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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신화와 반신화

[도서] 사드 신화와 반신화

샹탈 토마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애초에 난, 궁금증 때문에 '사드'를 읽기 시작했다. 청소년들도 종종 읽는 유명 출판사의 문학전집 속에 어찌하여 '사드의 목록'이 왜 낑겨 있는 것인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아니 도대체 왜? 추잡한 이름의 대명사인, '사드'가 청소년 권장목록에 들어갈 수 있느냔 말이다. 그런 의문에서 집어들었던, 그 전집 속에서 만난 '사드'는 추잡하고 더없이 추잡하지만 뭔가 읽을거리가 있다는 지식인들의 견해가 담겨 있었다. 도대체 그 '뭔가'가 뭘까? 그래서 그 전집들(사드의 소설이 아니라, 우리 나라에 뒤쳐져(번역되어) 있는 사드에 관해 풀어놓은 책들)을 찾아서 탐독해 나갔다. 뭔가 있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깜냥을 믿고서 말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찾기 힘들었다. 외설적이고 변태적인 내용까지는 어떻게 견딜 수 있었지만, 생명을 하찮게 여기고 지독하리만치 약자에게 가학을 하는 행위들을 보면서 역겨웠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추잡한 책나부랭이를 호기심 왕성한(?) 청소년들에게 읽히라고? 읽혀서 무엇을 엿보게 한단 말인가? 도무지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채 '사드'에 대한 의문은 기억의 저편 속에 덩.그.라.니...

 

  그러다가 흔히 말하는 <예술과 외설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또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도 떠올렸다. 그렇다. 사드가 추구한 것은 '쾌락'이다. 사랑하는 이와 나누는 달콤한 키스는 얼마나 좋은 것이냔 말이다. 쪼옥~해도 좋지만 츄르르룹츄릅 해도 좋으렸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사드는 아주 지독하게 츄르릅한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사드를 용납하기는 힘들다. 쾌락을 추구한 것을 탓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도덕'이란 관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쾌락을 얻고자 다른 이의 고통을 나몰라라하고, 더 나아가 그 지독한 고통을 통해 쾌락을 얻을 수도 있다는...끔찍한 결실을 눈 뜨고 볼 수 있을까?

 

  한편, 도대체 사드는 왜 이토록 추잡한 쾌락을 추구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의 일생을 다룬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집어 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사드, 신화와 반신화>. 제목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사드를 옹호하는 측도 있고, 매도하는 측도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보니, 사드는 동시대인에게도 인정받기는 매우 힘들었고, 귀족 신분에 걸맞지 않는 행보 때문에 매번 매도 당하기 일쑤였단다. 그가 일생의 대부분을 감옥과 정신병원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가 죽지 않고, 또는 죽임을 당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귀족이라는 신분 덕분이었고, 아이러니 하지만, 귀족답지 않게 '글쓰기 실력(희곡과 소설과 혁명적 팜플렛 등)'에 목숨을 걸었던 특별함,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시대적 혼란이 사드에겐 삶의 버팀목이었던 모양이다.

 

  또 사드는 귀족이었기에 젊은 시절에 프랑스를 위해 군인 신분으로 전쟁에 참전한 경력도 있었단다. 바로 이 군시절에 방탕한 삶을 시작한 듯도 하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아닌 듯 하고, 부모와의 서먹서먹함이나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도 결정적인 원인은 아닌 듯 하다. 짐작일 따름이지만 '자유'분방한 사드를 그 지독한 사상(쾌락적인 부분이든,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유를 갈망하는 부분이든 간에 말이다)으로 내몰았던 것은 <감옥과 정신병원>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 감옥에서 나오려고 애쓰는데 장모가 탐탁치 않아 했던 점도 사드는 멈출 수 없게 만든 원인이 아닌가 조심스레 짐작할 따름이다.

 

  물론 책 속에서도 무엇이 결정적인 원인인지 서술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왜냐면...사드 따위, 알게 뭐람? 사드에게서 중요한 점은 '원인' 따위가 아니라 '결과' 인 것을. 사드가 지독하고 추잡한 쾌락주의자가 된 까닭 따위는 호사가들의 관심거리에 지나지 않을 게다. 오늘날에도 사드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시대를 앞서도 너~무 앞선 그를 도대체 언제쯤 대단한 선구자로 인정하는 사회가 도래할까?'라는 원색적인 호기심일 것이다. 성(性)에 대해 자유분방함을 넘어 관대해진 21세기에 접어들었는데도 여전히 '사드'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으니 말이다. 벌써 그가 죽은 지 200년이 지났다.(1814년 사망). 아니 현실에서는 그 어떤 사회도 사드를 용납하는 사회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사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는 소설 속 '허구의 세계'나 영화 속 '상상의 세계'가 아닐까 싶다. 영역을 더욱 넓힌다면 지식인들의 '담론의 세계'이지 않을까? 아니 그렇다면 이미 사드는 용납되어진 인물이자 사상일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대놓고 사드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꿈의 해석>을 통해 프로이드가 물꼬를 터놓았고, 에로틱한 분야인 '포르노그라피'에서는 사드가 갈망한 세상이 녹아들어 갔으니 말이다.

 

  아마도 사드의 사상은 현실에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영원히 말이다. 그러나 문학 속에서, 학문 속에서 꿈틀꿈틀 살아움직이고 있다. 이미 말이다. 그런데 괜찮은 걸까? 현실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 '허구'와 '상상'과 '담론'의 세계에서는 꾸준히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말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비록 '상상의 나래'일지라도 언젠가는 현실 속에 '실현'되어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그 '상상 속'에서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나왔다가는 '괴물' 취급 받으며 쫓겨나기 십상일테다. 아니 그 괴물은 나오지 않더라도 '아는 것'만으로도 위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 괴물이 위험하다는 것을 널리 알려야 나오지 못하게 단단히 막을 수 있는 것일까?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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