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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습관 캠페인

1. 구매인증이력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

고병권 저
천년의상상 | 2020년 03월

 

2. 읽은 쪽수 : 168쪽 ~ 189쪽

 

3. 책 읽은 뒤 느낌

  마르크스가 '노동'과 '노동력'을 구분하려고 했던 까닭을 이제사 이해하게 되었다. 흔히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을 왜 '노동'이 아닌 '노동력'으로 환산해서 받아야만 하는지도 말이다. 그 까닭은 바로 '노동시간에 따라 받는 임금'에는 노동자가 생산력을 회복할 만한 여력을 남겨두지 않고, 결국 노동자의 '생명력'을 갉아먹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노동자는 '노동력'을 유일한 생산도구로 쓰고 있는 탓에 땀흘려 일한 뒤에는 반드시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까지 고려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노동자는 먹고 살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노동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 6만 원인 경우에 8시간 노동을 했다면, '시간당 6/8만 원'을 번 셈이다. 다시 말해 '시급 7500원'을 번 셈인데, 수학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요즘 물가를 반영한다면 매우 적은 시급이긴 하지만 이해하기 편하게 예를 들자면 말이다. 이렇게 30일을 일하면 한 달에 180만 원을 번다. 연봉으로 치면 2160만 원을 벌게 되므로 '서민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버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노동시간'으로 임금을 받게 된 노동자는 일 년동안 거의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게 된다. 휴일이나 휴가를 가게 된다면 수입이 깎이게 되고 '서민 라이프'가 아니라 '빈자 라이프'를 살게 된다. 혹시라도 질병에 걸리게 된다면...'극빈자 라이프'로 고고씽 하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유휴수당'이라는 것이 도입되어 있다. 노동자가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일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수당을 챙길 수 있는 제도다. 이는 노동자의 '생명력'을 갉아먹지 않고 노동자의 건강과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서 만든 제도다. 따라서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노동시간에 따른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에 따른 임금'을 지급해야만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노동자의 삶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바로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 '노동'과 '노동력'을 그토록 구분지으려 했던 것이다.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캠페인에 참여하며 쓴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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