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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4

[도서] 역사저널 그날 4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주말엔 애청자

  챙겨줄 애인이 없기도 하지만, 주말 저녁이면 일찍 귀가를 해서 TV 앞에 자리를 잡는다. 매주 일요일 밤에 <역사저널 그날>을 시청하기 위해서다. 프로그램 첫 회를 시청하고 거의 매주 놓치지 않고 보았으니 골수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 방영했던 <역사스페셜>이나 <한국사傳>도 자주 시청했었지만, <역사저널 그날>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이전의 방송이 '한 사람의 진행'에 의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조망이었다면, <그날>은 여러 패널이 등장해서 역사적으로 조명 받을 만한 '사건'이 일어난 날들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하면서 논평을 담화 형식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역사를 잘 알거나 모르거나 누구나 함께 보며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 나왔다. 방송에서 보는 생생함을 과연 책에서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찬찬히 읽어 나갔다.

 

 책의 내용은...

  이 책은 제 4권으로, 영화 <명량>의 인기에 힘입어 '이순신'과 '임진왜란'에 대한 재조명이 한창 이루어지던 시기였고, 또 KBS드라마 <징비록>이 방영하던 때였기 때문에 '류성룡'과 그의 책 <징비록>에 대한 관심이 한창 커가고 있을 때 방영한 <그날>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방송을 직접 보신 분이라면, 책을 읽으며 '그날'의 생생함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탄탄하게 짜여 있어서 읽기에도 즐거웠다. 그리고 방송상 빠른 흐름으로 지나가던 장면들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었던 부분도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다시 되새김할 수 있었기에, 읽을 때 흐믓하였다.

 

충무공, 성웅에 앞서 '인간' 이순신

  영화 <명량>도 보았다. 그동안 숱한 '이순신'을 만났지만, <명량>에서만의 매력을 꼽자면 '인간 이순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동안에는 '충무공', '성웅' 이미지가 강해서 '전승신화'에만 주목했다면, 이번 <명량>은 '그도 인간이었다. 강한 외적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고, 충심조차 알아주지 않는 조국에 원망도 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라고 보여주며, 그동안 신화적인 존재처럼 떠받들던 이미지를 탈피해서 '누구라도 이순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나 할까? 암튼 내 느낌은 그랬다. 이에 <그날>에서도 '이순신'과 '임진왜란'을 재조명하며, 전쟁의 진행상황을 상세히 전하며 그분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에 대해 논평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1592년, 왜란...얼마만큼 아니?

  한편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대해 상세히 전해주기도 했다. 두 전란을 모두 합쳐 '7년'이 걸렸기에 '7년 전쟁'이라고도 명명하지만, 실상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 것은 1592~93년, 1년간이었고, 오랜 강화기간이 이어지다 강화실패 뒤 1597년에 '정유재란'이 발발하며 다시 1년여간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물론 그 7년간 백성들의 삶이 황폐해지고 조선국토 전체가 전쟁의 참상을 겪은 것은 쭉 이어졌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그날>에 벌어진 전쟁의 양상 뿐만 아니라 전쟁 발발 전후에 대한 조명, 전쟁이 끝나고 난 뒤, '명청 교체기'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낱낱이 알려준다는 점이다.

 

  특히 '비교할 대상'을 선정해서 패널들이 재평가하는 장면은 이 책의 '백미'다. 물론 <그날>이라는 프로그램의 장점이기도 하다. 여기에 빠르게 전환되는 '대상'들이 다채로우면서도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자연스러워서 보다보면 흠뻑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에 역사에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상세한 설명이 감초처럼 등장해서 궁금증을 해소하기 때문에 지루할 틈도 없다. 물론 <그날>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책도 그러하다. 오히려 책은 '주석'으로 달아놓아서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첨가 되었다.

 

 류성룡이 없었더라면, 그 이후의 '조선'도 없다.

  다음으로 조명한 것은 '류성룡'과 <징비록>이다. 류성룡이 없었다면 조선이 남을 수 있었을까? 조선의 바다를 지킨 이순신을 발탁한 것도 그였고,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권율도 그가 천거한 장수였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하급 무신에 불과했던 이들을 전쟁 발발 직전에 적재적소에 배치해 적을 방비하게 한 류성룡의 선견지명이 없었더라면 조선은 없었을 것이다. 어디 이뿐이랴.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직업군인인 훈련도감을 설치, 새로운 무기인 비격진천뢰, 전쟁이 오래 이어지자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면천법을 실시하여 천민이라도 전공을 세우면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데 중요한 건 그 당시 지배자인 양반들은 이런 류성룡의 정책들을 전혀 할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조선이 망하지 않았다는 건 모두 류성룡 한 사람의 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 대한 증거가 있느냐고? <징비록>을 보면 알 것이다.

 

 조선이 버린 왕, 광해. 다시 평가 받아 마땅한..

  이 책의 마지막은 비운의 왕, 광해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란 속에 왕세자에 오른 광해는 전란을 극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결국 조선을 위기에서 구한다. 아시다시피, 전쟁이 끝난 뒤에도 광해는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명청 교체기'의 혼란을 실리외교로 극복해낼 정도로 뛰어난 임금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왕위에 오르기까지는 험난하기 그지 없었으며, 왕위에 올라서도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우는데 혼신의 힘을 쏟아야 했었다. 이런 광해를 조선은 '반정'으로 화답했다. 그 결과 조선은 '호란'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다음 책에서 다뤄질 것이다.

