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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일 교수, 시(詩)에게 과학을 묻다

[도서] 진정일 교수, 시(詩)에게 과학을 묻다

진정일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시 속에서 과학적 지식을 탐구한다는 사뭇 이질적인 학문을 다룬 책처럼 여겨질지 모르겠다. 과학자가 낭만을 읊조리고, 시인이 실험실 겉옷을 입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학문의 경계가 사라지고 모호해지는 요즘이고, 또 통합적 사고력이니 융합적 사고력이니 한창 떠들어대는 때이니만큼 이런 책 한 권 읽으며 남다른 생각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뭐랄까...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교수님이 인용하며 읊은 시의 내용이 그닥 감동적이지 않았고, 그 속에서 꺼낸 과학적 지식이라는 것이 적어도 내겐 너무나도 교과서적 상식에 머물고 있었다.

 

  그 까닭이 무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가 너무 '사실적인 것'만 쫓아다녀 너무나 '현실적'인 것을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현실적인 것에서 벗어나면 '거짓부렁'이라면서 외면하곤 하는 풍토를 한탄하던 은사님이 계셨던 것이 떠올랐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우리 나라는 너무 교훈적이야. 조금 재미를 추구해도 좋고, 환상적이거나 허무맹랑하더라도 그 자체로 즐거우면 좋을 것을...먹고 사는데에 급급하다보니 그런 여유를 몽땅 잃어버리고 말았어."라고 하시면서 교훈만 차고 넘치는 글만 쓰는 것을 경계하라고 하셨던 것이 떠올랐다. 아닌 게 아니라, 왜 우리라고 영국과 같은 옛이야기가 없었겠는가? 그런데 영국에서는 <해리포터>가 나와 전세계에 대박을 냈지만,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전무한 실정이다. 물론 그 까닭이 한 가지일리 만무하겠지만, 이를 테면 그렇단 말이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바로 그러한 점이다. 교수님께서 읊으신 시가 배우미 시절에 한 번쯤 읽어봤음직한 시들을 다수 실어놓았으며, 또한 설명하신 과학적 상식이란 것도 역시 학창시절에 배웠음직한 내용들이라서 그닥 새롭지가 않아서 나름 실망을 했더랬다. 허나 이는 달리 말하면, 그만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는 말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참으로 재밌고 유익한 책일 수도 있을 것이니 이 책이 허섭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겠다. 이 책이 내게 기대 이하인 것은 그만큼 내 안목과 지식이 이 책의 경계를 넘어선다는 말이기도 하다. 쩝...잘난 척 좀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책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비록 내 기대에 못미치는 수준이어서 아쉽기는 하나,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책이 많아진다 함은 '전문가'의 경계와 '교양인'의 경계를 허무는 역할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지식인'과 '일반대중'의 경계를 허문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아는 것이 많다고 잘난 척하던 시절은 갔다. 요즘엔 컴퓨터에 버금가는 '스마트폰'을 휴대하며 언제 어디서든 수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되었기에 뭘 좀 알고, 모르고는 그닥 중요한 기준이 되지 않았다. 뭘 좀 모르더라도 '검색 기술'만 터득하면 누구나 다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지식'을 암기하는 수준에서는 잘난 척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게 된 세상이란 말이다.

 

  이를 테면, 대학교수 출신이면서 석사, 박사 학위를 잔뜩 지닌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라고 할지라도 '검색의 달인' 앞에서는 그닥 내세울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검색의 달인'이 더 정확하고 최신 정보를 찾아낼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젠 달달 암기 잘 하는 학문이 아니라 '정보'를 잘 찾고 잘 다루며, 적절한 곳에 써먹을 수 있는 이가 대접받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하기에 <학문의 경계>를 부술 수 있는 통합적, 융합적 사고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그런 사고력을 키우기 딱 좋은 책은 바로 이런 책일 것이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참으로 유용하고, 시의적절한 책일 것이 틀림없다. 허나 많이 늦었다. 일본에서는 '다치바나 다카시'라고 하는 저술가가 있어, 이런 책을 이미 수두룩하게 쏟아내었기 때문이다. 다카시가 지적한 것이 바로 <문과와 이과의 경계를 허물어라>였다. 그의 책,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에서는 '이과생은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모르고, 문과생은 열역학 제2법칙을 몰라서 헤맨다'고 지적하였다. 한마디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동적인 장면을 보면 눈시울을 붉히며 울 줄도 알아야 하는데, 이과생들은 도무지 '문학책'을 읽으려 들지 않으니 바보가 될 수밖에 없고, 또 문과생들은 몽땅 '기계치'가 되어서 형광등도 스스로 갈아끼우지 못하는 것은 물론,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간단한 자연현상을 알면서도 열 또한 마찬가지로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열이동을 한다는 사실조차 이해하려 들지 않아서 바보가 되어 간다고 지적하였다. 이 책이 나온 뒤에 우리 나라에서도 <서울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패러디를 낳았다고 하니 결코 남 일이 아닌 셈이다.

 

  혹시 여러분이 딱 그런가? 스스로 제 한계를 설정하고서 다른 학문에 기웃거리기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되는 것은 아닌가? 찔린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내 전문분야가 아니라면 누구나 모르기 마련이고, 그런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어느 학문이든 '기초'는 참 쉬운 법이니 간단한 '기초'를 배운다는 느낌으로 서로 쌩뚱맞은 학문을 접해보시길. 그러면 아주 색다른 창조물이 나올 수도 있는 법이다. 생각만으로도 재밌지 않은가? 아무쪼록 이 책이 그런 창조물을 만들어내는 계기를 주는 책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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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eunbi

    시와 과학... 감이 올듯말듯하여 역시 미리보기를 찾아봤습니다. 대략 뭔지 알겠습니다... 제게있어 시는 그냥 시일뿐 분석의 대상도 과학도 아닌지라... ㅎㅎ~ 그렇습니다. 잘계시죠? ^^

    2012.09.04 22:34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異之我...또 다른 나

      요즘 뒤숭숭하니 몸도 바쁘고 마음은 더 바쁘네요.

      2012.09.08 07:16

PRID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