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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철학

[도서] 을의 철학

송수진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저자에게 '도서관이 피난처였다'는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나에게도 도서관은 '비슷한' 공간이었던 탓이다. 저자는 그곳에서 '철학'을 만났지만, 난 '직업'을 만났다. 맹목적으로 읽기 시작했던 '책'이 '밥벌이'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푸짐한 밥상을 차려주진 못했다. 그래도 난 주말마다 도서관을 찾았고, 평소엔 읽지 않았던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섭렵하며 점점 '논술쌤'으로서의 교양을 갖출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의 논술쌤으로 자부하고 있고 말이다.

 

  암튼, 저자는 삶의 고민을 넘어 '벽'을 만난 것 같은 답답함을 뻥 뚫어준 철학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물론, '저자의 경험'이 밑반찬이다. 그리고 갑이 아닌 을로서 자신이 느낀 우리 사회의 아리아리한 막장을 철학으로 스리스리 넘겨내는 지혜를 풀어내었다. 그리고 삶은 편안해졌단다. 박수가 필요한 순간이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답답함'과 '억울함'을 맞이하는가. 그때마다 당신의 처세술은 무엇인가? 그저 참고 견디는 것뿐인가? 아니면 다 때려치고서 후회하는가? 그러고서는 '원래 삶이 그런거야'라면서 또다시 그 답답함과 억울함 속을 전전하고 있지는 않은가? 때로는 친구들과 술 한잔 나누면서 울적한 마음을 달래곤 한다. 다음날이면 취기와 숙취가 가시질 않아 불편해진 속을 달래려 '반복적인 해장'을 하기도 한다. 이 얼마나 다람쥐 챗바퀴 도는 듯한 인생이란 말인가.

 

  그럴 때 저자처럼 '철학'을 만나보길 권한다. 쫌 쎈 철학자를 만나길 권한다. '반사회적인 철학자'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속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에겐 '마르크스'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름하야 '반자본주의'다. 사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며 자본주의가 제대로 굴러가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본가들의 반성이 유의미하지 않으니 <공산당 선언> 같은 책을 쓴 것이다.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억압하고 굴종하게 만드는 비인간적인 행태를 일삼는 자본가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말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마르크스'가 무조건 옳지만은 않다. 그의 '실험'은 끝내 현실에서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망했고, 자본주의로 돌아섰으니 '마르크스 이론'은 틀렸다고 볼 수도 있다. 허나 자본주의도 삐걱거리긴 매한가지다. 그때마다 자본주의를 고치려고 들여다보는 메뉴얼이 있으니, 바로 <자본론>이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 이론'은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자체가 사라지거나 '대체'될 다른 경제시스템이 요원한 상황에서 '자본주의'는 건실하다. 허나 자본주의 속에서 신음하는 노동자가 여전히 많다는 점에서 '마르크스 이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자본론>은 필독서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의 저자도 피난을 간 도서관에서 <자본론>을 읽으며 삶의 위안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심지어 자신이 고민하고 아파하는 까닭이 <자본론>에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고 말할 정도다. 그래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단다. 책하고는 담장을 쌓은 이는 엄두를 내지 못할 독서력이긴 하지만, 지금도 자본주의 속에서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이들이 있다면 '마르크스'를 만나보길 권한다. 정말 속이 시원해질 것이 틀림없다. 왜냐면 마르크스도 철저한 '을'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제목이 <을의 철학>인 까닭은 무엇일까? 갑의 철학은 없기 때문일까? 학력으로 보나, 금전으로 보나, 갑들이 철학이 없을 까닭이 없다. 허나 그들의 철학은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는 '그들만의 천국'을 만드는데 일조할 뿐이다. 허나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갑'보다 '을'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나 많은 '을'들이 있는데, 딱 하난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철학'이다.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도 좋은데, 소위 '개똥철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갖지 않은 '을'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수많은 '을'들이 어제도 힘들고, 오늘도 지치고, 내일도 피곤할 거라는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리라. 그러니 제발 '철학' 좀 하고 살길 바란다.

