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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습관 캠페인

1. 구매인증이력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

고병권 저
천년의상상 | 2020년 03월

 

2. 읽은 쪽수 : 143쪽 ~ 167쪽

 

3. 책 읽은 뒤 느낌

  <북클럽 자본> 시리즈를 읽은 것 가운에 이 책이 가장 재미가 없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동 임금'에 관한 내용을 풀어놓았는데, 웬만한 '개론서'보다 더 헷갈리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단원도 '노동'과 '노동력'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는데, 엎어치나 메치나 그게 그 소리인 설명을 하면서도 이론적으로 잘못된 설명이라면서 관용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내용에 딴죽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당대의 경제학자들도 '노동'과 '노동력'을 같은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그 경제학자라는 사람들이 죄다 '부르주아'나 '자본가' 들을 편드는 부류인 관계로 달갑지만은 않지만, 마르크스가 '애꾸눈 마을'에 가서 애꾸눈이 정상이 아니라 '한 쌍의 눈'을 가져야 정상이라고 고집을 부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차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잘못된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하고, 노동자들에게 이득이 되는 방안을 주장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허나 마르크스도 어쩔 수 없는 '철학자'였던 모양이다. 자기 눈에 띤 이상,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부분이란 바로 '노동의 가치'란 표현은 틀렸고, '노동력의 가치'라고 표현해야 옳다는 내용이었다. 왜냐면 노동자가 사용자(자본가)에게 제공한 것은 '노동'이 아니고 '노동력'이기 때문이란다. 마르크스의 주장에 따르면, '노동=가치'라는 뜻이기 때문에 '가치'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다는 표현은 틀렸고, 노동자가 갖고 있는 생산능력인 '노동력'을 계약에 따라 제공하고, 그만큼 임금을 받는 것이라고 표현해야 옳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일상에서는 '노동의 가치'나 '노동력의 가치'라는 말을 너무도 자주 혼용해서 쓰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는 사용자(자본가)에게 자신이 가진 노동력을 '팔아서' 임금을 받는다는 표현도 흔히 쓰인다. 여기에 대해서도 마르크스는 발끈한다. 노동력을 헐값에 팔아넘기고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도 못하면서 '임금을 받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으니, 어서 그 착각에서 빠져나오라고 말이다. 그 착각이란 앞서서 설명했던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이고,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필요노동'만큼의 임금만 지급할 뿐, '잉여노동'에 대한 몫을 노동자를 대신해서 착취한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닥 새로운 내용도 아니고 앞에서 다 설명한 내용에 대한 '부연설명'을 하면서 새삼 마르크스의 분노를 또다시 설명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앞에서 터뜨린 분노로 모자라서 더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며 한 번 더 터뜨린 것일까?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캠페인에 참여하며 쓴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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