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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사람들

[도서] 숲 사람들

콜린 M. 턴불 저/이상원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1 이 책을 읽으며 난 두 가지 사실에 지적 충격을 받았다. 난 피그미라하면 그저 흑인들 중에서 키가 작은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 속담에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는데, 이 말은 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 같아 또 한 번 놀랐다. 그들의 놀라운 지혜와 체구답지 않은 몸놀림은 상상만으로는 부족할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말이다. 피그미와 마을 흑인과의 관계를 조금 들여다 보니 어릴 적 자주 보던 <톰과 제리>라는 만화영화가 떠올랐다. 몸집은 작지만 영특한 제리, 그리고 어리석은 건 아닌데 번번히 제리에게 골통을 먹는 톰의 관계가 마치 피그미와 마을 흑인처럼 연상되어 읽는 내내 즐거움을 주었다.
 
 예를 들어 마을 흑인들의 성인식인 <은쿰비>를 치를 때 흑인들은 피그미들을 통제하고 자신들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피그미들 중 성인식을 치를 나이의 소년들을 강제적으로 치르게 한다. 하지만 피그미들은 그저 잠깐 숲을 떠나 마을 소풍 갔다 오는 것인냥 흑인들의 잔치에 참가에 먹을 것만 축내고 돌아와 자신들만의 <성인식>을 치른다. 물론 <은쿰비>를 치르고 돌아온 피그미 소년을 성인 대접을 해주지도 않는다. 비록 자신들의 성인식이 따로 마련되지는 않았지만(이를 두고 흑인들은 피그미가 자신들에게 의존한다고 주장하지만) 숲에서 생활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으로 그들만의 성인식을 치른다.
 
 결국 피그미들은 억압받지도, 종속될 수도 없는 자유로운 종족인 것이다. 단지 평균 신장이 140cm로 작을 뿐, 그들은 마을 흑인들처럼 멍청하지도, 마을 흑인들처럼 겁쟁이도 아니다. 겁쟁이가 아닌 증거는 마을 흑인들은 코끼리나 다른 동물을 사냥할 때 함정이나 덫을 만들지만, 피그미는 창과 화살을 들고 직접 사냥을 한다는 사실이다. 그 자그마한 체구로 동물 중에 가장 덩치가 큰 코끼리를 사냥한다는 아이러니는 피그미가 용맹하다는 증거일 뿐 아니라 존중받아야 마땅할 존재라는 것을 각인 시킨다. 그러니 숲을 떠난 최초의 피그미가 백인사회에서 다름 아닌 <군대>에 복무했다는 사실도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2 또 피그미는 진정을 숲을 사랑하는 종족이었다. 깊은 숲 속에서 길을 잃는 유일한 동물이 사람이라는 말도 있는데, 피그미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일 것이다. 그들은 초기 인류가 숲을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숲에서 살아 남은 후손임에 틀림없다.
 
 여기서도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난 숲에는 먹을 것이 풍부하고, 공기 맑고, 물 깨끗한 청정지역이라 사람들이 살기에 아주 좋은 곳인 줄로만 알았다. 유럽이나 북미의 전원 풍경을 보면 끝없이 펼쳐진 숲 속에 오두막집에서는 따뜻한 난로와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것만 보아왔던 나에겐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숲에선 정착생활에 필수요소인 <농경>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애써 개간한 농경지는 채 3년이 되지 않아 싹을 틔우지 못하게 하고, 숲이 집어 삼킨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숲 속에 열매가 풍부한 곳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마을 흑인들은 숲을 악마가 깃든 곳이라 하여 무서워 한다고 하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런데도 피그미들은 이런 척박한 숲에서 오랜 세월을 생존했고, 숲을 벗어나 산다는 것조차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는 삶. 인류는 배고픔을 그토록이나 싫어했는데, 어째서 피그미들은 그곳을 떠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피그미들이 진정으로 숲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숲은 항상 어둡다. 울창한 숲은 햇빛을 차단하고 항상 음습하고 썩은 내가 진동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피그미들은 그런 것조차 숲이 준 것이라며 좋아한단다. 우리들에게 좋은 것만 주는 숲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불편할 뿐이니 나쁜 것이 아니란다. 진정 사랑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일 것이다. 이들에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조금만이라도 배운다면 <지구온난화>나 <환경파괴>같은 말은 쏙 사라질 텐데...
 
3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나는 피그미들에게서 한 가지를 더 배웠다. 그들의 교육관이다. 그들은 어른들 모두가 아이들의 부모요, 아이들 역시 모든 어른들의 자식이었다. 그래서 내 아이, 남의 아이를 가리지 않고 잘못을 저지르면 엉덩이를 때려 훈육 시킨다. 이런 사회에서 범죄가 일어날 수 있을까?
 
 요즘 우리 사회를 보고 있으면 한심한 장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청소년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훈계하는 어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되려 지나가는 어른에게 당당히 불을 빌리고, 청을 받은 어른은 아무 말없이 불을 빌려 준다. 청소년에게 담배를 파는 건 불법이다. 그런데도 청소년들은 당당히 담배를 피고, 그걸 본 어른은 적절한 훈계조차 하려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내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상관하고 싶지 않고, 내 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만약 피그미 사회였다면 이런 일이 만연할 수 있을까? 안타까운 현실이다.
 
4 이 책을 덮으며 책이 쓰여진 시기를 살펴 보았다. 50여년 전에 쓰여진 책이 왜 이제서야 지금 우리 손에 들려 있는 것일까? 조금 더 빨리 볼 수는 없었을까? 이렇게 좋은 책이 왜??? 물론 <인류학>이란 장르가 굉장히 읽기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고리타분>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마가릿 미드의 말처럼 정말 수려한 문장이라서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는 데 공감하였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 속에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고, 이 책을 읽는 이에게 진정한 사랑을 전해줄 것이다. 숲을 사랑하는 피그미도, 피그미를 사랑한 턴블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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