 

  저자는 철학을 알고 나니, '자기 자신을 좀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다니는 고통에서 벗어나 백수가 될지언정 '자유로운 영혼'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영업사원으로 취직해서 '재고물품을 대리점주에게 떠넘기라는 상사의 지시'와 '울며겨자 먹는 셈으로 재고물품을 떠맡은 대리점주의 자살 소식' 사이에서 고민에 빠졌을 때, 당신이라면 어땠을 것 같은가? '살아남기' 위해서 갑질 아닌 갑질을 하며 수많은 대리점주들을 울릴 참인가? 아니면 대리점주를 죽음으로 내모는 짓은 할 수 없다며 과감히 사표를 던질 것인가? 그도 아니면, 한낱 영업사원에게 '갑질'을 강요하는 '저질 대기업'을 쫄딱 망하게 만들 불매운동에 동참할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속세를 훌훌 털어버리고 저 세상으로 이항하거나 남은 생을 무한대로 인수분해하는 길로 들어설 것인가? 무엇은 '선택'하든, '을의 철학'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다보면 '경쟁'에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이겨야 살아남는 무한경쟁을 거듭하며 살아남고, 또 살아남는 <오징어게임>에 결국 참여하게 된다. 돈이라는 욕망에 사로잡혀서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 돈이 꼭 있어야 행복한 것인가? 물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금전'은 벌어야 할 것이다. 경제적 자립은 '어른의 필수덕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금전은 그닥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목숨을 걸고 한 판 승부를 벌이듯 '무한경쟁'에 뛰어들어 자기 삶을 고갈시키곤 한다. 과연 누굴 위해서 말인가? 정말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일까? 원치도 않는 직장생활을 견디며,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벼랑 끝으로 떠미는 일도 서슴지 않는 삶을 과연 '바람직한 경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는 '을'끼리 서로 싸우고 있다는 점이다. 절대 '갑'이 끼어들지 않는다. 갑은 그저 '판'을 만들어줄 뿐이다. 자신의 몫은 이미 떼어놓고서 '남은 몫'을 수많은 을들이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단 말이다. 이게 '자본주의'다. 왜 '을'끼리 싸워야만 하는 것인가? 왜 '갑'이 더 많이 가져가는 것에 분노하지 않는 '을'이 더 많은 것일까? 아이러니 할 뿐이다. 그렇다고 '갑'과 싸우라는 말은 아니다. 갑도 나름대로 '정당한 몫'을 가져갔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을'끼리 사이좋게 노나 먹으면 좋을 일을 굳이 왜 싸우냔 말이다. 만약, '을'이 사이좋게 노나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작게 남겨놓은 것이 문제라면, 그땐 '갑'과 한판 싸워야 마땅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을'끼리 싸울 까닭이 없다는 점이다. 사이좋게 노나 먹다가 부족한 듯 싶으면 합심해서 '갑'에게 따지면 그뿐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을의 철학'이란 이런 것이다.

 

  물론, 우리의 삶이 이처럼 간단하지도 않고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허나 '철학'과 함께라면 어떤 문제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을'끼리 치고 받으며 싸우는 어리석은 짓부터 멈추는 '철학'이 절실하고 말이다. 다음으로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철학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유치원 때 '착하게 사는 방법'을 모두 마스터 했다. 문제는 '실천'이다. 그런데 왜 착하게만 살 수는 없는 걸까?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다. 적어도 내 생각은 이렇다. 착하게 살면 '호구취급' 당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착각은 하지 말자. 착하게 산다고 순딩순딩하게 살라는 얘기가 아니다. '만렙'으로 살면서도 얼마든지 착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 위할 줄 알고, 약자를 배려하며, 불의를 보면 참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착하게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일을 겪는다. 그때마다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며 살아간다면 당신은 '슈퍼 을'로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 갑에게 호구가 되는 '을'이 아니라 갑 앞에서도 당당한 '슈퍼 을' 말이다. 필요한 것은 오직 '철학'뿐이다. 이럴 땐 이랬다가 저럴 땐 저랬다가 하는 '그때그때 다른 철학'이 아니라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한결같은 '철학' 말이다. 그러다가 목이 잘리면 어떻게 해요? 라고 고민하진 말자. 최강의 철학은 '모든 칼'을 다 막아내는 굳센 철학이 아니라 '애초'에 칼이 목으로 들어오지 않게 하는 '슬기로운 철학'이니 말이다. '을의 철학'도 마찬가지다. 내 삶은 무엇보다 소중하니 멋진 철학으로 우아하고 고상하게 한 번 살아보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철학도 소중하니까 응원할 겁니다. 세상 모든 을들이 철학쟁이가 되는 멋진 상상을 하면서.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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