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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도서] 춘향전

송성욱 편역/백범영 그림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우리 나라 고전문학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두 말 않고 <춘향전>을 꼽을 테다. '만남'과 '이별'을 그린 사랑이야기에 '유혹'이란 위기가 찾아오고, 결국엔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짓는 '사랑공식'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200년 전부터 널리 읽히던 유명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본(異本)만 70~80여종에 달하고, 하나같이 즐겨 읽혀 현재 수많은 판본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판소리 열두 마당'에도 그 내용이 오롯이 전하여 내려오기에 우리 나라 사람치고 <춘향전>의 내용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사랑받는 작품이다. 그래서 "서양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다면, 우리 나라에는 <춘향전>이 있다." 고 자랑스레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렇게 <춘향전>이 사랑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구성이 단순하면서 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춘향과 몽룡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게 되는 과정까지가 '전반전'이라면, 변학도가 등장해서 이 둘의 사랑을 흔들려하고, 변치 않는 두 사람의 마음을 확인하며 마무리하는 것까지를 '후반전'으로 보는 것으로 이야기의 큰 줄거리는 완성된다. 거기에다가 '전반전'엔 활활 불타오르는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야기로 큰 갈등 없이 점점 분위기만 고조시키다가 '이별'하는 장면에서 독자들을 안타깝게 만든다.

 

  축구에 빗대어보자면, '전반전'엔 서로 상대방의 실력을 가늠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 뛰지 않고 <탐색전>만 한 셈이다. 그러나 그 <탐색전>이 나름 흥미진진하고 기량 높은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를 보듯 춘향과 몽룡이 벌이는 '농염한 사랑놀이'에 독자들은 후끈 달아오름을 느낄 것이다. 그렇게 달아오른 독자에게 '이별'을 통고하며 '후반전'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축구처럼 규칙이 단순하면서 명확한 경기도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축구는 재밌지 않은가.

 

  어쨌든, 한 박자 쉬는 '하프타임'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대측에 '다크호스'인 변학도가 등장하여 우리측 주전 선수 가운데 한 사람인 '춘향'이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변학도의 '수청들기'라는 파상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춘향이를 보는 관중(독자)들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도저히 막아낼 수 없을 것 같은 변학도의 '캐논슛'을 온몸으로 육탄방어하기를 여러 차례. 이제는 또 한 사람인 우리측의 스트라이커 몽룡만을 기다린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몽룡은 잠시 부상(과거시험 공부중) 때문에 라인(전라도 남원) 바깥쪽(서울)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관중들은 몽룡의 화려한 귀환을 꿈꾸며 기다리지만 부상에서 좀처럼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더욱 안타깝다.

 

  그러다 몽룡이 다시 귀환하였다. 관중들은 상대측인 변학도가 파상공세를 하매 여전히 육탄방어로 막아낼 뿐인 춘향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서 귀환한 몽룡이 한바탕 솜씨를 발휘해주길 바라지만, 몽룡은 아직 기회만 노릴 뿐, 부상투혼중인 춘향에게 별 도움이 되질 않아보인다. 그래도 관중들은 몽룡을 믿는다. 그가 지닌 실력이 대단한 것임을, 변학도가 감당해낼 수 없는 '한 방(암행어사 출도야!)'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관중들은 몽룡의 그 한 방만을 기다리며 가엾은 춘향의 마지막 몸부림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열심히 응원을 한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한 방'이 기어코 터지고 승리는 우리측으로 넘어오게 된다. 환호하는 관중들.

 

 

  일단 '축구'에 빗대어 <춘향전>을 이야기해보았으나, 아시다시피 몽룡이 암행어사 출도야!를 외친 다음에 이야기가 바로 끝나지 않는다. 몽룡은 춘향이를 구해놓고서도 춘향에게 다시 한 번 '확인'하듯이 마음을 떠본다. <춘향전>을 '여인의 정절(貞節) 이야기'로 이해하게끔 만드는 대목이다.

