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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인명사전

[도서] 로베르 인명사전

아멜리 노통 저/김남주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아멜리 노통의 책이 늘상 그렇듯...이 책 또한 그러하다. 벨기에 사람인 노통은 데뷰작(살인자의 건강법)부터 과감히 프랑스 문학을 비꼬기 시작한다. ...남들은 대부분 이런식으로 아멜리 노통을 평하기 시작하는데..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프랑스 문학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더더구나 프랑스 문단에 대해선 깡통이다. 그러니 아멜리가 소설 속에서 뭐라뭐라 표현한 부분이 문학계의 지성인들을 비꼰다고 하여도 알 재간이 없다. 내 나름대로의 노통표 소설의 맛은 <쾌활>이다. 유쾌, 상쾌, 통쾌로 이어지는 삼(3)쾌한 이야기와 활달, 활발한 그녀의 문체는 읽는 이로 하여금 사악한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ㅡ-)씨익 <오후 네시>, <살인자의 건강법>, <적의 화장법>을 보라. 주인공들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두려움과 떨림>, <사랑의 파괴>를 보라. 능청스럽게 자신의 자서전을 팔어먹는다. <시간의 옷>에서 보여준 황당함은 또 어떤가... <로베르 인명사전>은 시작부터 피범벅이다. 임신으로 시작하여 출산, 살인, 자살로 성큼성큼 달려가는 그녀의 이야기는 클라이막스를 지나 작가 자신을 죽여버리는 결말로 치닫는다. 그러나 오히려 왜 죽으려 했는지 의문이 남는 결말이다. 왜? 우여곡절 끝에 행복을 찾으려는 주인공에게 딴지를 걸어 작가 자신을 죽여야 하는가? 자신의 작품에서 해피엔딩이 나오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다는 작가적 고집인가? 아님 작품의 일관성을 위해 누군가 죽어야만 했는데 차마 행복을 찾은 주인공을 죽이지 못하고 대신 죽은 것인가? 왠지 노통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억지로 죽고 싶어하는 느낌마저 든다. 아니면 한 번쯤 자신이 만든 주인공에게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생각이 들리 없는 이야기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런 노통에겐 너무도 당연한 그런 이야기가 쓰여져 있다. 결말은 그렇다치고... 아름다운 플렉트뤼드에게 주어진 운명이란 무엇인가? 예언하듯 자식의 운명을 정해주고 자살을 한 친엄마 뤼세트. 자신의 조카 겸 딸을 못다한 꿈의 대용품으로 전락시킨 이모 혹은 양엄마 클레망스. 그리고 슬그머니 자신의 소설 속으로 침입한 아멜리 노통. 이 네 명의 여자가 이끌어 가는 이야기는 숨막히도록 섬뜩하다. 그리고 똑같은 꿈을 꾼다. 행복이라는 꿈을... 뤼세트의 행복은 자신의 딸이 <플렉트뤼드>로 살아가는 것이다. 클레망스의 행복은 플렉트뤼드가 발레로 성공하는 것이다. 플렉트뤼드의 행복은 클레망스가 자신을 기쁨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불운한 사고로 플렉트뤼드는 클레망스의 기쁨을 망쳤다. 클레망스는 플렉트뤼드를 미워한다. 그리고 자신의 딸로서 남겨놓지도 않았다. 플렉트뤼드는 클레망스 대신 뤼세트의 행복을 쫓는다. 그런데 뤼세트는 열 아홉에 자신을 낳고 자살했다. 플렉트뤼드도 그러리라 다짐한다. 그럼 아멜리 노통의 행복은 무엇인가? 노통은 플렉트뤼드를 죽이려 했다. 노통은 자신의 작품에서 주인공이 행복을 찾는 끔찍하고 시원찮은 이야기가 되는 걸 못 견뎠다. 마치 뤼세트가 변변찮은 파비앙의 소박한 행복을 거절했던 것처럼... 아멜리 노통은 탕기라든지 조엘같은 평범한 소설을 증오했다. 아니 자신의 작품은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플렉트뤼드 같은 특별함을 지녀야 했다. 노통은 스스로 거부한 것이다. 평범한 작품..뻔한 결말에 자신의 이름이 실리기를... 그래서 차마 자신의 딸(소설)을 죽이기보다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노통의 마니악적인 매력에 이끌린 <노통표> 꼬리표가 붙은 이미 그저 그런 평론가가 되버렸는지도 모른다. 어쩌겠는가...아멜리 노통에겐 그 어떤 수식어도 전부 노통스러울 뿐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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