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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도서]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도로테 베르네르 저/솔다드 브라비 그림/맹슬기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여성은 남성보다 '육체적인 힘'이 딸린다. 그렇다고 남성이 여성보다 '노동'을 더 잘하거나 많이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도 '노동의 양'만 따지고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일을 해 왔다. 못 믿겠다면 '주말의 거실 풍경'을 상상하면 쉽다. 거실 소파에 늘어지게 퍼져 있는 건 대부분 '수컷들'이니 말이다. 여성들은 '집안일'이나 하니 '바깥일'을 하는 남성들의 피곤함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아직도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용감한 남성'이 있다면 정말 대단한 거다. 청소, 빨래, 식사준비와 같은 '가사노동의 강도'는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거기다 '양육'과 '교육'까지 도맡아 한다면 살인적이다. 그래서 '워킹맘'이 대단한 거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성차별'의 근거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앞서 '육체적인 힘'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월등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것은 '차이'일까? '차별'일까? 뭔가 뜨끔한 분들도 계실 거다. 분명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를 보면, '이것' 때문에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낙인을 찍고 온갖 차별을 감내하라고 강요했다. 심지어 그런 '차별'을 합법화시켜 버린 '남성들만의 사회'를 만들어놓고, 여성을 '노예'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하였다. 21세기인 '지금'까지 말이다. 놀랍지만 '사실'이다.

 

  이런 불평등을 깨닫고 바로 잡으려던 '여성들'이 있었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눈에 띄는 '저항'을 살펴보면, 먼저 '중세시대'의 '베긴 수녀들'이 있다. 그녀들은 '남자들(수도승)'처럼 자립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수녀들이었다. 경건한 종교활동을 한 뒤에 신도들이 낸 '헌금'을 받아 자립적인 생활을 하던 '베긴 수녀들'을 남자들이 못마땅하게 여긴 것은 어쩌먼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베긴 수녀들'이 자립할 수 없도록 다른 수녀들처럼 '수녀원'에 가둬버리고 말았다.

 

  이런 저항은 계속 이어진다. '18세기 계몽시대'가 다가오기 직전인 17세기에는 '마녀사냥'이 한창이었다. 마녀라고 지목된 이들은 대다수가 '여성'이었지만, 일부 '남성'들도 있긴 했다. 조족지혈보다 못할 정도지만 말이다. 암튼, 마녀로 지목된 여성들은 대부분 '여성 지식인'들이었다. 의학이 아직 발달하기 이전이었으므로 '약초'를 잘 다뤄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원 역할을 하기도 했고,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시기였으므로 출산이 임박한 산모들이 쑴풍쑴풍 순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산파 역할도 했다. 거기다 똑똑한 여성들은 자신이 살아온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로 문제를 척척 해결하는 '일상생활 속 현자들'이었다.

 

  그런데 '글자'도 읽지 못하는 여성 나부랭이가 '종교'가 해야 할 역할들을 척척 해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자 '그녀들'을 마녀로 지목하고, 자백을 강제하기 위해 고문하고, 주변 사람들을 꼬드겨서 마녀라고 증언하도록 부추기고, 심지어 물 속에 빠뜨려서 가라앉으면 '마녀'가 아니고, 물 위로 떠오르면 '마녀'라고 심판을 내려 죽여버렸다. 차이점은 없다. '마녀'로 찍히면 고문 받다 죽거나, 물에 빠져 죽거나, 대부분은 불에 태워 죽였다.

 

