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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 버클리

[도서] 데카르트 & 버클리

최훈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철학은 꼭 배워야 할 학문이다.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초중고 교과서에 '철학교과서'는 없다. 아니,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철학'이 있긴 하지만, 역시나 가르치는 학교가 거의 없다. 이유는 명확하다. 수능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다르다. 미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유럽국가들, 그리고 인도와 중국, 심지어 일본이나 동남아시아도 '철학교과'를 가르친다. 그런데 우리는 굉장히 등한시하고 있다. 아직도...

 

  하지만 우리도 철학을 가르치긴 한다. '도덕과목'과 '윤리과목'에서 철학을 일부 다루고 있고, 다른 과목에서도 '철학'과 관련된 지문이나 문제를 다루면서 '철학이야기'를 하고 있긴 하다. 그런데 '겉핥기 수준'이라서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다면 '철학교육'은 꼭 필요할까?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말하면 입 아프긴 하지만, 안 할 수가 없다. 정말 너무도 철학을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은 정말 가르치기 쉽다. '국어과목'에서도, '수학과목'에서도, '사회/과학과목'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가르칠 수 있다. 바로 '질문'을 통해서 말이다. 그 질문은 "넌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물으면 된다. 정말 간단하지 않은가. 철학은 이처럼 아주 쉽다. 아이가 쉽사리 '생각의 물꼬'를 터뜨리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다면, 먼저, "난 이것에 대해선 이렇게 생각한단다"라고 귀띔을 해주면 더욱 좋다. 그러면 아이들은 "아, 그런 거라면 저도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라면서 스스럼없이 철학에 한 발을 내딛기 시작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렇게 쉬운 '철학수업'을 왜 도입하지 않는 걸까? 여전히 '학생 수'가 많은 것을 꼬집는다. 현재, 한 반에 30명 남짓의 학생이 있는데, 이 아이들이 한 마디 하는데 '10초씩'만 잡아도 300초가 되며, 5분을 잡아먹는다고 말이다. 거기다 선생님도 한 마디씩 거드니 10분이 훌쩍 넘어버리기 일쑤고, '논쟁'이라도 벌어지게 된다면 수업시간을 홀랑 잡아먹기 때문에 '수업진도'를 나갈 수가 없노라고 말이다. 본색이 드러났다. 우선, 학생 수가 많음을 핑계거리로 삼지만, 결국은 '수업진도'를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의 발단'인 셈이다. 애초에 '철학과목'이 없으니 이런 일이 발생한 셈이다. 어쨌든, 5분~10분 동안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얘기할 수 있는 마당을 열어놓는 것이 얼마나 큰 효과가 생기는지도 한 번쯤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한편, 이 책은 '근대철학의 시작'을 알리는 <데카르트>에 대한 철학책이다. 물론 '버클리'도 언급되어 있고, '흄'과 그밖의 많은 철학자들도 언급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데카르트 철학'을 설명하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할 뿐이므로 살짝 몰라도 상관 없다. 그래서 분량도 '데카르트'가 70%를 차지하고, 나머지를 '다른 철학자들'이 노나 먹고 있다. 그렇다면 '데카르트 철학'이란 무엇인가?

 

  '데카르트 철학'은 한 마디로 '인식론'이다. '인식'이란 '안다'는 뜻이니, 무언가를 안다는 것에 대한 철학인 셈이다. 우리는 '알기' 위해서 두 가지 방법을 떠올릴 수 있다. 하나는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지를 했기 때문에' 안다고 하는 것이다. 이를 굳이 어렵게 설명하자면,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으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이딴 걸 자꾸 언급하니까 '철학'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거다. '안다'는 건 그냥 '아는 것'이다. 내가 경험을 해서 알든 인지를 해서 알든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허나 하나만 기억하면 좋을 듯 싶다. 원래 '철학자'들끼리는 '단어 하나', '표현 하나'를 가지고 평생을 씨름하는 족속들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일반독자들은 '철학자들의 싸움 구경'이나 재미나게 하면 되지, 굳이 머리 아프게 '이해'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는 걸 '인지'하시고, '경험'적으로 터득하시면 도움이 될 거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대륙쪽 사람'이므로 합리적인 스타일로 '인지'하며 인식하려고 했다. 물론 '경험'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어느 날, 데카르트는 궁금해졌다. '생각하고 있는 나'가 내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뭔 소린고 하니, '장자'의 '나비의 꿈' 이야기로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 듯 하다. 즉, 꿈 속의 내가 '진짜'인지, 현실의 내가 '진짜'인지 헷갈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을 쓴 저자 '최훈'은 이를 더욱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영화 <매트릭스>와 <토탈리콜>로 빗대어서 설명하였다. 심지어 '이경규의 몰래카메라'까지 끌어들여서 말이다.

 

  허나 중요한 건 '재미난 비유'가 아니다. 데카르트가 '의심'을 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유명한 말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Gogito ergo sum)'가 등장한다. 풀이하면, 어느 쪽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의심하고 있는 나'만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철학이 이쯤에서 끝나면 참 재미있을텐데, '의심하고 있는 나'마저 부정하는 상황이 펼쳐지면서, 철학자들끼리 설왕설래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결론만 말하면, 신부였던 버클리는 '신의 존재'를 끌어들이며 '관념론'으로 이 논제를 해명하려 하였고, 흄은 더욱 철저한 '합리론'으로 문제를 깔끔히 해결하려 하였다. 뭐,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다.

 

  다시 데카르트로 돌아와서, '데카르트'는 이 논제를 '끝없는 의심'으로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나서 더는 의심할 수 없는 '점'에 도달하고 나서야 끝맺으려 했다. 그러다 실수를 하였는데, 그건 '회의론자'도 아니면서 '회의론'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던 거다. '회의'라는 것이 '의심을 품다'는 뜻이기 때문에 데카르트는 자신의 합리적인 의심으로 인해 결국 '세상에 믿을 것 하나 없다'는 회의론자들의 선구자가 되고 말았던 거다. 그런 까닭에 '데카르트'는 회의론자도 아니면서 회의론자라고 오해받곤 하는데, 이 또한 '철학자들의 몫'이니, 그닥 궁금해 할 것이 못 된다.

 

  자,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철학'이 무엇이냐? 고 묻는다면, 대답할 것이 없다. 이 책의 풀이 수준이 '전문가용'인 탓에 일반독자들에게 남는 것이 없다. 괜히 '철학이 어렵긴 어렵구나'하는 인상만 남겨줄 뿐이다. 물론, 이런 문제는 '트랜드'가 달라진 탓이기도 하다. 10여년 전에는 이처럼 '상세한 설명'이 담긴 교양책이 유행을 했다면, 근래에는 '무조건 쉽고 간결한 설명'이 담긴 교양책이 주목 받는 탓이다. 그 덕분에 이 책이 좀 어렵고 접근하기 불편한 책이 되고 말았지만, '철학'을 좀 더 깊이 있게 접하고픈 독자라면 충분히 권하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요즘 '대세'는 쉽고 재미난 교양책이다. 왜냐면 '지적욕구'는 더욱 높아진 탓이다. 이는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근래에는 '독서광'이 대입에 유리하다는 입소문을 타고 책을 읽으려는 용감한 청소년들이 참 많아졌다. 그 때문에 '청소년책' 분야도 참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는데, 진정 용감한 청소년이라면 이 책도 한 번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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