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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3분 철학 2

[도서] 만화로 보는 3분 철학 2

김재훈,서정욱 공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철학은 왜 배워야 할까? 솔직히 철학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기왕 하는 공부라면 어려운 학문에 도전하는 것이 폼 나니까 '철학공부'를 한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것이 철학을 배우는 '찐 목적'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럴 듯한 이유는 뭘까? 그건 아마도 '삶의 목적'을 고뇌하는 학문이 철학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학문이 다 그렇지만, 철학은 '목적, 그 잡채'에 초점을 맞추는 학문이기에 참으로 매력적인 학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왜 사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철학'에서 찾아야 하는 법이다. 이는 다른 학문에서는 좀처럼 답할 수 없고, 애써 그럴 듯한 답을 하더라도 결국엔 '철학적인 답변'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에 대해 궁금해진다면 다들 '철학책'을 뒤적거리곤 하는 법이다.

 

  한편, 철학을 쫌 배웠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는 '대통령'이 그랬으면 싶다. 과연 '그'도 정치철학이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에서 탈피를 하겠다며 청와대를 떠난 대통령이 '더욱더 제멋대로 행동'하며 폭군으로 전락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질 않나. 긴 연설을 할 자신이 없어서 말을 줄이는 것은 좋은데 '내용'까지 빈약해서 들어줄 말이 없는 것이 문제고, 짤막한 회견을 할 때조차 어김없이 '말실수(?)'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평상시에는 얼마나 품위 없는 언행을 하는 것인지 가이 짐작조차 하지 못할 지경으로..한마디로 엉망진창이다. 결국엔 '공개적인 자리'에서 불쑥 튀어나온 욕설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고야 말았다. 국제적 망신은 둘째치고 '해명'하기에 급급한 모습에 뒷수습조차 휘뚜루마뚜루 해버리고서 '논란'을 더 키우더니 끝내는 '언론통제'까지 자행 하고야 말았다. 도대체 뭔 생각을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희생자를 희생자라 말하지 못하게 하고, 참사 수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검은 리본 뒤집기'에나 신경을 쓰는 등...'우선 순위'도 없고, '일관성'도 없고..'철학'은 더더군다나 없어 보인다. 좋든 나쁘든 뭔가 '보여주는 것'이 있어야 제대로 비판이라도 할 것 아닌가. 이건 뭐 하나를 해도 '갈지 자'를 그리니 비판도 아까워 '비난'만 늘어놓게 만든다. 비단 '대통령'만의 문제는 아니고 말이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이 총체적 난국에 빠진 듯해 안타까운 심정일 뿐이다.

 

  이렇듯 철학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그렇다면 철학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질문을 바꿔서, '철학공부를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로 다시 묻고 싶다. 어렵고 복잡한 철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 시중에 많지만, 그런 책들조차 '난해'하기는 매한가지인 까닭에 드리는 질문이다. 이런 궁금증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이 더욱 눈에 띄었다. <만화로 보는 3분 철학> 말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만화형식'이라면 더욱 쉽고 한 눈에 이해하기 쉬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만화형식'이 마냥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어려운 내용을 '한 컷'의 그림과 말풍선으로 단박에 이해시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화가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복잡한 철학의 내용을 뭉뚱그리면서도 한 눈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노련한 실력을 갖추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만화'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3분 철학'이라는 제목도 쓰여 있다. 위대한 철학자의 사상을 꼴랑 '3분'만에 이해시킬 수 있을 정도라니, 얼마나 대단한 책일까 하는 '기대감'이 책을 보자마자 샘 솟았다.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까?

 

