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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습관 캠페인

1. 구매인증이력

징비록

유성룡(류성룡) 저/김흥식 역
서해문집 | 2014년 11월

 

2. 읽은 쪽수 : 62쪽 ~ 93쪽

 

3. 책 읽은 뒤 느낌

  임진왜란 초기에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왔지만 조선에도 '천혜의 요새'가 있었다. 바로 '문경세제'다. 지금도 이곳을 가면 길목은 좁고 산세는 험한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애초에 일본군도 이곳을 지날 때에는 '척후병'을 보내며 조심조심 올라왔다고 한다. 혹시라도 조선군의 매복이 있다면 꼼짝없이 발목이 묶여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곳을 조선 최고의 명장 '신립'이 지키고 있었다. 헌데 신립은 '천혜의 요새'를 비우고 '탄금대' 벌판에서 배수진을 치고 적들이 지나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훗날 명나라 장수 이여송도 일본군을 추격하며 이곳을 지날 때 "신립이 이곳을 두고도 왜적을 막지 못했으니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었구나"하며 한탄을 했단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결정적인 단서는 '신립 장군'이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머리 나쁜 장수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략' 없이 '용맹'하기만 한 장수였다는 평가로 볼 때, 신립은 '지키는 전투'보다는 '이기는 전투'만을 머리에 그리고서 일본군을 얕잡아 보고 무작정 덤빈 셈이다. 이런 신립이었으니 말을 타고서 뻘밭을 달려 일본군과 한판 붙었다가 전세가 밀리자 후일을 도모하지도 않고 탄금대에서 강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던 것이다. 만약에라도 전략을 세울 줄 아는 '용병술'을 갖춘 장수였다면 '조령'을 단단히 지키면서 '응원군'과 '의병'이 지원해주길 기다리면서 전세를 갖추었을 것이다. 그럼 '조령'이 뚫리더라도 일본군을 보기만 해도 도망가기 바빴던 조선군이 일본군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라도 생겨서 명나라의 도움 없이도 능히 지켜냈을 것인데, 참으로 안타깝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한양까지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선조는 '파천'을 결심한다. 일본군의 진격속도보다 더 빠르고 비밀리에 실시된 '파천'은 백성들의 울부짓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돈의문'을 지나 '임진강'을 건너 개경을 지나, 평양을 스쳐지나면서, 의주에 도착하고도 '압록강'까지 건너려고 하였다. 일본군이 한양에 당도해서 놀란 것은 '임금'이 도성을 버리고 도주한 것보다 저토록 빠른 속도로 도주할 수 있는 능력이었을 정도였다.

 

  허나 조선은 온갖 '빈틈'을 다보여주고 만다. 최초의 승전보를 거둔 장수 신각을 '도망간 쫄장부'의 비겁한 핑계 한 마디에 처형했다가 뒤늦게 승전보를 받고서 후회한 장면, 임진강을 방패 삼아 일본군의 진격을 막는 장수가 일본군의 '거짓 퇴각'에 속아 패배한 것으로도 모자라 '자중지란'을 일으키며 싸워보지도 못하고 평양으로 후퇴한 장면, 왕자의 신분으로 전쟁통에서조차 백성들에게 횡포를 부리다 백성들의 반란에 일본군의 수중에 포로로 잡히는 장면 등등 지금 보면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일 정도로 허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애초에 <징비록>을 쓴 목적이 바로 이런 빈틈을 매워 다시는 전란에 빠지지 말라는 '반성'과 '경계'를 담았는데, 이를 교훈으로 삼지 못하고 끝내 '병자호란'을 또다시 겪고 말았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다.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캠페인에 참여하며 쓴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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