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야밤 (22:00~24:00)

1) 읽은 시간과 읽은 쪽수

 - 읽은 시간 : 22:00 ~ 22:50 , 읽은 쪽수 : 14쪽 ~ 49쪽

 

2) 읽은 책 이름과 책 검색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

박시백 글,그림
휴머니스트 | 2015년 06월

 

3) 책 읽은 뒤 느낌

  [ 20권 제1장 : 동학의 확산과 농민의 각성 ]

  '갑신정변' 이후 조선은 급속히 개화의 물결을 맞이한다. 청국군과 일본군이 잠시 주둔했다 '텐진조약'을 맺고 물러나긴 했지만, 청은 '위안스카이'를 앞세워 내정간섭을 본격화하고, 일본은 일본 유학생과 급진개화파를 중심으로 조선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으며, 새롭게 러시아가 등장해 '만주'를 차지하려는 야욕을 펼쳐보이며 청과 일본의 견제를 막아줄 '완충지대'로써 조선을 이용하기에 딱이었으며, 여차하면 '부동항'까지 얻을 수 있으니 러시아 역시 호시탐탐 조선을 넘보고 있었다. 물론 독일과 미국 또한 멀찍이나마 조선을 넘보고 있었고 말이다.

 

  이런 형국이 되어서야 조선의 지식인들은 '국제관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나라밖을 다녀온 지식인들은 더욱 그러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서 '왕실' 역시 개화정책을 쏟아내곤 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개혁의 '주체세력'이 없다는 점과 '내정고갈'로 인해 개혁을 지속할 힘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특히, '갑신정변' 이후 10년은 서구열강의 영향력이 그닥 미치지 않는 시기였기에 조선이 마음만 먹었다면 이 시기를 활용해서 '근대화'를 멋지게 이룰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서구열강 또한 조선을 '침략'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교역'의 대상으로 보아 조선은 스스로 근대화를 이룬 나라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고종'은 왕실 챙기는데에만 능력을 발휘할 뿐이었고, 대신과 지식인 들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재산 불리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 되니 조선은 '위'에서부터 개혁의 바람이 불지 않게 되었고, 이제 남은 건 '아래'에서 부는 천지개벽의 폭풍우가 불어 닥칠 운명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었다. 바로 '동학'이었다.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는 철종이 죽고 고종이 즉위하는 와중에 처형이 되었다. 하지만 동학의 교세는 꺾이지 않았고 탐관오리의 학정이 심해지면 질수록 백성들이 의지할 곳은 동학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그러다 고종이 '천주교'와 '기독교'에 대해 수용하는 입장을 밝히자 '동학'도 자신들의 교조를 신원회복 시켜달라는 요청을 하게 되었다. 허나 고종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동학교도'들은 충남 보은에 대거 집결하며 교세를 떨쳤고, 고종은 부랴부랴 해산을 명령하며 여차하면 청에 '군대'를 요청할 거라는 액션을 취하기도 했다. 이에 2대 교주 최시형은 자발적 해산을 약속하며 교도들을 다시 되돌려 보냈는데, 전라도 쪽에서 별도의 집회를 열었던 '전봉준'은 좀더 강경한 모양새를 보였다. 이제 '보국안민'의 기치를 높이 들고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캠페인에 참여하며 쓴 포스팅입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