 

 그때 망했다면, 무능한 지배층도 함께 사라졌을까?

  이렇듯 조선에 위기가 닥쳤지만 뛰어난 신하들과 임금이 있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어떤 사학자는 조선은 이때 멸망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일본도 막부가 바뀌고, 명도 청으로 바뀌었는데, 어찌하여 조선은 그대로인가? 조선도 그때 바뀌었어야 했다. 그랬어야 썩은 부분(무능한 양반이 나라를 지배하는 체제)을 도려내고, 훌륭한 임금과 뛰어난 신하들, 그리고 자신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꿈꾸는 백성들이 만든 건강한 나라가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학자들도 있다. 만약 그랬으면 오죽 좋으련만 역사에선 '만약에'란 없지 않은가. 딴에는 무능한 양반들이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답답함을 더는 지켜볼 수 없어서 그런 생각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고 짐작하니 공감되기도 한다.

 

 무능한 집권세력이 하는 짓을 두고만 볼 것인가?

  허나 무능한 지배층이 집권하도록 방치하는 어리석은 민중들이 있는 한은 계속 무능한 채로 집권할 수밖에 없다. 조선은 똑똑한 백성들이 필요했다. 그 시작은 세종대왕이었을 것이다. 똑똑한 백성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 말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러질 못했다. 계유정난이 일어난 탓일까? 훈구파들이 제 밥그릇 챙기기 바빠 거듭된 사화에서도 사림들에게 자리보존하지 못하고 빼앗긴 탓일까? 연산군이 폭정을 일삼고 뒤이은 반정으로도 정신을 못차린 양반들 탓일까? 물론 그들을 탓하지 않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백성들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 못한 탓이다. 지정학적으로 고립된 탓일 수도 있다. 더 넓은 세계를 꿈꾸지 못하게 만드는 환경적 요인 탓일게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글자가 어려워 공부를 못하는 시대도 아니다. 세계화로 빠르게 변하는 요즘 세상에서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나라밖 어디라도 보고 싶으면 다 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우린 달라졌나? 무능한 지배층을 혼꾸녕 내지 못하는 우리는 그때 그 못난 백성들 탓을 할 수 있나? 아니 누구 탓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진정 역사를 통해 배우고 있느냔 말이다. 그러지 못하는 현실을 탓해야 하는 것인지, 아님 스스로 분연히 일어나 잘못을 잘못이라고 외치지 못하고 있는 속물처럼 구는 나를 탓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역사는 여러 사람이 떠들어야 제맛!

  과거에 <역사스페셜>이나 <한국사傳>처럼 '한 사람'의 진행자가 나와서 떠들어대는 방식도 참 좋았다. 균형있는 시각으로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믿었기에 그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말 하나하나가 '진실'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역사저널 그날>에서 '여러 명'의 패널들이 나와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방식을 접하고 나니, 과거의 방식이 참으로 식상한 방식이었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을 다시 옛날 방식으로 되돌린다고 한다면, 난 반댈세.

 

  굳이 랑케와 카의 예를 들지 않아도, 역사는 '해석적 사고'를 접근할 때 순기능을 발휘한다. 아무리 진실만 말하는 '1인'이라 하더라도 시일이 지나면 그 사람의 관점을 맹신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다르다면 '틀리다'라고 말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사랑을, 알라가 순종을, 부처가 자비를, 공자가 인의를 말씀하셨는데도, 그 후학들이 말씀을 '곡해'하고서 '종교'라는 이름으로 치룬 갈등과 다툼이 역사상 얼마나 많으냔 말이다. 결단코 한 가지로 만든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짓거리다.

 

  올바른 역사는 '누군가'의 마음에 든다고 올바라지는게 아니다. '누구나'가 이해할 수 있어야 비로소 올바른 역사가 세워지는 것이다. <역사저널 그날>에서 유쾌하게 떠드는 역사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들었다면, 올바른 교과서 따위의 허튼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바라건대, <그날>만큼은 그 어느 세력의 농간에도 휘둘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애청자로서 하는 바람이다.

 

이 리뷰는 대한민국 No.1 출판사-민음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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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깽Ol

    전 TV는 아예 안 보는 편이라,
    요런 프로가 있다는 것도 잘 몰라요.;;
    지아님이 리뷰로 프로그램 포맷이나 형식을 잘 알려주셔서
    저 또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저도 다양성에 한 표 던지겠어요. 다각도로 생각해볼 수 있고
    주입식이 아니라 토론식이니까 사고의 폭도 넓어지는 건 당연할 것 같아서요.
    아아, 교과서라는 단어만 나오면 혈압이 좀 상승해욧!!!
    열심히 읽고 쓰고 계셨구랴~

    2015.11.10 03:17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異之我...또 다른 나

      익숙한 책이 주는 달달한 감상에 빠져 독서는 즐겁게 했지만, 리뷰 쓰다가 꼭지가 확 돌았다능ㅋㅋ
      이 리뷰...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5시간쯤 쓴 것 같음ㅋㅋ
      다시 읽으니..참 두서 없이 썼네ㅎ

      2015.11.10 09:46

PRIDE2