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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의 진실

[도서] 에밀 졸라의 진실

에밀 졸라 저/이진희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불편한 진실이란 말이 있다. 거짓이 판을 치는 더러운 세상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 일상에서 아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엿같은 상황을 단박에 정리해서 말해주는 유용한 표현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거짓이 판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얘긴데, 정치가 그렇고, 종교가 그렇고, 결정적으로 언론이 그렇다. 물론 우리는 참다운 정치, 종교, 그리고 언론에 대해서 대단히 존중하고 있다는 점이 기본임을 밝히는 바다.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정치인과 종교인에 대해서 우리는 아낌없는 찬사와 존경을 표하고 있으며, 진실을 밝혀줄 참언론의 필요성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그러나 그런 존경받아 마땅한 이들이 참 드물다는 점이 매우 아쉬울 뿐이다. 가물에 콩 나듯 말이다. 어쨌든 '진실'이 불편했던 한 사건을 우리는 유심히 지켜봐야만 한다.

 

  프랑스대혁명에서 보여준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은 구시대를 타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펼쳐낸 대명사로 쓰임과 동시에 '프랑스의 지성'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할 만큼 대단한 영향력을 지녔다고 믿는...암튼,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의 밑천이다. 하지만 그 이후 프랑스는 혼란기를 맞이하고 국력이 쇠퇴하며 라이벌인 영국에게 뒤쳐지기 일쑤고, 특히, 비교되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을 상할 정도로 한 수 아래로 내리보던 독일과는 전쟁만 했다하면 져버리는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1870년대 '보불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는 더욱 그러했다.

 

  이렇게 열등한(?) 프랑스에게 아주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 '드레퓌스 사건의 발단'이기도 하다. 1894년 어느 날, 드레퓌스는 군사재판에 회부된다. 프랑스 육군 포병 대위인 그는 적국인 독일에 '군사기밀'을 빼돌렸다는 혐의를 받았고, 기밀문서에 담긴 그의 '필체'가 비슷하다는 것이 유일한 단서였다. 그리고 반역죄를 선고받고 유죄 판결이 났으며, 종신형에 처해졌다. 군인신분을 박탈 당한 것은 물론이다. 드레퓌스는 글씨체가 다르다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재판관은 드레퓌스가 고의로 글씨체를 바꿔 썼다며 주장을 묵살했다. 이렇게 군사법부는 끝내 그를 죄인으로 만들었고, '악마의 섬'으로 유배를 당해 죽을 때까지 갇혀 지내야할 운명이었다.

 

  그렇다면 드레퓌스는 유죄인가? 결론만 말하면 '아니다'. 그는 결백했고,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진범'은 따로 있었다. 프랑스 참모본부 소속의 조르주 피카르 중령이 다른 간첩 사건을 조사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드레퓌스가 날조된 증거로 범인으로 몰렸고, 에스테라지 소령이 '군사기밀문서'를 독일대사관에 넘겼다는 증거를 찾았으며, 문서의 필체가 에스테라지의 글씨체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하지만 프랑스 군 당국은 재판결과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자신들의 잘못이 알려지면 '프랑스의 위상'이 흔들릴 것이라 여겼는지, '반대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 싫었는지...암튼,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 피카르 중령을 외국으로 좌천시키면서까지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불편한 진실이었더라도 그때 밝혔더라면 사태는 커지지 않았을 것이고, 개인의 희생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드레퓌스를 '희생양'으로 삼는 쪽을 선택했다. 어쩌면 드레퓌스가 '유대인'이었고, 심지어 '독일계'였다는 사실이 중요했던 모양이다. 자신들의 무능을 감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반유대주의'와 '반독일주의'로 감추고 대중의 비난과 시선을 '다른 곳'으로 쏠리게 만드는 것이라고 철떡같이 믿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진실'이 불편한 까닭은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감추려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마냥 부질 없는 짓이다.

 

  피카르 중령이 파리로 되돌아오자 감췄던 진실이 다시 드러나기 시작했다.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재판이 다시 벌어졌고, 에스테라지를 진범으로 고소했다. 하지만 군사법원은 에스테라지를 무죄로 방면했다. 심지어 에스테라지는 진실과는 다른 얼토당토 않은 증언들을 쏟아내는데도 군부와 재판관은 눈을 감았는지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범이 무죄로 풀려나자 고소를 한 당사자들이 군사기밀을 누출했다는 이유로 체포하는 등 '프랑스 당국'은 자신들의 잘못은 은폐하고 권위만 드높이기로 결심했다.

