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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우영 화백(그에겐 만화가라는 호칭보다 화백이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에겐 그만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느껴진다. 그의 작품인 <십팔사략>, <초한지>, <삼국지>를 이미 읽은 뒤였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에게선 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창조력보다는 기존의 이야기, 특히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고,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를 더욱 감칠나게 하는 데에 독보적인 경지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그의 책들이 진부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끈적끈적한 음담패설을 즐기며, 때론 팔도사투리로, 때론 제2, 제3의 외국어를 구사하며 언어유희를 옴팡지게 즐긴다. 이렇듯 뻔히 알고 있는 내용에 살 붙이고, 같은 양념에 맛깔나는 소스까지 뿌려대어 더욱 재미나게 읽게 만든다. 이것이 고우영 화백의 장점이다.

 그렇다면 단점은 없느냐? 있다. 어떤 것이냐 하면 바로 이런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대부분 정사(正史)보다는 야사(野史)에 가깝다. 아니 야사(野史)보다는 야사(夜史)에 가깝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에 딱 어울리는 이야기꾼이다. 그래서 정사에 조금이라도 정통한 이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화딱지가 난다.

  "아니 버젓이 정사(正史)가 있는데 정사(情史)로 다루다니, 이딴 흉물스럽고 저질스러운 이야기를 어떻게 아이들에게 읽히겠는가."

 혹은

 
"그의 이야기는 너무 읽기 힘들다. 생 욕지거리에 사투리, 외국어를 남발하는 통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한마디로 너무 어렵다."

 라는 볼멘소리도 적잖이 나온다. 그러나 이 점은 장점이랄 수도, 단점이랄 수도 없는 그 만의 독창성이다. 그 독창성이 물씬 베어있는 책이 바로 <오백년>이다.

 조선왕조실록 500년의 역사를 모두 담지 못해 아쉽지만(1991년에 연재되었던 만큼 정치적, 출판적, 신문사적 제약이 있었으리라) 그의 필치로 새롭게 구성된 조선왕조의 야사가 재정립되었다. 야사의 재정립이라는 말자체가 우습기 짝이 없지만, 고우영 화백에게는 그것 자체마저 중요하게 다뤄졌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가 '이징옥'과 '이시애'를 다룬 부분을 보면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이런 분이 작년(2005년)에 별세하셨다니, 이 땅에 큰 별 하나가 떨어진 듯 하다. 내 나이 삼십대 중반에 들어서야 고우영 화백의 작품의 참맛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이제 더이상 그 분의 새 작품을 볼 수 없다하니 어찌 안타깝다하지 않으리오. 그래도 그 분과 동시대에 살았기에 조금이나마 그 분의 작품과 함께 숨 쉴 수 있었기에 행복할 따름이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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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