  놀랍게도 결과는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비록 3분만에 완성하지는 못할 망정이라도 말이다. 왜 그런 경우 있잖은가? 컵라면은 '제대로' 익히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는 경험 말이다. 심지어 뜨거운 물을 붓자마자 뚜껑을 열어재끼고 젓가락을 들이밀면서 채 익지도 않은 면발을 갉아먹고 식지도 않은 뜨거운 국물을 입김을 호호 불며 들이키는 경우 말이다. 그렇게 먹어도 참 맛있지 않던가? 이 책이 그랬다. 비록 '철학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철학의 정수'를 맛보지는 못할지라도, '철학의 맛'만은 제대로 느낄 수 있었고 '철학하는 즐거움' 또한 든든하게 채울 수 있었단 말이다. 심지어 이 책은 1권도 아니고 2권이다. 아직 1권을 읽지 않은 상황에서 2권의 내용을 접했는데도 '철학의 재미'를 맛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철학적 호기심'은 부쩍 달아올랐다. 그래서 1권을 채 읽기도 전에 2권의 '리뷰'부터 쓰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빠른 시일 안에 1권 리뷰도 올릴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은 서양의 '중세철학'과 '근대철학'을 다루고 있다. 아시다시피, 중세철학의 정수는 '신학'이고, 근대철학의 진수는 '이성'이다. 이런 단편적인 개념만 알고 있어도 웬만한 철학적 지식을 나불거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부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철학'이 중세철학의 핵심이고, 근대철학은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만 알고 있어도 대강의 '철학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고대의 철학자들은 '자연철학'을 했더랬다. 익히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거물급 철학자들의 사상은 '자연'에서 보이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철학적 사유'를 하면서 '통찰적 썰'을 풀어내었더랬다.(아마도 이것이 1권의 핵심내용일 것이다) 그러다 중세로 넘어오면서 '철학사상'은 암흑시대를 맞았다고들 떠든다. 그건 자유롭고 방대했던 '자연철학의 사유대상'들이 오직 하나인 '신앙'으로 대폭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중세철학'은 신앙을 '이성(철학)'으로 설명하려 애쓰던 노력의 결실이다. 그러던 것이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플라톤 철학'을 통한 '교부철학'으로 정립되었고, 아퀴나스 덕분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의한 '스콜라 철학'이 새롭게 떠올랐다. 그러다 '르네상스'를 맞아 근대 사람들은 '인본주의적'인 이성에 다시 집중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근대철학'은 이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열띤 논쟁을 벌이며 '철학적 사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먼저 '데카르트'에 의해 더는 의심할 수 없는 '생각하는 존재'를 떠올리며 이성에 대해 논하게 되었다. 이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로 더 유명하게 만들었고, 철학은 '신학'에서 벗어나 더욱 자유로운 사상으로 '확장'되었다. 물론, 근대의 철학자들이 '신앙심'을 버린 것이 아니다. 서양은 '신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대철학자들은 '무신론자'가 되는 걸 꺼렸다. 더 정확히는 무신론자로 '낙인' 찍히는 걸 두려워했던 것일테고 말이다. 그래서 근대 서양인은 '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신'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중세철학자들이 '신의 존재'를 이성적(철학적)으로 증명하길 즐겼다면, 근대철학자들은 굳이 '신의 존재'까지 증명하는 것을 떠나 보다 더욱 '이성(생각)'에 집중하는 철학적 사유를 즐겼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런 '이성(생각)' 중심의 합리적 도출이 심화될 즈음에 '경험' 중심의 경험적 지식 습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자들이 등장했다. 바로 로크와 흄 등 '경험론'의 철학자들이다. 이들은 이성과 사유만으로 '실재 존재하지 않는 것'까지 이해할 수는 없다면서 '경험'을 통한 지식 습득만이 보다 완전한 '실존'을 이해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데카르트, 스피노자 등의 '합리론'과 로크, 흄 등의 '경험론'은 서로간의 논쟁을 통해 더욱 세련되게 다듬어지게 되었으며, 이후의 철학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던져주는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집대성한 위대한 철학자가 바로 '임마누엘 칸트'다. 그는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을 통해서 근대철학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업적을 남겼다. 이후 '헤겔'에 의해 서양의 철학은 '변증법'을 통해 '정-반-합'이라는 끊임없는 성찰을 하면서 밝게 빛나는 지성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후의 '현대철학'은 더욱 세심하고 정교한 철학적 사유를 하게 될 것이다. 그 내용은 <이 책의 3권>에서 다루게 될 것이고 말이다. 역시, 리뷰 올리겠다.

 

  어느날 문득, 내 손에 들려진 책속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찾는 일은 유익함을 넘어 '기쁜, 그 잡채'가 되곤 한다. 이 책도 그렇다. 모쪼록 더 좋은 책이 많이많이 출간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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