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야밤 (22:00~24:00)

1) 읽은 시간과 읽은 쪽수

 - 읽은 시간 : 21:30 ~ 22:15 , 읽은 쪽수 : 172쪽 ~ 223쪽

 

2) 읽은 책 이름과 책 검색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

박시백 글,그림
휴머니스트 | 2015년 06월

 

3) 책 읽은 뒤 느낌

  [ 20권 제4장 : 대한제국과 독립협회 ]

  '아관파천' 다음은 '대한제국 선포'다. 고종은 외국 공사관에서 몸을 의탁하며 목숨을 부지하는 동안 편안함을 느끼긴 했지만 내심 쪽팔렸던 모양이다. 한 나라의 임금인데 그렇지 않으면 임금이랄 수도 없으니 '인지상정'이긴 한데, 정작 '황제국'으로 거듭나고 난 뒤에 한 행보를 보면 옹졸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니 망국을 피할 수 없었지...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허나 고종 탓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임금의 역량이 그것밖에 안 되었다고 타박하기에는 '국제정세'가 크게 요동을 치던 시절이었고, 고종보다 못난 임금도 버젓이 임금 노릇을 해먹기도 했던 조선이었기에 '고종'을 불운한 임금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할 듯 싶다. 물론 '책임'이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최종결정권'을 가진 임금이 나라가 망하는데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고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것을 '불운했다'고 말하는 것 뿐이다.

 

 '아관파천' 1년 후에 고종은 궁궐로 환궁을 하면서 '대한국 국제'를 선포하며 연호를 '광무'라 밝히고 황제라 칭하였다. 드디어 독립국의 위상에 걸맞는 '황제국'이 된 것이다. 새롭게 나라를 열기 위해서는 '인재'가 필요했던 바, '서재필'이 낙점을 받았다. 허나 그 사이에 '미국인'이 된 '필립 제이슨(서재필)'는 조선 관리가 될 수는 없었기에 '고문 역할'을 맡으며, 옛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는 일을 시작으로 '독립협회'를 창설하는 등 '대한제국'에 '입헌군주국'에 걸맞는 '의회정치의 씨앗'을 심어놓았다.

 

  이렇게 시작한 '독립협회'는 백성들이 모여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만민공동회'를 열어 신분의 고하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장이 되었다. '만민공동회'는 개최를 할 때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 마디로 인기급상승을 하는 모임이 된 것이다. 백성들은 누구라도 '발언대'에 올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고, 정치적 발언도 서슴없이 말하고 찬성하면 우레와 같은 박수로 호응했다. 하지만 이런 '만민공동회'의 인기는 고종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만민공동회'가 가장 먼저 추진한 주장이 '외세배격'이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열망은 '당당한 자주국가'였다. 그렇기에 러시아가 정치에 개입해 간섭을 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고문'도 돌아가라 외치고, '한러은행'도, '절영도 조차'도 모두 거부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뜻밖에도 러시아가 순순히 물러가겠다면서 러시아로 철수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고종을 불편하게 했다. 고종은 은근히 러시아에 기대어 일본을 견제할 속셈이었는데, '만민공동회'가 러시아를 쫓아내고 일본을 견제할 방법을 막아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종은 '독립협회'의 활동은 은근히 막으려는 수단으로 '황국협회'를 만들어 방해공작을 하기 시작했다. '황국협회'는 보부상 단체로 고종의 입김이 작용하는 '어용단체'였던 셈이다. 보부상들은 국가의 '허가'가 있어야 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었기에 고종의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었던 터였다. 허나 '만민공동회'는 더욱더 인기를 얻어 정부의 관리들까지 참여하는 '관민공동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고, 드디어 '3대 회장'을 맡은 '윤치호'가 최초의 의회와 비슷한 기능을 하도록 '중추원'을 바꾸어 독립협회 회원 25명을 '대표' 자격으로 참여하도록 하였다. 마치 영국과 미국의 '상, 하원'과 같이 '양당제'의 성격을 띤 '중추원'의 구성원은 '관리와 백성'이 한 자리에서 의견을 나누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종은 끝내 독립협회의 활동을 막아서기 급급했다. 왜냐면 자신이 황제인데도, 황제가 임명한 대신들을 '만민공동회'에서 끌어내리거나, 황제가 벌 준 인물을 '만민공동회'에서 석방하도록 하는 등 '백성의 입김'에 번번히 따라야 하는 모양새가 씁쓸했기 때문이다. 만약, 고종에게 '백성의 역량'이 이만큼 성장하였으니 더욱더 백성을 교육시키고 똑똑하게 만들어 인재를 발굴해 '대한제국'을 더욱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데 활약하는데 역점을 두었다면 좋았으련만, 고종은 '전제군주'의 모습으로 돌아가 '왕권 강화', 아니 '황제권 강화'에만 역점을 두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황국협회'로 하여금 '만민공동회'를 공격해 깽판을 놓으라고 지시를 내리고 말았다.

 

  불시의 공격에 해산했던 백성들은 손에 손에 짱돌을 들고서 '보부상'들을 공격하며 반격을 했더랬다. 그리고 자신들을 '강제해산' 시킨 장본인(고종이었지만)인 대신들의 집을 무너뜨리고 감옥에 갇힌 '독립협회 대표들'을 석방시켜버리고 말았다. 이때는 고종도 한 발 물러서야 했지만, 그후로도 '만민공동회'는 개최하지 못하게 하는 등 억압을 하여 결국 '독립협회'를 해산시켜버리고 말았다. 그후로 '만민공동회'는 다시 열리지 못했다.

 

  일단은 고종이 자신의 입맛대로 백성을 요리한 것 같아 만족했는지는 몰라도, 세상은 고종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황제'에 걸맞는 구색만 맞추려고 무리하게 국고를 낭비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국가재정'을 파탄나게 했으며, '자본주의'가 뭔지도 몰랐기에 외국과 상권 경쟁이 벌어지면 번번히 밀려서 '국내 경제'만 더욱 안 좋아졌으며, 각종 이권사업을 외국에 퍼준 결과로 '황제'는 리베이트를 받아 돈을 벌었을지 몰라도 백성의 살림살이는 날이 갈수록 궁핍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와중에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일제의 침략에 협력하는 일이 벌어지고 마는데...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캠페인에 참여하며 쓴 포스팅입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