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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도서] 한비자

신동준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오늘날에도 <한비자>가 필요할까? 혼란한 시대에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국가는 유세객들을 모셨고, 유세객들은 취직(?)하기 위해 자기를 떠벌리고, 또 사상을 설파하던 시절에는 꼭 필요했을 것이다. 아니 <한비자>만큼 '전국시대'에 대박난 유세객이 없으며, 또 그의 사상이 약소국에 불과했던 변방의 '진나라'를 통일대업을 이루게 하였으니 말이다. 물론 그는 개인적으로 참 불행한 이였다. 조국 '한(韓)나라'에서는 푸대접을 받다가 진시황에게 발탁이 되어 초고속 승진을 하였고, 결국 조국을 '진나라'가 멸망시키도록 할 수밖에 없었으며, 같은 스승에게서 동문수학한 '이사'에게 모함을 받고 죽음을 강요 당하고서 자결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허나 유세객으로서는 치명적인 '말더듬이'였던 그가 '명문장가'로 거듭나는 모습에서 자신의 약점을 감싸고, 강점을 내세울 줄 아는 '처세술의 달인'이라는 점은 분명 배울만한 점이다. 또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서도 스승의 그늘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사상에서 더 한발짝 나아가는 학문을 닦으니, 이 또한 배울 만한 점이다. 한비자의 스승이 '순자'인 것을 보면, 그가 더욱 뛰어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비자>는 뛰어난 처세술과 청출어람이라는 점에서 꼭 읽어야 할 책일까? 물론 <한비자>를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니다. 위대한 사상가의 책이니 그 '유익함'이 오죽하겠냐만은, 그래도 왜 오늘날에도 <한비자>를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은 것인지 궁금해서 그런다.

 

  <한비자>하면 '법가사상'이 떠오른다. 단순히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지켜야 하는 절대 기준'을 정해 놓고, 신분과 계급을 불문하고 원칙대로 시행하는 법체계가 있어야 누구나 불만이 없는 공명정대하고, 부국강병한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설파하였으니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같은 '법가' 사상가인 '상앙'의 일화가 아주 유명하다.

 

  어느 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문 앞에 커다란 통나무를 놓아두고서, "이 통나무를 저기 반대편 문까지 옮겨 놓는 사람에게 1만냥을 주겠다."고 하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단다. 그러자 상금을 10만냥으로 올렸다. 그때서야 한 사람이 나서며, "믿기지는 않지만 해서 손해볼 것도 없다."며 큰 통나무를 어깨에 짊어지고 반대편 문까지 옮겨놓았단다. 그리고서 그 사람은 상앙에게서 상금 10만냥을 탔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사기>

 

  사람들이 통나무를 옮기지 않은 것은 상금이 적어서가 아니라 믿지 못하기 때문이었단다. 그만큼 백성들 사이에 국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고, 또 그런 간단한 일을 하고서 그만한 상금을 얻는다는 것이 믿기지도 않기 때문이란다. 더구나 까딱하다가는 상금을 주겠다는 사람이 변심을 하여 해코지나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아무도 나서질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법가>에서는 상벌이 명확하다. 시키는 일을 정확히 했을 때에는 이유를 불문하고 상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금지한 일을 했을 때에도 역시 사정이 어떠하든 간에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렇게 진나라는 '법가' 사상으로 백성들을 일사분란하게 통솔하여 힘을 키웠고, 그 결과, 아주 빠른 시일에 '전국칠웅' 가운데 가장 강한 나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어찌보면 <한비자>는 이런 '법가'의 장점을 최고로 살릴 수 있기 때문에 한 나라의 지도자들이 솔깃한 책일 것이다. 또한 '리더'가 읽어도 좋을 책이고, 그런데 상벌이 엄격하면 할수록 정나미가 떨어지기 십상이다. 백성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원동력이 단순히 '상'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벌'을 받기 싫기 때문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맹자'가 말했듯이, 우물가에 위태롭게 걷고 있는 아이를 불쌍하게 여기는 '측은지심'이 어찌 '상'을 받기 위해 하는 일이고, 또 아이를 구하지 않으면 '벌'을 받기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또 '법가'에서는 시키는 일 이외에 다른 일까지 월권하여 하는 사람에게도 엄격하게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뭔소린고 하니, 왕비가 술에 취해 곤하게 잠이 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서 '모자' 담당관리가 왕비에게 옷을 덮어 주었단다. 행여 왕비가 차가운 기운을 쐬고 고뿔이라도 걸릴까 우려해서 그리했다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왕비는 자신에게 옷을 덮어준 이가 누군지 알아오라 시켰고, '모자' 담당관리가 그리했다는 보고를 받은 왕비는 '옷' 담당관리에게 벌을 내렸고, 이어서 '모자' 담당관리에게도 처벌을 내렸단다. <이병 편>

 

  어찌 그런가? 옷 담당관리가 자기 책무를 소홀히 했으니 벌을 받는 것이야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모자 담당관리가 처벌을 받을 까닭이 없잖은가? 당연히 상을 받으면 받았지 말이다. 허나 '법가'에서는 이를 매우 위험한 사안이기 때문에 모자 담당관리가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왜냐면, <다른 사람이 할 일까지 넘보는 행동으로 생길 피해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란다. 다시 말해, 남이 할 일까지 자신이 해버리면 나중에 책임을 질 일이 생겼을 경우, 정확한 책임을 따질 수 없기 때문이란다.

