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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습관 캠페인

1. 구매인증이력

징비록

유성룡(류성룡) 저/김흥식 역
서해문집 | 2014년 11월

 

2. 읽은 쪽수 : 34쪽 ~ 61쪽

 

3. 책 읽은 뒤 느낌

  1591년 봄, 통신사로 갔다 돌아온 황윤길과 김성일 일행은 선조 앞에 나아가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서인 황윤길은 일본이 반드시 쳐들어올 것이라고 하였으며, 동인 김성일은 정반대로 그럴 일은 없다고 하였다. 류성룡이 이를 의아하게 여겨 김성일에게 다시 물어보니, "어찌 일본이 쳐들어오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있겠소만, 일본이 쳐들어온다고 똑같은 보고를 올리면 민심이 동요되어 나라에 해를 끼칠까 걱정한 까닭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결론인즉, 쳐들어올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다. 훗날 김성일은 왜적이 쳐들어오자 가족도 돌보지 않고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다 순국하였으니 '충신'이라는 칭호는 아깝지 않지만, 전쟁을 1년이나 앞두고 변변한 대비도 하지 못하도록 한 죄값은 결코 씻을 수 없게 되었다.

 

  허나, 이는 김성일만 탓할 수 없는 노릇인 것이 당시 조선은 오랜 평화로 인해 해이해질대로 해이해졌기 때문에 대비를 했다손치더라도 뾰족한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는 탄금대에서 유명을 달리한 '신립 장군'을 보아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류성룡이 조선의 군대가 기강이 해이해졌으니 장군께서 기강을 바로 잡으셔야 한다는 말에도 '평화'를 운운했고, 왜국의 조총이 큰 위력을 발휘한다고 하니 조심하라고 일렀어도 '명중률도 낮고 재장전도 느린 무기'라고 깔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북쪽 오랑캐인 여진족의 침략이 잦아지자 선조 임금이 뛰어난 장수를 천거하라고 이르자, 류성룡이 '이순신'을 천거한 것이 유효적절했다. 실제로도 이순신은 북방에서 여진족을 소탕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허나, 부패하고 무능한 상관들 때문에 실력을 인정받기는커녕 목숨이 달랑거릴 정도로 박대를 당할 뿐이었다. 이순신이 이 당시에 '백의종군'을 경험했으니, 훗날 왜적의 계략과 원균의 무능으로 인해 고초를 겪은 것이 두 번째인 셈이다.

 

  암튼, 조선은 전쟁발발 1년 전을 이렇듯 허무하게 보내고 있었다. 다만 민심이 동요되고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는 피부로 느낄 정도로 느껴지고 있었다. 왜국 사신들의 무례함이 나날이 높아지고 경상도 일대에서 왜인들의 자취가 싹 사라진 것을 눈치 채고 나서야 부산 앞바다에 왜적의 배들이 새까맣게 다가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1592년 4월 13일이다.

 

  부산포 앞바다에 아무런 저항없이 상륙한 일본군은 곧바로 한양을 향해 진격을 시작하였다. 부산포를 지키던 첨사 정발은 준비할 새도 없이 공격을 받고 전사하고 말았다. 부산포를 점령한 일본군은 이틀 뒤에 동래성에 다다랗고 부사 송상현은 용감하게 맞서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패배하자 항복도 하지 않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이에 감동한 일본군이 후하게 장사 지내주었다고 전해진다. 동래성이 무너지자 인근 고을도 힘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당시 조선은 '제승방략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는데, 조선 초기에 '진관 제도'가 지역 방어에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삼포왜란 당시에 왜적이 대규모로 쳐들어오자 각개격파를 당하며 속수무책이 되자 여러 지역의 진관을 하나로 묶어서 대규모로 반격을 하니 이것이 바로 '제승방략 제도'다. 이 제도는 중앙에서 파견한 지휘자가 도착할 때까지 대규모로 군사를 모아놓고 방어를 하는 등 꾸준한 군사훈련이 필수였는데, 삼포왜란 뒤에도 변변한 군사훈련을 하지 않았던 조선으로서는 100여 년동안 전란으로 다져진 수십 만의 일본군에 맞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말았다.

 

  어쨌든 외적이 쳐들어왔으니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함에도 한양에서 '응원군'을 모집해서 전장으로 보내기 위해 군사를 모았는데, 관복을 치렁치렁하게 입고 손에는 서책과 붓을 들고 머리에는 관모를 뒤집어 쓰고 징집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허약한 유생들이 대다수였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을 뿐이다. 이에 전장으로 나아가야 할 이일 장군은 이들을 내버려두고 홀로 떠나니 '임진왜란' 초기에 허무하게 평양까지 밀려버린 것이 우연이 아니었으며, 평양에서 겨우 진군을 멈추게 한 것이 기적과도 같은 일인 셈이다.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캠페인에 참여하며 쓴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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