  '인권'이 싹 텄다고 의심하지 않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법전'에도 여성은 여전히 '미성숙한 존재'였으며, 심지어 '정신이상자'와 동급을 취급하기 일쑤였다. 이에 여성들은 '자신들의 몫'을 챙기려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필요하다면 '조직적인 항거'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찔끔'이었다. 그녀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했고, 결혼 뒤에는 남편의 도움이 절실했으며, 과부가 된 뒤에는 아들의 보살핌이 필요했다. 법적으로 '모든 재산'은 남성들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9세기를 지낸 여성들은 20세기가 되면서 더욱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시작한다. 영국에서는 여성들도 '참정권'을 갖겠다며 '서프러제트' 투쟁을 시작했다. 영국 정부는 이들의 참여가 '소수'에 불과하다는 언론플레이를 저지르며 애써 무시했지만, 무려 3만 명이 한 장소에서 한 목소리를 냈더랬다. 영국 경찰은 모임에 참석한 여성들을 무자비한 방법으로 짓밟아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여성들의 저항은 계속 이어졌고, 급기야 '에밀리 데이비슨'이란 여성은 경마장에 뛰어들어 달려오는 말에 치어 목숨을 잃어버렸지만, 진정한 '여성 해방'을 외쳤다. 결국 이 사건은 신문에 대서특필 되며 널리 알려지는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사회는 여성들의 '움직임'을 애써 무시하였고, 모든 일은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하여'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남성들은 모두 전장터로 떠나버렸고, '남자들의 빈자리'를 여성들이 채워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성들은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잘 했다. 결국 전쟁이 끝난 뒤에도 여성들은 남성들이 하던 일을 '일부' 해 나갔고, 결국 여성도 '할 수 있다(We can do it)'는 구호를 외치게 되었다.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살던 시대'이므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여성차별'이 심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건 '여성'이 아이를 낳는 몸을 갖고 있었던 탓이 크다. 지금에 와서야 '출산'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어 '여성의 임신'이 축하받을 일이 되었지만,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볼 수 없던' 풍경이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끈질긴 '남아선호사상'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여성성'이 존중 받지 못했던 탓에 여자들 스스로도 '남자아이'를 낳지 못하면 남 몰래 울음을 터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은 심한 '차별'을 받았던 것이다.

 

  '인구절벽'을 경험하는 시대가 되어서야 겨우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은 멈출 줄을 모른다. '유리천장'이니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것은 따로 이야기하도록 하고, 성차별보다 더 심각한 '여성혐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다른 나라도 아닌 바로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도대체 '여성혐오'를 왜 하게 되었는가?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된장녀', '김치녀', '메갈리아' 등등 '페미니즘'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 같은 일까지 다 싸잡아서 '비난'을 하는 통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지만, 어쨌든 존중 받아야 할 '여성'을 험오하게 된 사연들이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하나 같이 들어줄 수 없을 정도의 '쪼잔함'과 '비이성적인 말과 행동 들'에서 비롯한 것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남녀차별을 넘어선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갈등해소'인데, 지금은 전혀 가망이 없어 보인다. 왜냐면 너무나도 첨예하고 극명한 '반대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학교 현장에 '남교사'가 부족해서 교원자격을 딸 때 '남학생'에게 가산점을 주는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하면, 여학생들은 '역차별'이라며 반발한다.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성적순', '실력순'과 같은 객관적인 지표가 있는데 단지 '남교사'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여학생보다 공부도 못하는 '저질 남교사'를 양산하겠다는 정책이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묘하게 변질된다. 반발하는 여학생과는 달리 학교를 장악한 '여선생'들은 자신들의 업무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육체적인 힘'이 월등한 남선생들을 부려먹기(?) 위해서라도 '저질 남학생'을 뽑는 정책에 찬성을 던진다. '남녀갈등'이 '여여갈등'으로 변질되는 현장이다. 그러면 여선생은 왜 저질 남선생이라도 꼽으려 하는가? 숙직하기 싫어서, 환경미화나 운동회 같이 '무거운 물건'을 옮겨야만 할 때 옮기기 싫어서라는 이유 때문이란다.

 

  물론, 갈등의 일부분만 보여주는 예를 들었다. 물론, 이 책에도 담겨 있지 않은 내용이다. 하지만 분명히 '여성혐오'에 대한 뿌리 깊은 예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갈등 양상을 지켜보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다. 애초의 정책이 '누구'를 위한 정책이었는지 '오해'하기 딱 좋고, '사실'을 곡해해서 '가짜뉴스'를 퍼트리기도 딱 좋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본질' 따위는 중요하지도 않다. 오직 '갈등'이 '갈등'을 부르는 절차만 남았기 때문이다. 용감한 누가 나서서 "팩트는 이렇습니다"라고 말하며 해소를 시도해도 허사가 되기 십상이다. 애초에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폭력사건'이 벌어진다. '육체적인 힘'이 월등한 남성들이 '여성혐오'에 빠져서 힘으로 해결하려고 드는 몰상식한 일이 벌어진단 말이다. 여기에 지지 않으려는 여성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힘에는 힘으로 맞선다는 듯이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러면서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과 같은 일이 끊임없이 벌어지며 갈등 양상은 더욱 더 버라이어티해진다. 애초의 시작이 무엇이었는지, 갈등해소 방안은 무엇인지...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고, 어느 한 쪽이 싹 사라져야 해결될 듯이 격앙되기 일쑤다.

