜨리긴 했으나 난리가 끝나면 '살길'이 막막했던 것이다. 그런데 '대원군'이 이들에게 '살길'을 알려주었다. 대원군이 다시 집권을 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신식군대'를 밀어내고 '구식군대'가 다시 인정 받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서 말이다.

 

  하지만 대원군의 복권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세상은 이미 바뀌었고, '개항'에 따른 '조약'까지 맺어버렸기에 '임오군란' 뒤에는 청나라 군대와 일본군대가 자국민 보호를 앞세워 조선에 파견되었고, 곧바로 '주둔'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와중에 '청군'에 의해 대원군이 납치를 당하고 말았다. 이에 일본은 조속히 움직인 청에 의해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으나, 곧바로 '제물포 조약'을 맺어 이득을 취했다. 청은 대원군을 납치하고서는 일본으로부터 조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체결해 '조선의 종주국 역할'을 단단히 받아내니, 일단은 '조선'에서의 우위를 차지한 것은 청나라인 듯 싶었다. 곧이어 터진 '갑신정변'으로 또 다른 정국이 펼쳐질 것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말이다.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캠페인에 참여하며 쓴 포스팅입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