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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노트

[도서] 오키나와 노트

오에 겐자부로 저/이애숙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오키나와의 슬픔은 오래 되었다. 조선시대만에도 당당히 독립국으로 주변국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던 '류큐왕국'이 바로 현재 일본에 편입된 오키나와 현이다. 우리 고소설인 <홍길동전> 속 이상국가였던 '율도국(유구국)'과 이름이 비슷하여 홍길동이 다스리던 나라로 비춰진 적도 있던 터라 역사공부를 하면서 관심을 가진 적이 있기에 나에겐 그리 낯설지가 않은 터였다.

 

  그러면 언제 '류큐왕국'은 일본에 편입 되었을까? 일본이 이른바 '막부 국가'에서 '천황제 국가'로 탈바꿈한 명치유신(일본명: 메이지이신)을 단행하며 일방적으로 침략하여 일본 본토에 편입한 1879년부터다. 그때부터 지금껏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을 외쳤으나 번번히 무시당할 뿐이었다. 그러다 태평양 전쟁이 마무리되던 때에는 일본 본토로 진격하는 미국을 막기 위해 전초기지로 이용되었고, 역부족이자 '본토 진공'을 조금이나마 늦추려는 방패막이로 전락하였다.

 

  아픔은 그것으로 다하지 않았다. 방패막이로도 소용이 없어지자,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집단자결'을 강요당했다. 그 가운데 유명한 것이 미국쪽 종군기자에게 찍힌 벼랑에서 떨어지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모습이었다. 이를 두고 미국쪽에선 '납득할 수 없는 죽음'이라고 묘사하였고, 일본쪽에선 '목숨을 바쳐 조국에 충성하는 일본인의 결연한 의지'라며 죽음으로 본토를 사수하자는 '선전용 도구'로 전락시켜버린 셈이다. 그렇다면 전쟁 당시에 오키나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결'을 한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패배에 처한 본토군인들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려 어쩔 수 없이 죽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집단자결'을 한 것이 아니라 '집단사', 또는 '집단학살'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도 전후 일본은 오키나와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은 채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말이다.

 

  전쟁이 막바지에 들어서자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 공격'의 전진기지가 되었고, 당시 최강의 폭격기였던 'B-29'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뜨고 내리는 곳으로 바뀌었다. 또 전쟁이 끝난 뒤에도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 전역에 미국의 신탁통치가 내려진 것이다. 그러다 1951년에 본토는 미군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했지만, 오키나와는 여전히 미국의 군사기지 신세에 처했다. 오키나와는 일본에게 또다시 버려지는 신세가 되었다. 전쟁 중에도 '본토 사수'를 위해 재빨리 버리더니, 재빠른 '본토 복귀'를 위해 오키나와를 이용한 것이다. 동아시아 최대의 미군기지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그러나 오키나와 사람들은 미군 지배 아래에서 독립을 꿈꾼다. 메이지 정부에 의해 강제로 일본에 귀속된 식민지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또 미국은 오키나와, 아니 '류큐' 사람들의 자치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면서 독립의 의지는 더욱 부풀어만 갔다. 그러나 1972년에 오키나와는 일본에 반환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 태평양의 작은 나라들이 속속 독립을 하면서 '류큐' 사람들도 독립의 꿈으로 부풀었건만, 결과는 일본에 다시 반환되어지는 것이었다. 다시 '오키나와'가 된 것이다. 더불어 독립의 꿈도 좌절되고 말았다. 여전히 미군 기지로 전락한 채로 말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일본은 무엇일까? 독립을 앗아간 것은 물론이려니와 제대로 일본 사람 취급조차 해주지 않는 일본을 향해 오키나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본토'에 살고 있는 일본인과는 사뭇 다른 사람들일게다. 그들이 그런 취급을 하였고, 지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오키나와의 실정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본토인'들인데, 어찌 그 둘이 같은 수가 있을까?

 

  오에 겐자부로는 이런 '오키나와'의 현실을 외면하는 '본토인'과 '일본정부'를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100여 년 전에 강제로 식민지로 삼아놓고서 철저히 이용만 해먹은 것으로도 모자라, 제대로 '본토인(일본인)' 대접도 해주지 않는 짓거리를 서슴 없이 비판하였다.

 

  뒤친이(옮긴이)는 말한다. 본토인들이 '오키나와'에 무관심한 것처럼 우리도 '류큐'에 대해서 모르긴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식민지 시절에 강제로 끌려가 모진 고생만하다가 희생을 당한 수많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묻히기도 한 그곳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없다고 말이다. 어쩌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애국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선으론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이나 우리 나라나 말이다. 허나 조금이나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그들의 아픔은 과거의 아픔뿐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며, 나아가 훗날까지 이어질 아픔이라고 말이다. 그걸 꼭 꼬집어서 말해줘야 이해할만 한 것인가?

 

  과거는 쉽게 잊혀진다.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잊기 마련이다. 허나 <역사>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역사의 아픔>은 아문 상처를 비집고 다시 피가 솟고,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끝내 상처가 벌어져서 그 아픔 그대로 다시 느끼기 마련이다. 우리가 지금 느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아니면 당신은 느껴지지 않더란 말인가? 이 책에 쓰여진 지 40여 년이 지났는데도, 오에 겐자부로가 느꼈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생생히 말이다.

 

< 삼성천양기, 류큐공화국의 국기란다. 독립되는 그날에 휘날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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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복장 터지겠네요.
    홧병나서 죽는 사람도 태반이겠어요.
    과거엔 대량학살을 당했다니, 후세인들도 일본사람과 미군의 합작인 사람들도 꽤 될 것 같기도...

    2012.09.17 13:50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異之我...또 다른 나

      열 받은 사람 많지요. 과거를 그냥 흘려보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 더욱 열받고요.

      2012.09.26 17:56
  • 파워블로그 eunbi

    오키나와가 독립의지가 없다고 하는 말도 있지만, 뉴스를 보면 그게 아닌거 같더군요... 아마도 시간이 지날수록 독립의지가 깊어지겠지요. 하지만 일본 또한 그렇게 되도록 가만 있지는 않을 것이고... 앞으로의 전개가 무척 궁금합니다...^^*

    2012.09.25 15:50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異之我...또 다른 나

      워워~남들 싸움 관망이나 하자는 얘기는 아니시겠죠^-^= 아무리 강 건너 불구경에 가장 재밌는 구경이라고 해도 말예요ㅎㅎ

      2012.09.26 17:58

PRID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