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의 작품으로는 세번째로 접하는 책이다. 만근인지 반근인지로 시작하는 책이 첫번째요. 뭣을 했는데 번쩍했고, 그 순간이 황홀했다는 책이 두번째다. 첫번째 책을 읽을 때는 "인물과 사물을 비범한 시선으로 보는구나" 하고 느꼈고, 두번째 책을 읽을 때는 "이사람 항상 이런식이야?"라고 느꼈다.
세번째로 읽은 <순정>. 도둑놈의 이야기다. 도둑이면 도둑이지 도둑놈은 무슨 소리냐 물으신다면 읽어보시면 아실게다.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을 기대하신다면 이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성석제가 쓴 작품이 아닐것이다.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선비가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니, 마당쇠는 네모를 그렸고.
선비가 손가락 세 개를 펴니, 마당쇠는 다섯 개를 폈고.
선비가 수염을 쓰다듬으니, 마당쇠는 배를 두드려서
선비는 마당쇠에게 탄복하고, 마당쇠는 선비가 별걸 다묻는다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주인공인 이치도는 마당쇠가 되고, 책읽는 독자는 선비가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