 

  이제 사건의 진상은 시민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여론은 두 갈래로 갈리어 갈등을 촉발시키고 심화시켰다. 우선, 재판 결과에 분노한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를 신문에 기고하면서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 글의 내용은 아무런 죄가 없는 한 젊은 장교를 구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프랑스를 뒤흔드는 정치적 쟁점이 핵심이었고, 전세계를 강타한 이슈가 되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당연한데도 '진실'을 두려워하는 프랑스 당국을 고발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밀 졸라는 수많은 지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군사법원을 중상모략했다는 이유로 징역1년을 선고 받았고, 생명의 위협을 받아 영국으로 망명 했다 1년 뒤에 귀국하는 헤프닝이 연출되었다.

 

  갈등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반대파인 애국보수진영은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졸라와 유대인을 죽여라"라고 외치며 시위를 펼쳤고, 프랑스 군부는 "진실을 밝히라는 것은 군사기밀을 밝히라는 것이라며, 그로 인해 독일과 전쟁이 벌어져도 괜찮은가"라면서 으름장을 놓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졸라와 진보진영은 프랑스 군부와 정부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고, 전 세계 여론도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쪽에 동조하였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드레퓌스 사건을 애써 없던 일로 감추려고만 했다. 그럴수록 진보진영은 시위를 멈추지 않았고, 심지어 테러와 폭동까지 동원하는 일이 빈번했다. 국제사회는 '프랑스 사태'에 관심을 높였고, 이로 인해 프랑스는 외교적 부담감을 떨칠 수가 없게 되었다.

 

  일파만파로 커지던 '드레퓌스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며, 관련자들이 자살을 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재심'에 들어갔고, 사건 5년만에 드레퓌스는 유배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죄로 풀려난 것이 아니었으며 종신형이 '10년형'으로 줄어들었다.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던 것이다. 다시 7년이 지나서야 프랑스 대법원은 드레퓌스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모든 혐의에서 사면되어 육군에 복직해서 1차 세계대전 내내 복무하다 육군 중령으로 전역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100년도 더 지난 '드레퓌스 사건'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당연히 밝혀져야 할 진실이 '외면'받는 비극이 오늘날에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서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죄 없는 사람이 죄인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진실을 감추려는 이들의 후안무치하고 뻔뻔한 짓거리도 아울려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이 '권력'을 갖고 있을 때, 얼마나 커다란 비극을 불러오는 지도 명심해야 한다.

 

  우리도 '드레퓌스 사건' 못지 않은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당당한 권력자들이 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팔아먹고도 위풍당당한 '매국노'와 '친일파'들이 그들이었으며, 해방이 된 뒤에 재빨리 '반공주의자'로 거듭나서 '독재정권'을 든든히 뒷받침했던 그들도 기억해야 하며, 한때 진보진영을 선도했던 이들이 '권력의 맛'을 본 뒤에 '과거 정권의 무능'을 그대로 답습했던 답답한 그들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우리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자칭 '애국보수'라는 분들이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고 '무능한 정권'을 무조건 지지하는 어처구니 없는 작태를 보여주었기에 '그들'이 후안무치하고도 여태 살아남았던 것이다. '진보진영'이라는 분들도 전혀 진보진영답지 않게 '그때그때마다 달라요~'를 신념으로 삼아 줏대없는 행보를 보여주었기에 스스로 무너진 결과를 보여주었다.

 

  진실은 언제고 밝혀지지만 '타이밍'이 중요한 법이다. 무능한 정권이 들어서고 난 다음에 진실이 밝혀진들 그로 인해 온갖 피해와 손해를 보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진실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한 번 감춰진 진실을 다시 밝히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거짓말은 쉽게 믿고 빨리 퍼지는데 반해서 참말은 잘 믿어지지 않고 더디게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교양 넘치는 똑똑한 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거짓에 속아넘어가지 않고 참말을 단박에 알아채고 참말을 굳게 믿을 수 있는 힘을 가진 교양시민 말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늘 진실을 밝히는 이는 '권력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사람 한사람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는 '시민'일 뿐이다. 힘 있는 권력자가 진실을 밝히는데 앞장 섰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교양시민'은 하나가 아니다. 에밀 졸라와 같이 진실을 용감하게 밝히는 이가 있다면, 교양시민은 진실에 공감하며 지지를 표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럿이 모여 진실을 함께 밝히면 언제나 진실이 승리하곤 했다. 교양시민의 무기는 바로 '연대의 힘'이고,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원동력은 바로 '진실'이었다. 이 '진실의 힘' 앞에서 거짓은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촛불'로 그 힘을 증명해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졸라가 '촛불'을 보았다면 망명 따윈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대선정국이 혼란으로 치닫는 것을 보았다면 개탄해 마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난 믿는다. 함께 '촛불'을 들었던 그 진정성은 잃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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