 

  단지 '정조관념'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춘향이 '정절'을 끝끝내 지켜냈기에 임금의 귀에까지 전해지게 되었고, 마침내 '기생의 딸'이 사대부 도령과 정식 혼인을 할 수도 있고, 몽룡은 입신양명을 이루며 춘향과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으며, 그 둘의 아들과 딸은 아무런 제약없이 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잘 살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춘향이 '정절'을 지켜냈기 때문에 '신분 상승'까지 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몽룡과 춘향이 열열히 사랑하는 것으로만 이야기가 끝났다면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로 완성되지 못하고, 그저 시대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꿈만 같은 이야기'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양반'과 '기생'이 정식혼인을 할 수도 없었으며, 혹여 그 둘 사이에 자식이 태어난다 하더라도 제 능력을 마음껏 뽐낼 수 없는 사람으로 태어날 뿐이다. <홍길동전>에서도 잘 나타나는 '신분의 벽'이고, 춘향의 아버지가 양반이나 어머니 월매가 기생이기에 결국 '기생의 딸은 기생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 변학도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춘향은 당당히 외친다. 이 나라의 국법이기도 한 '정절'을 양반들만 지키라는 법이 어디있느냐며, 비록 천한 신분이기는 하나 양반네들 못지 않는 '정절'을 지키고 싶고, 지켜야 사람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 주장한 셈이다. 이는 춘향의 입을 통해 당시 서민들이 외치고 싶었던 '바람'일 것이다. 천하다고 '사람취급'조차 하지 않던 양반네들에게 저희들도 보란듯이 '사람구실'을 제대로 하여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일종의 <선언>으로 읽힐 수도 있다.

 

  양란을 치르고도 제정신을 못차리고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이끄는 양반네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는 <민중의 저항>을 춘향이 지켜낸 정절 속에서 찾아낼 수 있다. 또 천한 신분이라도 유교의 가르침을 지켜서 보란듯이 '사람구실'하는 양반이 되고자하는 <민중의 바람>을 엿볼 수도 있다. 결국 춘향은 성공적으로 저항을 해내고, 양반으로 신분상승도 이루어냈다. 이것이 또한 <춘향전>을 즐겨보는 까닭이 되었음에 분명할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춘향의 '행복한 결말'이 제 스스로 이루어낸 결과가 아니라 몽룡의 도움을 받고서 얻어낸 결과라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신분 질서'가 무너지는 혼란 속에서도 민중들 스스로 세상을 바꿀 여력이 없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춘향전>이 단순히 이팔청춘 젊은 남녀가 벌이는 순수한 사랑이야기였다면 이토록 오래도록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단순한 줄거리 속에서 만끽할 수 있는 '밀고 당기기'가 펼쳐지기 때문이고, 또 춘향이 지켜낸 정절이야기를 통해 그 당시 조선 민중들의 저항과 바람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소극적인 저항이지만, 그런 소극적인 저항을 풍자와 해학으로 살려낸 우리네 구성진 입담이 또한 재미난 까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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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eunbi

    민음사 춘향젼 읽어셨군요... 그 시대의 보편적인 사랑인지는 잘 몰라도... 그 나이에 농익은 사랑타령은 참 야시시... 청춘이 부럽습니다...^^

    2011.12.13 09:30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異之我...또 다른 나

      너무 많아서 고르기 힘들었죠. 그래서 '현대어'로 풀어쓴 책을 골라보았어요. 그러면서도 '입말'이 잘 산 책을 골라보았죠. 대형주류 출판사를 선호하는 편은 그닥 아닙니다만...고르다보니 그래 되었네요^-^;;
      열여섯이란 나이가 정신적으로 완성될 나이는 아니어도 육체적으론 더할나위없이 완전한 나이니까...그리 생각하니 어색하지는 않더군요. 또 그 나이에 암행어사직을 수행할 정도로, 또 유혹과 억압에 맞서 정절을 지켜낼 정도로 정신적으로 성숙했으니 어떤 면에서 요즘 열여섯보다 더 '어른'스러운 것도 사실이더군요^-^

      2011.12.13 11:02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