 

  오늘날도 치면, 한 마을의 두 경찰서끼리 관할구역 경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서로 맡지 않으려다 도둑을 놓친 경우에 빗대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상가들의 눈으로 볼 때는 두 관할 경찰서 모두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일일게다. 허나 법가 사상가들의 눈으로 볼 때는 명확하게 어느 관할구역인지 판별하는 것만으로 정확한 상벌을 내릴 수 있는 판단이 선다는 얘기다.

 

  어찌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잣대'이지만, 이런 정확한 책무관계를 따질 때 백성들은 '자기가 할 일'에 더욱 매진할 수 있고, 그로 인해 국가는 부국강병해질 수 있다는 것이 <한비자>의 핵심 맥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게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비자>에 대한 인식이 그닥 좋지 않은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서양의 <마키아벨리>에 비견할 수 있을 테다. 마키아벨리도 <군주론>을 통해서 정말정말 정나미 떨어지게 엄격한 책무와 정확한 상벌을 내려 부국강병할 수만 있다면 '독재가'가 등장하더라도 좋다고 설파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렇게 둘이 판박이인지 모르겠다. 또한 두 사상가 모두 백성보다 국가를 앞세운 것도 정말 닮았다.

 

  그러나 <한비자>와 <군주론> 모두 단편적인 면으로만 볼 때 그렇게 부정적으로 오해할 수 있다. 결국 두 사상가가 말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으면 백성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이론에 입각하였기 때문이다. 즉, 백성이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국가가 망하고서 잘 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백성들은 국가가 강력해지게 노력해야 하며, 그렇게 국가가 부국강병해지면 자연스레 모든 백성들도 살기 좋게 된다는 것이 큰 골자이다.

 

  허나 그로 인해, 백성들이 '무한 희생'을 져야만 했다는 점을 보면 '법가' 사상이 마냥 달갑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우리 나라에서도 군부독재시절에 국민들이 억울하게 억압당하기만 했던 것을 정말 잘 보았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그 당시 독재자들이 지금도 존경받고 있는 까닭은 그들이 이룬 업적(?)이 국민들에게 인식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도 억압을 당해왔던 기억 때문에 존경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 였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또 오늘날에 '법치주의'라고 하는 것이 '힘 없는' 국민들에게만 엄격하고, '힘 센' 일부 특권층에게는 무르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볼 때면,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지 않은가 말이다. 어쩌면 어설푸게 '법치주의'를 실시하였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으나, 원래 완벽한 사상이란 없고, 시대가 변하면 사상도 시대에 맞게 변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한비자>라는 책은 한물 간 책이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허나 <성격> 말씀을 곧이 곧대로 믿으려는 우를 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본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을 아무 비판도 없고, 의식도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그냥 '맹종'에 불과하다. 적절히 해석을 가미해 '절대신'의 전지전능한 힘을 그리 비유하였다고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비자>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과거에 그리 엄격함만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시절을 감안해서 오늘날에 맞게 '자유와 평등 사상'과 접목하여 <한비자>를 풀어낸다면 분명 오늘날에도 아주 유용한 '교과서'가 될 것이다.

 

  <한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백성들을 어찌하면 잘 올가메어, 잘 복종하게 조련시키느냐가 아닐 것이다. 즉, 어줍잖은 '법치주의'를 내세워 저들 특권층만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만들 근거로 삼는 것이 <한비자>의 골자가 아니란 말이다. <한비자>가 꿈꾸던 것은 약소국이라도 아주 빠르고 매우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일 테다. 허나 <한비자>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조국을 떠났고, 결국 조국을 짓밟는 것으로 대신하였으며, 조국을 멸망시키고도 경쟁자의 모함을 받아 쓸쓸히 자결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사상가였다.

 

  허나 그의 사상으로 진나라는 전국을 통일하였고, 그 덕분에 임금은 '시황제'라고 일컫는 영광을 얻었다. 만약 <한비자>가 죽지 않고 시황제 옆에서 꾸준히 보필할 수 있었다면, 한비자보다 능력이 떨어지면서도 시기심만 많았다는 '이사'를 대신해서 진나라를 더욱 부국강병하고 '20년'이 아니라 더 오래 국가를 유지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엄격하고 명확한 잣대를 들이대는 그 이면에 녹아 있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자기보다 남을, 개인보다 공동체를 더 중요시하는 마음'이 <한비자>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단순히 '빠르게 출세하는 성공 처세술' 책으로 읽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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