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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고전에서 역사를 읽다

[도서] 오십, 고전에서 역사를 읽다

최봉수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지금도 여전하지만, 대한민국 고등학교 수학참고서의 대명사는 바로 <수학의 정석>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이 참고서에 '해답'이 없었다. 그저 문제를 풀고 또 풀다가 얼추 답이 나오면 공부 좀 한다는 친구와 서로 답을 맞춰보는 수밖에 없었고, 그래도 답이 안 나오면 선생님에게 질문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선생님에게 질문하다가 혼쭐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쓸데없는 질문 할 시간에 교과서나 더 풀어라!"라고 말이다. 하지만 학생들도 다 알았다. 선생님도 풀기 힘든 문제니 딴 데서 물어보라는 뜻이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방법을 찾은 것이 '수학학원'을 다니는 것이었다. 그나마 '사교육금지법'이 풀려서 가능한 방법이었지만, <수학의 정석>의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고전책'에 뜬금없이 왠 <수학의 정석> 이야기냐고 묻는다면 바로 답을 하겠다. '고전책'에 대한 해답이 없다는 사실을 아시냐?고 말이다. 그렇다. <수학의 정석>에 답지가 없듯 '고전책'에도 답지 따위는 없다. 그래서 '고전책'을 읽으면 스스로 답을 찾아야만 한다. 그런데 '고전책'이 쉽사리 답을 찾을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책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래서 '수학학원'을 찾아가서 풀이와 답을 얻는 것처럼 '고전책'에 대한 명강의를, 명해설을, 모범답안을 얻는 수고를 들여야 비로소 <고전>에 담긴 뜻을 얼추 이해할 수 있고, 드디어 '고전의 맛'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수많은 명사들이 일찍부터 <고전>을 풀이하고 나름의 해석을 곁들인 책들이 참으로 많다. 개중에는 비슷비슷한 내용의 책들도 있지만, 정말 색다른 해석으로 혜안을 일깨워주는 책들도 있어 '익숙한 <고전>'을 낯설게 만들어 다시금 '<고전>을 읽는 맛'을 되찾게 해주는 고마운 책들도 있다. 이 책 <오십, 고전에서 역사를 읽다>가 그런 책 가운데 하나다.

 

  내게는 <그리스 비극>이 그랬다.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 그리고 에우리피데스라는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의 대표작들을 일찍이 접하긴 했지만, 희극보다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정화)'가 강렬하기 때문에 당대는 물론, 오늘날의 독자와 관객 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고 평하곤 하는데, 그게 이해할 수 없는 '벽'처럼 다가올 뿐이었다. 그리스 비극은 오늘날로 치면 '막장 드라마'에 견줄 수 있다. 숙명이니, 운명이니, 그럴 듯한 변명을 갖다붙이긴 했지만, 친족살해에, 근친상간에, 온갖 불륜과 악행을 일삼고서도 그럴 듯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는 핑계만 찾는...도통 이해할 수 없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해설을 읽으니, 그럴 듯 했다. '그리스 비극'이 대유행을 하던 시기가 '아테네의 전성기'와 딱 맞물리며, '아테네의 민주정'이 타락함에 따라 부패한 권력자가 아테네 시민들의 관심을 정치가 아닌 다른 곳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당대의 그리스가 처한 현실'보다 '더욱 참혹한 비극'을 선보이며, 그리스 시민들로 하여금, "그래, 저런 비극(슬픔)을 겪고도 살아야하는 끔찍한 주인공들의 삶보다 내가 사는 현실이 덜 불행한 것 같다"며 당면한 슬픈 현실을 망각하고 왜곡하며, 심지어 착각속에 빠져 살게 만드는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는 해석이 솔깃했다. 대한민국 막장드라마 편성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정규뉴스시간 바로 직전'이라는 점을 눈여겨 보자. 온국민이 TV 앞에 앉아서 '출생의 비밀'을 품은 '불륜의 난장'들을 보며 드라마속 악역을 맡은 배우에게 욕설(배설)을 질펀하게 하고 난 뒤에 '정규뉴스'에서 보여지는 독재자에 의한, 독재자를 위한 왜곡된 사실을 시청하면서 위안을 삼게 만드는 행태가 <그리스 비극>에 담겨진 비밀과 서로 상통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고전>을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진다. 시대와 세대가 흘러가고 바뀜에 따라 그 '느낌'은 더욱 생생해지고, 여기에 날카로워진 '비평적 사고'와 전에는 보이지도 않았던 것들이 보이는 '혜안'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고전>의 필독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지만, 정작 <고전>은 먼저 읽고 통달한 선배나 스승 없이 읽기에 만만한 책이 아니다. 그래서 이 책과 같은 '참고서'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때로는 '교과서'는 읽지 않고 '참고서'나 '문제집'으로만 공부를 시작하기도 하는 것처럼 <고전>을 먼저 읽기보다는 고전에 대한 풍부한 해설이 담긴 '고전책'을 먼저 읽고 난 뒤에 <고전> 읽기에 도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기도 하다. 이 책에는 크게 '서양고전'과 '동양고전'으로 나뉘어 있으며, '서양고전'에는 <그리스로마 신화>,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그리스 3대비극>, <역사>, <변신이야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있으며, '동양고전'에는 <사기>,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 <삼국사기>, <일본서기>가 수록되어 있다.

 

  어느 것 하나 쉽고 가볍고 만만한 책이 없지만, 적절한 해설과 답안이 적혀 있는 '고전책'을 읽고 난 뒤에 <고전>을 접하면 분명 '고전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 맘대로 읽기'다. 이 책의 저자도 <고전>을 제멋대로 해석하였다. 엉뚱하고 쌩뚱맞게 엉터리로 해석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저자가 '고전'을 이해한 나름의 방식으로 <고전>을 풀이하고 나름의 해답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독자'도 마찬가지로 '독자 맘대로 읽기'를 실천해야 <고전>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는 법이다. 다시 말해, 저자의 해석은 '참고'만 할 뿐, 독자들도 저마다 '줏대'를 가지고 읽어야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시도할 수 없는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청출어람'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잘 안다. 가르친 이의 재주를 고대로 베끼는 재능도 분명 뛰어나긴 하지만 우리가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는 재능은 '뛰어넘는 무엇'에서 발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원곡가수'를 고대로 베낀 '모창가수'에 재주가 비상하다고 감탄하긴 하지만, 오리지날에 버금가는 환호는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원곡가수의 재능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수'의 등장은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박수갈채를 아낌없이 내어줄 것이다. 이처럼 '고전책'을 쓴 저자도 자신의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그러한 것을 바라 마지 않을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에 대한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수많은 선배들이 '고전읽기'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쓰고 또 쓰면서 '고전읽기'에 도전하고, '고전의 맛'을 더 간편하고, 더 맛깔나게 읽을 수 있도록 무진장 애를 쓰며 집필한다. 이처럼 수많은 선배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십분의 일만 눈치 채도 '고전읽기'를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십분의 일'이라도 이해하고 눈치챈 독자들이 많지 않다는 것도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책만 읽어도 '읽고 싶어지는 <고전>'이 엄청날 텐데 말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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