 

  이 책은 '성차별'을 멈추자는 목적에서 출간된 책이다. 하지만 '여성 혐오'로 논란이 변질되면 '성차별'은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라고 여기기 십상이다. 이젠 멈춰야 한다. 세상의 모든 갈등은 풀기 힘들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를 죽일 듯이 몰아붙이는 '말과 행동'부터 멈춘 뒤에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아들이고 딸이란 구분 없이 존중하고 사랑해야 할 '어머니'를 대하듯 상대를 대하길 바란다. 또, 남자고 여자란 구분 없이 '어머니'가 되어 자신이 낳은 아들과 딸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상대를 대하길 또 바란다. 당신은 당신에게 '생명'을 나눠 준 '어머니'를 욕되게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어머니'가 되어서 자신이 직접 낳은 딸과 아들을 구별해서 '차별'할 수 있겠는가? 남성과 여성 모두 '어머니'의 몸을 빌어서 태어났고, '어머니'의 몸을 아프게 하며 탄생하였다. 그 어느 누가 어머니를 욕되게 하겠는가.

 

  누구라도 '어머니'가 된 뒤에 갈등을 해소하면 어떨까? 누구나 '소중한 엄마의 자식들' 아니냔 말이다. 그럼 '아빠'는...이라고 딴죽을 걸지 말자. 이 땅의 아버지들은 자기 몸이 부서져라 자식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존재니 말이다. 아닌 아빠들도 있지 않냐고? 그건 아닌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딴죽을 걸지 말라는 거다. 흥정을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는데, 왜 자꾸 갈등을 키우냔 말이다. 정리하면, '사랑' 밖에 없다. 아가페든, 에로스든...갈등을 푸는데에는 '사랑'만 한 것이 없다. 책 내용과는 많이 다른 '엉뚱한 결론'이지만, <성차별의 역사>를 읽으면서 '원인분석'만 잔뜩 늘어놓으면 무엇하겠는가. 역사를 잘 이해해서 '여성인권'을 위한 투사가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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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얼마 전 신문에서 달리는 국왕 소유 말이 참여한 경마 대회에서 달리는 말에 몸을 던진 "에밀리 데이비슨"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나네요. 덕분에 여성들이 참정권을 갖게 되었는데 그 시기가 불과 100여년 전 일이니...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사회 곳곳에 성차별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지아님 이야기처럼 혐오가 아닌 사랑으로 풀어나가야겠어요...

    2020.08.25 08:24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異之我...또 다른 나

      차별과 소외를 한 대가는 반드시 치루게 되어 있습니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과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똑같이 일어납니다. 아니, 과학에서는 똑같은 힘이 작용할 뿐이지만, 사회문제에서는 '눈덩이 효과'로 인해 더 큰 반작용을 겪게 됩니다.

      이젠 '남녀평등'을 넘어서 '여성우월'적으로 살아도 상관이 없을 정도로 '여성파워'가 세졌습니다. 이에 남성들은 불안을 느끼고 '역차별' 운운하지만,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오히려 수그리고 여성을 받들어 모셔야만 합니다. 인류는 '남성'과 '여성', 어느 한쪽이 우월한 존재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과학적으로 봐도 '여성'이 더 복잡하고 완전 우월합니다. 유전학적으로 남자는 '꼬추' 하나 빼고 나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을 정도니까요. 벌들 사이에서도 '수벌'의 존재는 미미할 뿐입니다.

      우리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선 어찌해야 할까요? 여성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칠푼이 팔푼이 여자들이 '신데렐라 콤플렉스'로 완전무장하고 있는데, 잘 먹고 잘 살게 만들자는 얘기는 아니니 오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적어도 여자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사을 만들면 남자들은 더욱 안전한 세상이라는 것을 깨우쳐야 한다는 겁니다. 조두순이 2020년 12월에 출소를 한답니다. 이런 놈들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세상이 되면 절대로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네버엔딩 스토리'랍니다. 해도해도 끝없이 할 이야기가 넘쳐납니다.

      2020.08.25 14:17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