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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도서]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이경혜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소설 제목과도 같은 이 질문의 답은 여러 가지로 나타날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사람은 <열정>으로 산다고. 열정은 삶에 활기를 불어 넣어 줍니다. 그래서 슬픔을 열정으로 극복하면 즐거움으로 바꾸기도 하고, 심지어 거짓말도 열정적으로 하면 왕왕 진실로 바뀝니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살다 죽은 사람은 죽은 뒤에도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바로 이 책에는 열정적으로 삶을 살다 죽은 소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야기는 소년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소년이 불우한 사고로 죽기 1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의 첫 장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 장부터 너무도 강렬한 문구인 <죽음>을 언급했기에,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소년의 어머니는 유언이 담겨 있을 지도 모를 일기장을 읽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일기장은 소년과 절친했던 소녀에게 건내집니다. 그리고 소년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과정이 밝혀집니다.

 

 언뜻보면 추리소설기법을 차용해서 스릴이 넘치는 내용인 것 같지만 우리네 청소년시절에 가질 법한 고민과 갈등, 그리고 나름대로 이를 해결하려는 안타까운 몸짓이 담겨 있어서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열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흔히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라>라고 하지만 왜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면 더이상 사소한 것이 되지 않는데 왜 하지 말라는 걸까요?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삶도 생각보다 짦으니 똑같이 최선을 다한다면 사소한 것보다 더 중요한 일에 투자를 해야 더욱 효율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니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지 마라>. 맞는 말이죠. 옛말에도 <기왕이면 다홍치마>라 했잖습니까. 하지만 <기왕이면>이란 가정을 빼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도 <다홍치마>일까요? 아닐 겁니다. 실제로는 <다홍치마>는 꿈과 이상일 뿐이고, 현실엔 <사소한 것>만 남아 있겠죠.

 

 자, 잘난 것 하나 없이 평범한 청소년들에게 꼭 하나만 줄 수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정말 최선을 다한 몇몇 사람에게만 얻을 수 있는 <다홍치마>를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사소한 것>이라도 최선을 다하면 얻게 되는 <대단한 것>을 주시겠습니까? 전 뒤에 것을 주겠습니다. 이유는 <열정적인 삶>이 바로 뒤에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이 책에서 열정적으로 살던 소년은 죽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의 삶은 소년과 절친했던 소녀에 의해 다시 살아납니다. 이것이 <열정>의 효과, <열정>의 힘입니다. 소년은 죽어가면서 슬퍼했을까요? 왜 이런 짓을 했나, 후회했을까요? 아니요.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최선을 다하다 맞이한 죽음이었기에 슬픔도 후회도 없었을 겁니다.

 

 흔히 농담처럼 <굷고 짧게> 사는 것이 멋 있는 삶이라고 말하지만 이것만으로 소년의 죽음을 대신 표현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것만으론 소년의 <열정>을 다 표현할 수 없을 테니까요.

 

 이 책을 읽고 너무 과격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죽음을 맞이한다면 이 소년처럼 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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